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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故최진실, 오늘(2일) 사망 16주기… 여전히 그리운 국민배우

배우 고(故)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 지났다.배우 최진실은 지난 2008년 10월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항년 40세.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최진실은 같은 해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우리들의 천국’, ‘약속’, ‘질투’, ‘별은 내 가슴에’, ‘나의 신부’, ‘마누라 죽이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 최진실은 2000년 야구선수였던 고 조성민과 결혼하며 아들 최환희, 딸 최준희를 낳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04년 이혼했다. 아들 최환희는 지플랫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준희는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2008년 최진실의 사망 후 2010년 고인의 동생 최진영, 2013년 전 남편 조성민이 사망해 충격을 안긴 바 있다.이수진 기자 sujin06@edaily.co.kr 2024.10.02 07:27
연예일반

故최진실, 오늘(2일) 사망 15주기… 여전히 그리운 미소

‘만인의 여인’ 배우 고(故) 최진실이 2일 사망 15주기를 맞았다. 고인은 지난 2008년 10월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항년 40세. 당시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였기에, 그의 사망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최진실은 그해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을 시작으로 ‘약속’, ‘질투’, ‘나의 신부’, ‘마누라 죽이기’ 등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이후 2000년에는 5살 연하의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 아들 환희와 딸 준희를 낳았지만 2004년 이혼했다. 2008년 최진실의 사망 후 2010년 고인의 동생 최진영, 2013년 전 남편 조성민이 사망해 충격을 안긴 바 있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3.10.02 09:06
연예일반

최환희, 1년만 故 최진실 묘소 찾아 “편한 마음으로 와”

배우 고(故) 최진실의 아들인 최환희(지플랫)가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2일 고 최진실이 올해로 사망 14주기를 맞은 가운데, 뉴스1은 최환희가 이날 정오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갑산공원에 위치한 고 최진실 묘소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최환희는 추모를 마친 후 뉴스1에 “추석 때 태풍 때문에 못 와서 거의 1년여 만에 왔다. 14년이나 지났으니 처음에는 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는데 이젠 엄마 집 오듯이 편한 마음으로 왔다가 인사하고 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최환희는 어머니에게 커피를 올린 이유를 털어놓으며 “목마를 테니까 커피를 올렸다. 커피를 되게 좋아하셨다고 했다. 많이 오지도 못했으니 커피라도 한 잔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최환희는 “어머니에 대해선 그냥 자랑스럽고 너무 감사하다. 어머니가 열심히 연기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연예계 활동에 임하는 심정 또한 드러냈다. 그는 “처음엔 부담감이 강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걸 내려놓기 시작했다”며 “그래서 예전보다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진실은 지난 1988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연기파 배우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야구선수 출신인 고 조성민과의 사이에 최환희, 최준희 등 1남 1녀를 뒀으며 2008년 10월 2일 향년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다은 기자 dagold@edaily.co.kr 2022.10.02 16:08
연예일반

