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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인터뷰]조관우 “데뷔 30주년, 이만하면 잘 버텨왔구나 생각”

“30년 동안 가수로 생활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 아닌가요. 그 속에 들어가 있어 다행이구나 싶어요.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찾아주시는 팬들 덕분에 버텼습니다.”가수 조관우(59)가 데뷔 30주년을 언급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환갑의 나이를 앞두고 맞은 데뷔 30주년은, 인생의 반을 조관우로 살아온 셈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남다르다. 1994년 1집 앨범 ‘마이 퍼스트 스토리’로 데뷔한 조관우는 불세출의 명곡 ‘늪’을 비롯해 ‘겨울 이야기’, ‘님은 먼 곳에’, ‘꽃밭에서’ 등 다수의 곡으로 사랑받았다. 팔세토 창법의 1인자로 평가받는 그는 미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독특한 음색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기도 했다.30주년을 맞아 무려 10여 년 만의 단독콘서트 개최를 앞둔 조관우는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콘서트가 굉장히 오랜만인데, 교복 입고 찾아오던 중·고등학생 팬들 중 결혼한 친구들도 있고, 그 친구들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고 담담한 소회를 전했다. 콘서트 타이틀은 ‘더 메모리즈’. 부제는 ‘관우에게 광호가’다. 광호는 조관우의 본명. 30년 전 ‘조관우’라는 예명으로 데뷔하기 전, 언더그라운드 그룹사운드 보컬로 활동했던 뮤지션 조광호를 소환하는 셈이다. “조관우이기에 앞서 28년 동안 광호로 인생을 살아왔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을 해왔어요. 그때 당시의 음악이 그립기도 했고, 그때 형들에게 배운 음악이 조관우의 30년을 지탱해 준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언더에서 음악 할 땐, 유명하진 않았지만 수준 높은 음악을 한다는 자긍심은 있었다”는 그는 음악 트렌드의 변화로 인해 그룹사운드로 설 무대가 좁아지면서 음악으로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하다 오디션을 통해 조관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그렇게 30년을 조관우로 살아왔다. “조관우라는 이름을 갖고 나서는 조관우의 음악을 주로 했지, 조광호 때 여러 가지 받아들이고 배우려 했던 모습을 잃어버렸단 생각이 들었어요. 30년이 지나 돌이켜보니, 조광호 때의 열정이 조관우 땐 좀 부족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기도 하더군요.”조광호로 지내왔던 시절을 잊고 살아온 그에게 ‘광호’를 상기시켜준 건, 90년대 초반 녹음했던 조광호의 LP를 발견해 가져다 준 팬들이었다. 그는 “그걸 본 순간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이 기억 났다. 이거다 싶어 30년 되는 해에 조광호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30주년 콘서트를 앞둔 그의 뇌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특별한 인연은 고(故) 앙드레김이다. 자신의 공연 앞자리를 직접 구매한 티켓으로 늘 채워주고, 수없이 많은 의상을 기꺼이 협찬해 준 ‘찐팬’이었다고 고인을 떠올린 조관우는 이번 콘서트에서 다시 한 번 앙드레김 아뜰리에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앙드레김 선생님의 아드님이, 아버님이 해주셨듯 협찬을 해주기로 하셔서 새로운 의상과 과거 앙(드레김) 선생님이 해주신 옷을 수선해 입고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그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면 만감이 교차할 것 같아요. 앞에 앉아계신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고요.” 데뷔 초,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오직 음악 하나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했던 조관우. 그는 “(디지털화된) 현재의 음악도 존중하지만 어쩌면 과거로 돌아갈수록 음악의 진심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음악의 ‘진짜’는 거기(아날로그 시대)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무수한 명곡들로 사랑받아왔지만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개인적으로 의미를 두는 곡들은 비단 히트곡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당대 사회적 이슈나 동시대의 슬픔을 담은, 발매 당시엔 ‘문제작’으로 꼽혔던 곡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실제로 1999년 발매된 5집 수록곡 ‘엔젤 아이즈’의 뮤직비디오는 동성애 이슈를 다뤄 논란이 됐다. 또 ‘실락원’에는 성수대교 붕괴의 아픔을, ‘유배’에는 현대판 고려장을 담아내며 이 사회의 현실과 단면을 표현했으나 오히려 배척당하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헌정곡 ‘그가 그립다’나 세월호 참사 추모곡 ‘풍등’으로 인간적인 아픔을 표현했다가 정치색 논란에도 휘말렸다. 