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권혜미의 더쿠미] ‘스파이 패밀리’ 아빠는 스파이, 엄마는 암살자, 딸은 초능력자라면?
누구나 눈을 반짝이면서 시청했던 ‘인생 만화’ 한 편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세계관이지만, 만화 속 인물들과 스토리에 우리의 삶은 더 즐거워지거나 위로를 받기도 하죠. ‘더쿠미’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나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장르의 만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아이가 울지 않는 세계. 그걸 만들고 싶어서 나는 스파이가 된 거였잖아”완전무결해 보이지만 사실은 급조된 가짜 가족. 그것도 아빠는 스파이, 엄마는 암살자, 딸은 초능력자다.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세 사람이지만 어쩐지 이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이 돼가고 있다.2019년 7월 첫 발간된 일본 만화 ‘스파이 패밀리’는 1권부터 11권까지 누적 3100만 부(7월 기준)를 돌파하며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는 인기 작품이다. 흥행에 힘입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2기(25회)까지 공개됐다. ‘스파이 패밀리’는 초일류 스파이 ‘황혼’(로이드 포저)에게 어느 날 아내와 자식을 만들어 명문 학교에 잠입하라는 임무가 주어지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스파이 패밀리’의 시대적 배경은 마냥 웃을 수 없을 만큼 암울하다. 오랜 시간 갈등을 이어오고 있는 오스타니아(동국)와 웨스탈리스(서국). 서국은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고, 동국은 이 전쟁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50여 년간 이어진 냉전 시대에 분단됐던 독일의 상황을 모티브로 삼았다.전략과 싸움 실력을 모두 겸비한 주인공 로이드는 동국의 유능한 스파이다. 그간 전쟁의 불씨를 일으키는 동·서국의 고위 인물들을 제거해왔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막중한 임무 ‘올빼미’가 내려왔다. 신속히 아내와 아이를 만들어 가짜 가족으로 위장한 뒤, 아이를 명문 초등학교 이든 칼리지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위험 인물로 분류된 오스타니아 국가통일당 총재 도노반 데스몬드에게 접촉하기 위해서다.
고아원을 찾아간 로이드는 어린 여자아이 아냐를 입양하고, 우연히 만난 시청 직원 요르를 아내로 삼는다. 그리고 같은 학부형으로서 데스몬드와 만나 친분을 쌓을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천하의 로이드도 알아채지 못한 게 있다. 바로 아냐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이며, 요르는 서국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암살자라는 것.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모인 로이드, 요르, 아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 아슬아슬한 가족 연기를 시작한다.‘스파이 패밀리’의 최대 장점은 코미디, 첩보, 일상물, 가족극, 로맨스 등 여러 장르가 적절하게 혼합됐다는 점이다. 에피소드는 밝으면서 가볍고, 은밀히 임무를 수행하는 로이드와 요르가 나올 때마다 수준급의 액션으로 짜릿함을 선사한다. 여기에 인물의 뚜렷한 개성과 만화적 성격으로 재미를 안긴다. 극강의 귀여움 아냐는 순수함이 뒷받침된 백치미로 ‘스파이 패밀리’의 웃음을 담당하고, 선남선녀 로이드와 요르는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이 생기며 묘한 설렘을 안긴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느낌이지만, ‘스파이 패밀리’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로이드, 요르, 아냐가 만들어가는 유대감이다. 세 사람은 모두 가족의 결핍을 갖고 있는 인물들로, 서로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실험체로 태어났던 아냐는 처음으로 생긴 아빠와 엄마의 존재에 벅찬 행복을 느끼고, 기계처럼 임무에만 빠져 살았던 로이드와 요르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진정한 쉼을 얻는다. 위험에 빠진 아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아냐의 애교 한 방에 미소짓는다. ‘스파이 패밀리’가 ‘힐링물’이라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세 사람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스파이 패밀리’의 주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동국과 서국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로이드와 요르는 결국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되고, 아냐는 다시 고아가 되는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파이 패밀리’의 분위기는 가벼울지라도, 메시지는 어떤 작품보다 묵직하다. 전쟁으로 얻게 될 명예와 힘 따위 같은 것보다, 진짜 지켜야 할 대상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말이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3.09.11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