'우이혼2', 지연수, "재혼 안 하겠다"는 일라이에 환한 미소

‘우리 이혼했어요2’가 극적인 화해를 이루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안방극장에 울림을 선사했다. 지난 20일 방송된 TV CHOSUN ‘우리 이혼했어요2(이하 우이혼2)’ 7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시청률 6.0%, 분당 최고 시청률은 8.1%를 기록, 종편과 케이블을 포함해 동시간대 예능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일라이-지연수, 나한일-유혜영, 조성민-장가현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며 켜켜이 묵혀뒀던 둘 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몰입도를 극강으로 끌어올렸다. 먼저 지연수는 일라이와의 임시 합가를 위해 이사를 하던 중 “연애할 때 나 어땠어?”라고 질문했고, 일라이는 “하얗고, 밝고, 눈부셨다”며 “결혼 생활하면서 좀 어두웠지만, 다시 하얘지고 있다”고 답했다. 지연수는 일라이에게 “연애할 때보다 지금의 네가 훨씬 나은 사람 같다”고 화답해 일라이를 미소 짓게 했다. 일라이는 지연수에게 짐을 가지러 자신의 숙소에 함께 가자 제안했고, 지연수는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에 “외로웠겠단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워했다. 두 사람은 지연수의 집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던 중 옛 앨범을 발견했고, 연애시절부터 웨딩, 가족사진 등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하지만 지연수는 “민수 것 빼고 다 버리자”고 말했고, 일라이는 “후회 안 할거냐”며 “이혼했어도 가족이다”고 사진을 챙겼다. 지연수는 “너 그러다 재혼하면 어쩌려 그러냐?”고 물었고 일라이는 “너랑?”이라고 되묻더니 “나 재혼 안할건데? 이렇게 살건데?”라고 답해 지연수를 웃음 짓게 했다. 일라이와 지연수, 아들 민수는 드디어 마련된 셋의 공간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지연수는 민수에게 “아빠가 서른 밤을 같이 지내고 미국에 다시 가야한다”고 일렀다. 민수는 “일 끝나고 한국에 왔을 때 우리 집에 꼭 놀러 와요”라고 부탁했고, 일라이는 “다음에 올 때는 그만큼 오래 안 걸릴 거야”라고 약속했다. 일주일 후 일라이는 지연수가 일하는 식물 유통 회사의 면접을 보기 위해 나섰고 ‘유키스 활동-탈퇴’ 한 줄 뿐인 이력서를 내밀었다. 대표는 “하실 수 있을까요? 힘들어요 진짜”라고 걱정했지만, 일라이는 “힘든 일 자신 있어요”라며 열의를 불태웠던 터. 그렇게 본격적인 업무 테스트가 시작됐고, 일라이는 고된 업무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한국 정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 기대감을 자아냈다. 이어 나한일과 유혜영의 강원도 동거 이야기가 계속됐다. 나한일은 유혜영과 자전거 연습을 하고 돌아오는 길, 유혜영의 까진 손에 연고를 발라줘 감동을 안겼다. 유혜영 역시 7년 만에 처음으로 나한일을 위한 저녁상을 차렸고, 나한일은 “맛있다”며 감격했다. 자전거 연습부터, 대관람차 탑승까지 알차게 보낸 동거 생활을 곱씹던 중 유혜영은 “좀 더 많이 시간 가지고 더 알아갔으면 좋겠어. 충분히 자신이 생겼을 때 그때 다시 재혼을 해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해 나한일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혜영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언급하며 “또 헤어지면 안되잖아”라고 걱정했고, 나한일은 “고마워. 감동했어”라며 “현실적인 문제들, 아주 만족하진 못하겠지만 해결할게”라는 든든한 모습을 보였다. 나한일은 유혜영과 팔짱을 끼고 밤바다를 거닐며 “우리 세월이 얼마 안 남았잖아. 당신하고 오손도손 재밌게 살고 싶어”라고 고백했다. 유혜영이 미소를 띤 얼굴로 “나도 그러고 싶다”고 화답, 재결합 가능성에 청신호를 켜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런가하면 조성민은 장가현에게 “(이혼 후) 내 작업 컴퓨터에 메신저가 로그인 돼 있었어”라며 “내가 오해의 소지를 가질만한 대화들이 있었다”고 언급해 충격을 안겼다. 장가현은 “그걸 로그아웃 안 하고 다 봤단 말이야?”라며 당황했고, “남자가 생겨서 이혼하자 얘기한다 생각한거냐”고 흥분했다. 조성민은 “부정적으로 생각이 드니까 대수롭지 않은 대화들도 많은 상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고, 장가현은 “내 20년 충성, 우정, 사랑, 당신이 다 부정한 것 같아.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화나 미칠 것 같아”라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아침, 조성민은 장가현에게 준비해둔 꽃다발을 건네며 “당신 카라 좋아했는데, 생각해보니 한 번도 못 사준거야”라며 미안함을 표했다. 둘만의 데이트에 나선 두 사람은 다시 카페에 마주 앉았고, 장가현은 조성민과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ongang.co.kr 2022.05.21 08:36
스포츠일반