하지만 조관우는 “마음이 가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며 일각의 정치적 시선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 “아버지(소리꾼 조통달)께서 ‘유행가 가수는 되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사람들에게 오래 불리고 기억될 수 있는 노래를 하라고 하셨다”며 “사회적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관우는 이번 콘서트에서 대표곡 ‘늪’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들은 물론, 조광호로 발매한 LP에 수록된 곡과 당시 애창곡이던 올드팝송 등 다양한 세트리스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조관우 30주년 콘서트 ‘더 메모리즈’는 오는 11일 오후 5시 서울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5.0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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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 “故앙드레김 의상 입고 서는 무대…만감 교차”[인터뷰②]

가수 조관우가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고(故) 앙드레김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조관우는 오는 5월 11일 오후 5시 서울 명화라이브홀에서 30주년 콘서트 ‘더 메모리즈’를 개최하고 팬들 앞에 선다. 공연 준비에 한창인 4월 어느 날, 일산의 한 카페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난 조관우는 “이번 공연에선 앙드레김 아뜰리에 제작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조관우는 “30주년 콘서트를 앞두다 보니 과거에 어떤 일,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는데 앙드레김 선생님이 제일 생각나더라. (선생님께서는)지방 어디를 가더라도, 버스를 대절해서 많은 제자들을 데려와 앞자리를 꽉 채워주시고, 의상도 돈 한 푼 안 받고 2~30여벌을 다 해주셨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조관우는 특히 “표 한 장도 초대권을 받아 오신 적 없고 본인이 직접 구매해 와주셨고, 뉴스에 나에 대한 억울한 뉴스가 나오면 같이 욕해주셨다더라”고 말했다.지나온 가수 생활에서 잊지 못할 인연인 만큼, 이번 콘서트에선 앙드레김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그는 “앙드레김 선생님의 아드님이, 아버님이 해주셨듯 협찬을 해주기로 하셔서 새로운 의상과 과거 앙(드레김) 선생님이 해주신 옷을 수선해 입고 무대에 오를 것”이라며 “그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면 만감이 많이 교차할 것 같다. 앞에 앉아계신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의 부제 ‘관우에게 광호가’는 조관우로 데뷔하기 전 언더 그라운드 싱어로 활동했던 그의 본명 조광호를 소환한다는 의미다. 그는 “28년 동안 광호로 인생을 살아왔고, 언더 그라운드에서 음악을 해왔다. 그때 당시의 음악이 그립기도 했고, 그 때 형들에게 배운 음악이 조관우의 30년을 지탱해 준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어느 날 팬들이 조광호 때 했던 음악을 찾아내 알려주셨는데 ‘아, 이거다’ 싶어 30년 되는 해에 조광호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조관우는 이번 콘서트에서 대표곡 ‘늪’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으로 엄선된 세트리스트를 구성, 관객들에게 최고의 순간을 선물한다는 각오다. 본명 조광호로 발매된 LP음반에 수록된 곡도 선곡했으며, 당시 애창곡이었던 올드팝송도 선보일 예정이다. 조관우 30주년 콘서트 ‘더 메모리즈-관우에게 광호가’는 오는 5월 11일 오후 5시 서울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다. 조관우는 1994년 1집 앨범 ‘마이 퍼스트 스토리’로 데뷔, ‘늪’, ‘겨울 이야기’, ‘님은 먼 곳에’, ‘꽃밭에서’ 등 다수의 곡으로 사랑 받았다. 팔세토 창법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미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독특한 음색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4.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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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우 “큰 키 장점이라 생각 못 해, 故앙드레김이 자신감 올려줘”(과몰입 인생사)[TVis]