18번 홀 짜릿한 버디... 포효한 박상현, KPGA 통산 11승

17일 강원 춘천 라비에벨 골프클럽 올드 코스(파71).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2022시즌 개막전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 최종 라운드 18번 홀(파4) 그린 위에 선 박상현(39)이 신중한 자세로 홀을 바라봤다. 홀과 8m 거리의 내리막 경사를 타고 버디 퍼트를 시도했다. 공은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상현은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와 고글이 벗겨질 만큼 포효하면서 시원한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쳤다. 치열했던 선두 경쟁 속에 한발 앞서가는 퍼트였다. 이 홀 버디로 박상현은 합계 10언더파로 이형준, 조성민, 이준석(호주·이상 9언더파) 등 공동 2위 그룹을 1타 차로 따돌렸다. 시즌 개막전부터 펼쳐진 치열한 우승 경쟁을 이겨낸 박상현은 코리안투어 통산 11승을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억4000만원을 받았다. 2년 6개월 만에 갤러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박상현은 “갤러리들 응원을 받았더니 힘이 났다.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최종 라운드 우승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박상현, 이형준을 비롯해 조성민, 김민규(5위·8언더파), 김한별(공동 6위·6언더파), 이상엽(공동 17위·2언더파) 등이 선두권을 오르내렸다. 혼전 중에서 마지막에 웃은 건 박상현이었다. 그는 선두와 5타 차 밀린 상태에서 최종 라운드를 출발했다. 선두와 타수 차가 벌어지자 “정신차려야겠다”는 의미로 아내, 두 아들을 골프장에 초대했다. 그는 파죽지세로 타수를 줄여갔다. 8번 홀(파4)에선 홀과 110m 거리에서 시도한 두 번째 샷이 그대로 들어가는 샷 이글을 성공시켰다. 이어 4명이 공동 선두에 올라있던 상황에서 18번 홀 짜릿한 버디 퍼트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박상현은 마지막날에만 이글 1개, 버디 4개, 보기 2개로 4타를 줄여 다른 경쟁자들을 제쳤다. 박상현은 그린 주변에 있던 큰 아들 박시원 군이 물을 뿌려주는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꼭 퍼트를 집어넣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작년 최종전 때 마지막 퍼트를 놓쳐 대상 2위로 끝났다. 2등은 이제 그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 갖고 친 게 운 좋게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대회 첫날 “올 시즌 목표는 5승”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그는 “이제 4승 남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2022.04.17 17:09
연예

"엄마 닮았네" 네티즌도 놀랐다…19살 故최진실 딸 준희양 근황

배우 최진실의 딸 준희양이 자신의 환하게 웃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15일 준희양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 한장을 올렸다. 앞머리를 내린 단발머리에 회색 카디건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다. 네티즌들은 이 사진을 보고 "엄마와 갈수록 닮아간다"며 놀랐다. 준희양은 올해 19살로 곧 스무살이 된다. 네티즌들은 "너무 예쁘다", "어머니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역대급 미모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최준희는 지난 10월 최진실의 사망 13주기에 "올해 19살 고3이 됐다"면서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줘. 그리웠던 만큼 사랑해줄게"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최진실의 아들이자 준희의 오빠인 환희는 현재 '지플랫'이란 이름으로 싱어송라이터 겸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최환희는 지난해 자작곡 '디자이너'를 내고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배우 최진실은 1988년 데뷔해 CF 스타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2000년 故조성민과 결혼했다. 조성민과 사이에서 환희, 준희 두 자녀를 낳았으나 3년 만에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이혼 후 홀로 두 남매를 키우던 최진실은 2008년 세상을 떠났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2021.12.17 07:54
연예

'아이를 찾습니다' 박혁권X장소연, 묵직한 감정연기

JTBC 드라마페스타 2021의 두 번째 작품 ‘아이를 찾습니다’ 22일 첫 방송된다. 잃어버린 아이를 11년 만에 되찾은 부부가 겪는 삶의 아이러니를 그린 드라마로,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소설이 원작이다. 깊은 여운으로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앞서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이 주목받고 있다. 조윤석(박혁권), 강미라(장소연)와 슬하의 어린 아들 조성민(오자훈)은 여느 가족과 다름 없이 주말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맞이하고 사소한 것에도 웃음이 터지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제일로 좋다”던 그 평화는 성민의 실종과 함께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정에 웃음 소리는 사라졌고, 대신 “성민이는 당신이 잃어버렸어”라는 미라의 날 선 말과 “성민이의 손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잃어버리지만 않았더라면”이라는 윤석의 후회가 들어찼다. 단 한번의 실수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황량한 삶은 보기만 해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한 감정을 자아낸다. 그렇게 사라진 아들을 찾아 헤멘지 11년, 윤석은 그토록 바라고 또 바랐던 성민이의 소식을 듣게 됐다. 아이만 돌아온다면 망가진 일상도, 상실감으로 인해 과거에 갇혀버린 미라도 모두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성민이는 자기가 유괴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자랐거든요”라는 것. 후회로 얼룩진 나날 속 아들과의 행복한 재회를 고대했지만, 윤석은 마주한 것은 자신을 잔뜩 경계하며 뒷걸음질치는 성민과 자신의 아들임을 부정하는 미라였다. 얄궂게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윤석은 11년의 간극을 좁히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이상과 멀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끝내 윤석은 “내가 유괴범이 된 기분이에요. 그것도 아주 무능한 유괴범이요”라는 현실에 가로막힌다. 무엇보다 박혁권과 장소연의 연기 향연은 밑줄 두 개 그어야 하는 중요 포인트다.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출중한 연기 실력을 분출하는 박혁권과 장소연이 실종아동 부모 역할에 오롯이 녹아 들었기 때문. 전단지를 내밀며 “제발”이라고 부탁하는 박혁권의 호소에선 아이를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배어 나왔고, 아이를 찾으며 결핍이 해소됐다고 생각한 순간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마주한 대목에선 ‘아빠’의 자책감이 묻어 나왔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상실감을 표현해낸 장소연은 2분 30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영상에서도 두드러졌다. 아이가 사라진 이후 모든 것을 놓아버린 엄마의 감정선은 캐릭터에 깊게 파고든 장소연의 진실한 노력과 만나 먹먹함을 더했다. 이렇듯 황량한 사막과도 같던 지난 11년간의 세월은 이들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에 모두 축적되어 있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로 분한 두 배우의 묵직한 연기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라마페스타'는 드라마와 축제의 합성어로 소재, 장르, 플랫폼, 형식,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다채로운 드라마를 선보이려는 JTBC의 단막극 브랜드 이름이다. 지난 2017년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시작으로 ‘힙한 선생’, ‘한여름의 추억’, ‘탁구공’, ‘루왁인간’, ‘안녕 드라큘라’, ‘행복의 진수’ 등 웰메이드 단막극 ‘드라마페스타’의 명성을 이어갈 ‘아이를 찾습니다’는 22일, 23일 양일간 오후 9시 JTBC에서 방송된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21.03.21 13:41
스포츠일반