배우 최지우가 패션 디자이너였던 고(故) 앙드레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했다.최지우는 25일 오후 방송된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과몰입 인생사’에 출연해 고 앙드레김의 생애를 소개했다.최지우는 “나도 (런웨이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15년? 새롭다”면서 과거를 떠올렸다. 또 그는 과거에 드라마가 끝나면 고 앙드레김의 쇼에 올랐던 때를 회상했다.최지우는 또 “큰 키가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라면서 “선생님(고 앙드레김)을 만나뵀는데 내 외형적인 부분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 자신감을 많이 올려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과몰입 인생사’는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가 보는 선택형 역사 토크쇼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1.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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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박영선, 故 앙드레김 추모...원조 톱모델다운 美친 각선미 눈길

원조 톱모델 박영선이 국민 디자이너 고(故) 앙드레김 10주기를 추모해 눈길을 끈다.박영선은 18일 자신의 SNS에 앙드레김 10주기 추모 패션쇼인 ‘골드 클래스 앙드레김 스페셜 패션에디션’의 리허설 사진을 게재한 뒤, “작년이 10주기였는데, 코로나로 미뤄져 오늘 하게 되었어요. 보고 싶어요 선생님"이라는 글을 올리며 고인을 향한 그리움을 내비쳤다.박영선이 올린 사진에서 그는 앙드레김 패션쇼 특유의 화려한 헤어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붉은 옷으로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이 사진 외에 박영선은 자신의 SNS에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원조 톱모델다운 군살 없는 각선미를 인증하기도 했다. 한편 고 앙드레김은 지난 2010년 폐렴을 앓다 향년 7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김은 지난 50여년간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디자이너였다.현재 ‘앙드레김’ 오트쿠튀르는 그의 아들 김중도 디자이너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최주원 디지털뉴스팀 기자 2021.02.1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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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원빈과 깜짝 웨딩 촬영? 앙드레김 패션쇼 사진 소환..."냉동인간"

원조 톱모델 박영선이 원빈과의 '웨딩 사진'(?)을 깜짝 공개했다.박영선은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990년대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에, 신인배우였던 원빈과 호흡을 맞췄던 패션쇼 사진을 올려놨다. 이어 그는 "원빈 배우 신인시절, 앙드레김 패션 촬영. 너무 잘 생긴 원빈, 앙드레김 선생님의 신인 발탁은 언제나 정답이다. 응답하라 1900s"라는 글을 덧붙여 그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해당 사진에서 박영선과 원빈은 결혼식 신부와 신랑처럼 화사한 의상을 입고 다양한 포즈를 취해보였다. 박영선의 앳된 모습부터 풋풋한 원빈의 미소 등이 시선을 강탈했다.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원빈 미모가 거의 냉동인간급이네요", "박영선님 덕분에 희귀 레알짤을 접하네요",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 "앙드레김 패션쇼는 정말 레전드네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최주원 기자 2020.12.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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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가 될 순 없어' 김학래, 앙드레김 옷 버린 임미숙에 분노

'1호가 될 순 없어' 김학래가 자신의 보물을 버린 임미숙에 분노했다. 27일 방송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서는 휴일을 맞아 대청소에 나선 임미숙-김학래 부부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임미숙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소에 김학래는 “쉬는 날까지 무슨 청소냐”며 투덜댔지만 여느 때처럼 임미숙을 도왔다. 드레스룸을 정리하던 김학래는 보물 1호인 앙드레김의 옷이 없어진 걸 발견했다. 임미숙은 “40년 된 옷이라 수거함에 버렸다”고 말해 김학래를 황당하게 했다. 기막혀하던 김학래는 “앙드레김 선생님 옷을 수거함에 버렸다니”라며 화를 표출했다. 임미숙은 화내는 김학래에게 “앙선생님이 그렇게 좋냐, 김앙래냐”고 반박했지만 결혼 후 처음으로 크게 분노한 김학래의 모습에 이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소정의 용돈으로 그를 달랬다. 다시 옷 정리에 나선 김학래는 명품 옷들을 전부 꺼내 거실에 늘어놓았다. 당황한 임미숙에 김학래는 “장마철에 습해진 명품들은 한 번씩 햇빛을 쐬고 넣어줘야 해”라며 남다른 관리법으로 ‘학드래곤’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어 명품 신발까지 줄줄이 꺼낸 김학래는 구두약으로 광을 내기 시작했고, 이에 장난기가 발동한 임미숙은 김학래의 얼굴을 구두약 범벅으로 만들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20.09.2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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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 유재석X지석진X허경환, 순백의 잠옷패션 '폭소'