[일문일답] '조금 울고 싶었던' 양동근, 그가 말하는 '꿀잠' 같았던 17년

"정말 길고 좋은 꿈이었다. 꿀잠이라도 잔 것처럼, 너무나 꿈같던 시간이 지나간 것 같다." 코트 위에서 보낸 긴 시간, '선수 인생'이라는 특별한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으러 나온 양동근(39)은 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한국프로농구(KBL) 올 타임 레전드 양동근은 1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17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든 시기에 발표하게 돼 죄송스럽고 감사하다"고 말문을 연 양동근은 "항상 은퇴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 경기에 나섰다. 어제 오늘 열심히 뛴 것으로 만족하자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은퇴에 대한 아쉬움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웃었다. 또 "선수로서 코트에 설 수 없겠지만 제게 주신 응원과 사랑, 그리고 보고 배운 부분들을 많이 공부해서 다시 코트로 돌아오겠다"고 '지도자 양동근'의 복귀를 약속했다. 이날 양동근은 기자회견에 동석한 박병훈 현대모비스 단장과 유재학 감독, 그리고 함지훈, 조성민 등 동료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포옹을 나누면서도 자꾸 "울어도 되냐"고 물었다. 준비해 온 이별사를 품에서 꺼내면서도 "적어온 게 있는데 좀 울겠다, 죄송하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도 농담을 곁들여 가며 자신의 농구 인생을 처음부터 돌이키고,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나가던 양동근이 끝내 눈물을 보인 건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때였다. 그는 "어릴 때 굉장히 말을 안들었다. 부모님 말씀도 안듣고 공부 안하고 학원도 안 가고 농구시켜 달라고 졸랐다"며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 "시즌 중 아빠 역할까지 다 해준 우리 아내, 무득점을 하고 돌아와도 잘했다고 박수쳐 준 아들, 가족의 힘으로 마흔 살까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원동력이었다"고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농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Sorry, Thank you 였던 것 같다. 패스를 잘하는 가드가 아니니까 알아서 움직이라고 했는데 이해해주고 믿어준 우리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 양동근은 "울산 팬들은 원정에서도 상대 홈팀 팬들보다 소리를 많이 질러주셨고, 홈에서는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응원해주셨다. 그런 함성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 함성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팬들의 마음을 달랬다. 다음은 양동근과 일문일답. Q. 선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첫 번째 통합우승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인 것 같다. 모든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성적이 안 좋았던 시즌이던, 좋았던 시즌이던 제가 소속되어 뛰었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아쉬웠던 적은 딱히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오니까 모두 좋게 기억되고 모든 순간이 소중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Q. 지금에 와서 다시 돌이켜본다면 유재학 감독은 양동근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렸을 때는 굉장히 냉정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냉정함보다 정이 정말 많으시다는 걸 느꼈다. 또 감독님은 꼭 우리가 못 본 걸 질문하신다. 아직 선수라서 그런지 세세한 것까지 잘 안 보이는데 감독님은 딱딱 짚어주셔서 그 부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런 부분들을 잘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내가 이 자리 있기까지 만들어주신 분이다. Q. 은퇴 결정 내린 이유?은퇴 생각은 매년 FA 때마다 했던 것이다. 올해 은퇴를 결정하게 됐지만 작년에 은퇴했더라도, 어차피 내 결정이기 때문에 나쁜 결정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른 팀 가드와 경쟁하고, 우리 팀 선수들과 경쟁해서 차지한 자리고 지금까지 해온 성과들로 뛰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힘들고 경쟁력이 떨어져 은퇴 결심을 내린 것이지, 특별히 큰 의미를 둔 건 아니다. Q. 자녀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우리 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이 본다. NBA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경기보고 저에게 알려주기 때문에. 모든 경기가 다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Q. 가족들과 상의는?은퇴는 늘 달고 살았던 말이기 때문에 집에서는 더 많이 했다. 은퇴할까? 하고 밥 먹듯이 얘기했으니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결정 존중해줬고, 항상 준비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당황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끝난 시즌이 아쉬울 뿐이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Q. 초·중·고, 대학교, 프로까지 많은 선수들과 상대해봤는데 마지막 한 경기 뛸 수 있다면 4명 누구랑 뛰고 싶나.답변 길어질 것 같은데…(웃음). 학창시절 때 같이 농구했던 선수들이랑 다시 한 번 뛰어보는 게 제일 재밌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저도 못 뛰었으니까. 1번은 (김)도수다. 도수가 같이 초등학교 때부터, 저 때문에 농구를 시작했으니까. 초등학교 때 느낌을 갖고 도수를 뽑을 것이고. 대학교 때로 치면 (조)성민이. 여기 와있어서 뽑는 건 아니지만(웃음). 성민이는 항상 내 마음 속에 있는 동생이고, 크리스 윌리엄스도 뽑겠다. 그리고 (함)지훈이는… 너무 많이 뛰어봐서 지겨워서 빼겠다. (이)종현이는 부상 때문에 좀 시간이 필요했던 선수기 때문에 뛰고 싶다. 아예 12명 채울 걸 그랬다. Q. 앞으로 계획과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 또 쉬고 싶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든 상황이라서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유재학 감독님이 어떻게 지도하고 선수를 어떻게 이해시켰는지, 그런 부분을 지금도 배우고 있다. 더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에 어떤 식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건 아직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대해?내가 최고라는 얘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그렇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웃음). 기사들 올라와서 보면 욕을 많이 하시더라. 나는 그런 얘기 한 적 없는데, 내색은 안하지만 속상하다. 선수들도 상처 많이 받으니 덜 미워해 주셨으면 좋겠다. 역대 최고… 최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남들보다 열심히, 한 발 더 뛴 선수일 뿐이다. Q. 그렇다면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팬들에게는 '저 선수가 있을 때 믿음이 간다', '이기든 지든 저 선수가 한 번이라도 뛰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기억으로 남고 싶다. 또 선수들에게는 저 형, 저 동생, 저 친구랑 뛰었을 때가 참 좋았구나 그런 생각 갖게 하는 선수로 남는다면, 성공한 농구 인생이 아닐까 싶다. Q. 등번호 6번 영구결번 사연이나 의미? 신인 때 백넘버가 3번 6번 남았는데 (유재학)감독님이 말씀하셨다. 왜 안 정하냐고. 그래서 3번 6번 남아서 고민 중이라고 했더니 '6번 해' 그래서 '네'하고 정했다. 알고 보니까 감독님이 6번 달고 선수 생활을 하셨잖나. 겉으로는 말씀 안 하시지만 '그래서 6번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Q. 은퇴 투어 꿈꿔본 적은 없나?그런 꿈은 많이 꾼다. 그런데 속으로 '아, 올해까지만 하고 관두겠다' 이런 생각을 항상 해오기도 했고, 은퇴 투어는 내가 받아야 할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은퇴를 정해 놓고 뛰는 시즌은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동기부여도 많이 안 생길 것 같더라. 그냥 꿈만 꿔봤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4.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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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최진실, 10년째 여전히 보고싶다

최진실이 우리 곁을 떠난지 10년이 지났다.2008년 10월 2일 오전 6시 15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 안방 욕실 샤워부스에 압박 붕대로 목을 매 숨져 있는 최진실을 어머니가 발견, 동생 故 최진영이 신고했다.전날까지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 모 제약사의 광고지면 촬영을 진행한 그는 전날 밤 힘든 기색을 표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촬영 도중에도 유독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예정된 스케줄을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하고 도촬영을 중단했다. 그렇게 그는 소속사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가벼운 술을 하며 집으로 갔다.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최진실은 지금까지도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며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배우다. 20여 년 동안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TV·영화·광고 200여편에 출연했다. 1990년대 배우 리서치서 단연 1위를 독차지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호감형 연예인 1세대 여배우다.최진실은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 화장품 모델로 당시 김희애가 모델이었지만 촬영 과정에서 최진실의 미모는 돋보였고 김희애 못지 않게 관심이 쏠렸다. 온에어가 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곧바로 신인에겐 꿈도 못 꿀 삼성전자 광고 자리를 꿰찼다.1989년 MBC 특채로 발탁돼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다음해 영화 '남부군'으로 스크린까지 진출하게 됐다. 계속해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꼭지딴' 드라마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두 권의 일기'에 얼굴을 비쳤다.그러던 중 1992년 6월 국내 트렌디 드라마 시초라 불리는 MBC '질투'에서 최수종과 호흡을 맞췄다. 탄탄한 스토리와 둘의 열연, 배경음악까지 사랑받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서 시구한 연예인으로 이름을 남긴다. 대한민국 최초 일본 광고계에 진출한 연예인 1호도 최진실 몫이었다. 전일본식품사와 1년 계약을 맺고 얼굴로 활동했다.사랑도 싹 틔웠다. 2000년 12월 야구선수 故 조성민과 결혼했다. 이듬해 8월 아들을 낳았고 2003년 3월 딸을 출산했다. 2002년부터 벌어진 이혼 공방은 2004년 9월 내려졌고 마침내 조성민과 합의 이혼했다.수상내역도 화려하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1993) TV 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06)을 거머쥐었다. 특히 1997년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2005년 KBS '연기대상'에서도 여자최우수연기상을 받으며 식지 않는 인기를 입증했다. 백상예술대상에서도 5회 인기상을 수상했고 청룡영화제 11회부터 19회까지 총 8번의 인기스타상을 받았다.생애 마지막 작품은 2008년 3월 방송된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다. '줌마렐라'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를 끌었고 '제2의 전성기'라는 찬사를 받았다.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2018.10.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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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최진실, 사망 9주기 "여전히 그립다"