'런닝맨' 유재석 지석진 허경환이 잠옷패션으로 웃음을 불렀다.11일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는 당일 섭외한 게스트와 함께 즉흥으로 랜덤 해외여행을 떠나는 '글로벌 랜덤 투어' 2편으로 이어졌다. 유재석 허경환 전소민 지석진이 한 팀을 이뤘다.만보기를 찬 멤버들에 제작진은 "잘 때도 만보기를 차고 자야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전소민은 "옷이 없는데 어디에다 차느냐"고 즉흥 여행에 당황함을 보였다.유재석 지석진 허경환은 호텔에 마련된 잠옷을 입었다. 올화이트 패션으로 나란히 앉은 이들의 모습에 지석진은 "앙드레김 선생님이 생각난다"며 웃었다.황지영기자 2018.03.11 17:15
무비위크

하정우 '앙드레김' 제작보류 "작전상 후퇴…시기상조"(인터뷰)

하정우가 오랜기간 준비했던 영화 '앙드레김'의 제작이 사실상 보류됐다고 밝혔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김용화 감독)', '1987(장준환 감독)' 개봉을 동시에 앞두고 있는 하정우는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앙드레김'과 관련된 질문에 "작전상 후퇴를 외쳤다"고 전했다. 하정우는 지난해 '아가씨(박찬욱 감독)'로 칸 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차기작 계획에 대해 아낌없이 밝힌 바 있다. 당시 '터널(김성훈 감독)' 개봉과 '신과 함께' 촬영을 앞두고 있었던 하정우는 그 외 첫 프로젝트로 '앙드레김'을 언급했던 것. 하정우는 "이렇게 말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일화가 있었다. 손영성 감독 얼굴에서 빛이 돌기 시작했다"며 "칸에 오기 전전전날에도 '앙드레김' 팀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귀띔했다. '앙드레김'은 '의뢰인' 손영성 감독이 준비하던 신작으로, 하정우가 타이틀롤 출연을 확정짓고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앙드레김' 프로젝트는 다시 올스톱 됐다. 앞서 영화계에는 이 같은 소식이 발빠르게 전해졌고, 손영성 감독과 하정우는 '앙드레김'이 아닌 '월식'으로 의기투합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하정우가 입을 연 것은 처음. 하정우는 "일단은 준비했던 팀이 '더 시간을 갖고 시나리오를 개발해 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손영성 감독 역시 다른 작품으로 먼저 찾아뵙게 될 것 같다"며 "투자사 등 여러 곳에 자문을 구했지만 대부분 '아직은 영화화 할 수 없다.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래도 선생님의 유가족 분들이 모두 살아 계시고, 선생님이 활동했던 그 시대 주변 인물들 역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리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사항과 사람들이 얽히다 보니 '당장은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덧붙였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2017.12.18 08:16
축구

[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①"끼와 실력 있는 선수들 해외로 유출…K리그 인기 추락 이유"

1998년은 'K리그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축구장에는 구름관중이 몰렸고, 언론 매체는 앞 다투어 축구 소식을 전했다. 그 중심에는 '앙팡테리블'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고종수(39) 현 수원 삼성 코치가 있었다. 현역시절의 고종수는 "저돌적이고 창의적인 축구를 한다"고 평가받았다. 동시에 거침없는 언변과 쇼맨십으로 '반항아'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래서 일까. 소녀팬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일간스포츠가 2017시즌 개막에 앞서 20년 전 K리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998 트로이카 이동국(38·전북 현대)-고종수-안정환(41·MBC 해설위원)을 차례로 만난다. 2편의 주인공 고종수 코치를 만나 'K리그의 황금기가 다시 오지 않는 이유'와 함께 '옛 추억'을 들었다. ◇소녀팬이 점령했던 1998년 K리그 -1998년은 K리그의 전성기였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팬 300여 명이 팀 훈련을 보기 위해 매일 모여들었다. 언젠가 울산으로 원정을 갔는데 관중이 너무 많이 몰려서 경기가 시작됐는데도 입장을 다 하지 못했다. 구장 측에서 동서남북에 있는 운동장 문을 개방했더니 사람들이 그 문을 통해 그라운드까지 내려와 응원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됐다." -당시 고종수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구단으로 보내오는 팬레터와 선물이 정말 많았다. 내 방에 놓을 수 없어서 구단 숙소에 있던 창고와 손님용 방까지 사용했다. 소녀팬이 나에게 준 삐삐(무선호출기)만 수 백여 개였다. 