최진실이 우리 곁을 떠난지 딱 9년이 지났다.2008년 10월 2일 오전 6시 15분,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 안방 욕실 샤워부스에 압박 붕대로 목을 매 숨져 있는 최진실을 어머니가 발견, 동생 故 최진영이 신고했다.전날까지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 모 제약사의 광고지면 촬영을 진행한 그는 전날 밤 힘든 기색을 표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촬영 도중에도 유독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예정된 스케줄을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하고 도촬영을 중단했다. 그렇게 그는 소속사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가벼운 술을 하며 집으로 갔다.그게 마지막이었다. 최진실은 지금까지도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며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배우다. 20여 년 동안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TV·영화·광고 200여편에 출연했다. 1990년대 배우 리서치서 단연 1위를 독차지했고 모두가 좋아하는 호감형 연예인 1세대 여배우다.최진실은 1988년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 화장품 모델로 당시 김희애가 모델이었지만 촬영 과정에서 최진실의 미모는 돋보였고 김희애 못지 않게 관심이 쏠렸다. 온에어가 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곧바로 신인에겐 꿈도 못 꿀 삼성전자 광고 자리를 꿰찼다.1989년 MBC 특채로 발탁돼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다음해 영화 '남부군'으로 스크린까지 진출하게 됐다. 계속해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꼭지딴' 드라마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두 권의 일기'에 얼굴을 비쳤다.그러던 중 1992년 6월 국내 트렌디 드라마 시초라 불리는 MBC '질투'에서 최수종과 호흡을 맞췄다. 탄탄한 스토리와 둘의 열연, 배경음악까지 사랑받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그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서 시구한 연예인으로 이름을 남긴다. 대한민국 최초 일본 광고계에 진출한 연예인 1호도 최진실 몫이었다. 전일본식품사와 1년 계약을 맺고 얼굴로 활동했다.사랑도 싹 틔웠다. 2000년 12월 야구선수 故 조성민과 결혼했다. 이듬해 8월 아들을 낳았고 2003년 3월 딸을 출산했다. 2002년부터 벌어진 이혼 공방은 2004년 9월 내려졌고 마침내 조성민과 합의 이혼했다.수상내역도 화려하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인기상(1993) TV 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06)을 거머쥐었다. 특히 1997년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2005년 KBS '연기대상'에서도 여자최우수연기상을 받으며 식지 않는 인기를 입증했다.영화제 수상도 못지 않다. 청룡영화제 11회부터 19회까지 총 8번의 인기스타상을 받았고 백상예술대상에서도 5회 인기상을 수상했다.생전 마지막 작품은 2008년 3월 방송된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다. '줌마렐라'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를 끌었고 '제2의 전성기'라는 찬사를 받았다.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2017.10.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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