아마 나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밤에 자려고 하면 선물 받은 삐삐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통에 잠을 못 잤다." -안정환·이동국과 인기 경쟁은. "세 명의 매력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동국이는 동정심을 자극하는 순수함과 풋풋함, (안)정환이 형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잘생긴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사실 잘생긴 편도 아니고 왜 인기가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저돌적인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누가 제일 잘 나갔나. "음…. 98년 인기상을 누가 받았더라. 아마 나인 것 같은데.(웃음) 그거면 다 끝나는 거다. 경쟁은 없었다. 한때 아이돌 그룹 중에 HOT와 젝스키스가 굉장한 인기였는데, 그들처럼 우리도 팬을 나눠 가졌다." -스포테이너의 선두주자였다. "외모 때문에 그런지 모델 쪽은 섭외가 없었다.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님이 이동국과 안정환을 거론하며 '바디가 좋다'며 칭찬을 하셨다. 나에게는 '축구를 열심히 해 줘 감사하다'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뮤직비디오도 찍고 방송도 나가고 그랬다. 그때는 정말 순수하게 방송을 통해 색다른 팬서비스를 하고 싶었다."-그래서일까. '너무 튄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도 노랗게 물들였었고. 솔직히 우리 정서에 안 맞는 행동을 많이 했다. 당시는 염색을 하면 '날라리'처럼 보고 그랬는데 (내 덕에) 지금은 그런 편견이 없다. 어릴 때 그런 행동을 해보니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상담을 할 때 도움이 된다. 고기도 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하지 않나." ◇오지 않는 르네상스를 기다리며-자만하지는 않았나.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방황도 했었고. 소녀팬은 내가 볼만 잡으면 소리를 질러댔다. 언론 보도도 힘들었다. 나는 그 경기에 만족을 못했는데 '고종수가 완벽하게 했다'며 칭찬했다. 언론에 의해 내가 만들어진다고 해야 할까. 인터뷰를 할 때도 거침이 없이 속 이야기를 다 하다 보니 이미지가 '반항아'가 됐다." -2017년 K리그는 98년과 비교해 인기와 명성이 식었다. "재능있고 스타성 있는 선수들을 해외 리그로 계속해서 빼앗긴다는 점에 있다. 어느 한 선수를 보려고 수원 삼성을 응원했는데 어느 날 중국으로 가버리면 경기장에 오겠는가. 다른 리그에서 뛰다가 은퇴 무렵에 국내로 복귀하면 전성기는 지나 있다. 여기에 독창적인 색깔이 있는 어린 선수들마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색깔있는 선수란. "과거에는 각자 잘하는 것이 뚜렷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다 잘하려고 든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색깔이 사라진다.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고 팬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하나같이 운동장에서 너무 착하기만 하고 열심히만 한다. 어쩌다 '끼'를 가진 선수들이 나오면 '골때린다'며 욕한다.'나를 보러 경기장에 오라'고 외칠 선수가 없다." -언젠가 르네상스를 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선수가 돼주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남자의 의리는 감독님과 동료에게만 지켜야 한다. 젊을 때 인기를 얻으면 파리처럼 달라붙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런 지인들과 어울리다가 귀한 시간과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탕진하는 사례가 많다. 승부조작도 거기서 시작된다." 서지영 기자 [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①"끼와 실력 있는 선수들 해외로 유출…K리그 인기 추락 이유" [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②안정환-이동국에게 하고 싶은 말 2017.03.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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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 "마흔에 날 낳은 아버지, 감사하다 말 못한 게 한"

윤제균(45)이 돌아왔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09) 이후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복귀작이다. 한 여름 쓰나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던 '해운대'는 당시 센세이션한 돌풍을 일으키며 무려 1145만명을 동원, 쉽게 말해 '초대박'을 쳤다. 하지만 그는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연출을 끊고 제작자로 변신해 '하모니'(09·제작,각본)와 '7광구'(11·기획), '댄싱퀸'(12·제작,각색)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참여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다양한 움직임 속에서도 '2%의 아쉬움'이 남았던 게 사실. '국제시장'은 이 묵은 갈증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윤제균 감독의 희든카드다.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흥남철수·파독·베트남 전쟁·이산가족 찾기)과 인물들이 살아온 격변의 시대를 주인공 황정민(덕수)의 인생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 '국제시장'은 황정민과 김윤진, 오달수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의 조합으로 언론시사회 후 호평을 받았다.복귀작이라는 것 이외에도 '국제시장'은 윤 감독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시켰다. 극 중 남녀 주인공의 이름인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는 실제 윤 감독의 부모님 성함.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다. 장면 하나, 대사 한 마디를 허투루 할 수 없었다. 그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영화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시사회 후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반응이 좋아서 감사하기도 한데 아직 개봉을 안했고, 일반 관객의 평가가 남아 있으니까 떨리기도 한다. 겸허한 자세로 기도하면서 지내고 있다.(웃음)"-이번 작품을 연출한 이유가 있나."미시적으로 보면 내 개인사에 대한…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헌사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세대 간의 소통이 단절된 시기에 이 영화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만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신세대와 구세대가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행복할 거 같다."-언론시사회 때 '덕수'가 실제 아버지의 성함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는데."배우들한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사무실 식구들만 몇 명 알고 있던 거였는데 어디서 갑자기 그런 질문이 나오더라.(웃음)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컥하기도 했는데, 짠한 게 있다."-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있는 특별한 사연이 있나."아버지가 날 굉장히 늦게 낳으셨다. 마흔이셨는데…다른 (친구들의)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셨다. 내가 사춘기고 그럴 때 다른 친구들 아버지는 일을 하시는데, 정년퇴직을 하고 그러셨다. 캐릭터가 덕수랑 비슷하시다. 무뚝뚝하시고 잔소리도 많고, '버럭'하시는 그런 게 있었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되고, 자식 입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았는데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도 못 드렸는데 그게 한으로 남더라. 지금은 이제 나름 먹고 살만 하니까, 없으시지 않나.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자식의 잘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그런 거 같다."-어디가 아프셨나."암으로 돌아가셨다."-영화에 애착이 갈 수 밖에 없겠다."아버지는 평생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셨던 분이셨다. '국제시장' 영화 가운데 '당신 인생인데 왜 당신이 없느냐'는 대사가 나온다. 평생 당신을 위해서 여행가는 걸 본적이 없고, 평생을 뼈 빠지게 일만 하셨던 분이다. 살아 계셨을 때 잘해주지 못했기 때문에…아버지도 하늘나라에서 보시면 칭찬해주시지 않을까 싶다. 워낙 '아들 윤제균'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던 분이다. 자식에 대한 자부심도 많으셨고, 평생의 낙 중 하나가 어디 가서 하시는 아들 자랑이었다."-제작자에서 감독으로 복귀, 부담스럽지 않았나."감독이 (제작자보다) 4~5배 더 부담스럽다. 제작은 해보니까 잘못됐을 경우 핑계로 말할 수 있는 게 많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배수의 진이다. 핑계하는 순간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온전히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괴롭고 부담되고 그런 직업이다.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후배 감독들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는 편이다.(웃음)"-복귀작으로 '국제시장'을 택해 부담이 가중됐을 거 같다."이 영화는 직접 감독을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다른 감독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감독을 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야기. 준비도 오래 했다."-가장 중요한 덕수 역에 황정민을 캐스팅한 이유는."시나리오를 할 때부터 정민 씨의 이름을 적었다. 황정민의 연기가 아니라 '인간 황정민'이라는 진정성이 와 닿았던 거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건 배우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이다. 제작자와 배우로 두 번 정도 만나봤지만 배우 황정민이 아니라 인간 황정민에 대한 신뢰가 너무 컸다. 영화를 끝내고 나서 '내 생각이 옳았구나' 싶더라. 황정민이 하지 않았으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기대만큼 담백하게 덕수를 잘 표현해낸 거 같다."너무 감사하다. 정민 씨에게 두 가지 감사한데 첫째는 그 역할을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 내가 생각했던 감독이 원하던 역할 이상을 해줬다. 두 번째는 캐스팅 단계에서…정민 씨는 기억을 할지 모르겠는데 2012년 12월에 시나리오를 처음 전달했을 때 직접 전화를 했다. '2013년 여름쯤 '국제시장'이라는 작품을 연출하려고 하는데 잘 읽어봐 주시라' 이렇게 말을 했는데, 정민씨가 '어떤 내용인가'하고 묻더라. '돌아가신 내 아버지에 대한 헌사 같은 영화다' 진짜 이 이야기만 했는데 '언제 촬영에 들어 가냐'고 되물었다. '내년 7~8월쯤 들어갈 거 같다'고 하니까 '내년 7월에 스케줄 비어놓고 있겠습니다. 편하게 시나리오 수정 작업하세요'이러더라. 인간적인 친분은 있지만 톱배우여서 수십개의 시나리오가 오지 않았겠나.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인간 윤제균을 믿어줘 고맙다."-다정다감했던 덕수가 마지막에 가서는 고집줄통이 되는데, 특별한 개연성은 없다."사실 덕수 캐릭터가 꽉 막히고, 꼬장꼬장하게 변했느냐, 그 이유가 뭐냐에 대해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사람이 이렇게 됐다고 말하기에는 어떤 하나의 계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연들을 조금씩 보여주면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원했다."-황정민과 호흡을 이룬 오달수의 코믹연기가 극강이더라."실제 만나보면 진짜 진지하다. 안 웃긴다. 하지만 장면을 편집하면 그렇게 재밌는 거다. 뭔가 특이한 배우다.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 단계 사람에 대해 달관을 한 느낌이랄까. 인간적으로 존중을 할 만한 사람이다. 지식 수준도 높고, 철학적이기도 하다. 점잖고 젠틀하고…찍을 때는 잘 모른다. 좀 더 나가도 될 거 같은데, 좀 더 웃길 거 같은데 하지 않더라. 못하는 가 보면 안하는 거더라."-어떤 의미인가."나중에 사석에서 '선배님이 따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못하신 게 아니라 안하신 거 같다'고 말을 하니까 '조연이 주연을 잡아먹으면 영화가 망한다'고 하시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계산하고 하신 분이다."-영화 사이사이에 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등 재밌는 요소를 넣었는데"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흥남철수, 파독, 베트남 전쟁까지 시퀸스가 너무 다 드라마틱하다. 감정의 굴곡도 심하다. 그래서 시퀀스를 쉬어가는 텀(시간)이 필요했다. 주조연 배우들은 다음 시퀀스에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따라 가야하니까 쉬어가는 타이밍을 결국 제3자가 해줘야 했다. 그래서 역사적인 시대를 관통했던 아이콘들을 넣었다. 단 정치적인 시선을 철저하게 배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장 궁금했던 게 씨름선수 이만기를 넣은 이유다."스포츠 스타 중에 후보 1번이 차범근(축구), 2번이 홍수환(권투), 3번이 김일 선생님(레슬링)이셨다. 왜 이만기 선생님을 했느냐면 (영화 막바지에 그려지는) 이산가족 찾기가 1983년 여름인데 제1회 천하장사가 83년도 추석에 나왔다. 전통 스포츠고 가장 우리의 것인데 인기가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존경심과 아쉬움을 고려해 어느 인물을 넣을지 치열한 고민 끝에 선택했다."-이산가족을 연기한 어른 막순이의 연기도 대단하더라."영화의 모든 캐스팅을 통틀어서 제일 공을 들였던 게 어른 막순이다. 조감독이 미국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연기를 조금이라도 하는 30대 재미교포는 거의 대다수가 오디션에 참가했다. 어린 막순이의 이미지 등을 고려해서 캐스팅했다."-이산가족이 이뤄지는 방송국이 인상적이었다."남원에서 그 장소를 찾았다. 방청객들의 모습이 중요했는데, 남원 KBS 방송국이 그 때 모습을 가장 비슷하게 갖고 있어서 남원에서 촬영을 진행했다."-마지막에 방 안에서 흐느끼는 덕수와 거실에서 웃고 있는 아들, 딸들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그 장면 때문에 '국제시장'을 하게 됐다. 감독 입장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 장면으로 말해주고 싶었던 건 결국 그 사람(덕수)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국제시장'은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아들, 딸, 자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객을 가르치고 싶거나 그런 건 전혀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투영된 작품이다."-'국제시장2'도 생각 중인 거 같은데."이번 영화가 잘 되면 8~90년 격동의 시대, 민주화와 IMF 등을 덕수 가족을 통해 그려보고 싶다."배중현 기자 bjh1025@joongang.co.kr사진=김진경 기자 2014.12.0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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