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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와 왕권 탄생의 인류학-‘아스달 연대기’와 고조선 역사 속 이야기 ③

[다음은 ‘고조선 논쟁’으로 유명한 유정희(남, 38, 역사학자/고고학자 :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하왕조, 신화의 장막을 걷고 역사의 무대로』,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 『그레이스 켈리와 유럽 모나코 왕국 이야기』,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본 조선왕조』 등을 저/감수) 선생이 직접 쓴 ‘특별기획 칼럼 ③부’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네미(Nemi)라는 곳에 디아나(Diana)의 숲이라고 불리는 신성한 숲이 있었다고 한다. 그 숲은 칼을 든 한 남자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는 사제라고도 하고 혹은 ‘숲의 왕(King of the Wood)’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 왕은 자신이 지키는 나무의 황금가지를 꺾은 도전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즉, 새로운 도전자가 그의 자리를 대신해 그를 이어 ‘숲의 왕’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숲의 왕 역시 나중에 그 다음 등장할 도전자와 결투하고 살해당하는 과정을 통해 교체될 것이었다.이것은 고대 이탈리아 북부에 전해 내려오던 ‘니미의 제의(Rites of Nemi)’라는 이야기로 진화인류학의 거장인 프레이져(James George Frazer:1854-1941)의 역작인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의 서두를 여는 이야기이다.[1] 프레이져는 이 이야기를 고대 인류의 초기왕권 형성과정을 은유(metaphor)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즉, 인류 최초의 왕들은 선대의 왕을 죽임으로써 권력을 계승하게 되는데, 이들은 황금가지로 상징되는 신비한 마법의 힘을 계승하기 위한 방식으로 ‘왕을 살해(regicide)’하는 의식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그렇게 인류의 초기왕권은 제사장적 마법을 지닌 전임자를 살해하는 여러 왕들의 계승을 통해 이어졌다.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Part 1과 2가 마무리된 지금, 그 스토리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담긴 왕권 탄생의 인류학과 많이 닮은 모양새이다. 현재까지 왕에 가장 근접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타곤(장동건)’은 황금가지가 상징하는 신성성을 자신에게 옮겨 오게 하기 위해 아스달의 신성성을 독점하고 있는 아사씨와 혈투를 벌이고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전임자인 아버지 ‘산웅 니르하(김의성)’를 죽였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신성한 아사씨의 인정을 받는 일이었지만, 현재 아스달의 권력을 쥐고 있는 방계 아사씨들은 타곤이 왕이 되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에 타곤은 와한족의 씨족 계승자이며 아사씨의 직계인 ‘탄야(김지원)’를 대제사장으로 만들고, 탄야의 인정을 받아 왕위에 오르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이런 ‘여사제에 의한 왕위의 공인’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신화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임자 숲의 왕을 살해한 새로운 왕은 숲의 정령으로 의인화된 여신들에 의해 새로운 왕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에서 ‘새로운 숲의 왕’이 될 것으로 보이는 타곤의 미래 역시 『황금가지』에 등장하는 숲의 왕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그리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숲의 왕이라면 그 역시 자신의 후임자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상에서 그 주인공은 와한족인 ‘은섬(송중기)’이 점쳐지고 있다. 타곤의 양자인 ‘사야(송중기/은섬의 쌍둥이 배역)’ 역시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타곤의 몰락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아스달 연대기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시청자들에게 읽기 편한 형태로 설명하듯 ‘왕권탄생의 인류학’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어떤 인류학 수업보다 흥미롭고 진지한 형태로 말이다. 참고로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 등장한 권력을 지닌 ‘마법(magic)’에 투영된 인류의 인식이 후대에는 ‘종교(religion)’로 이양되고 현대에 이르러 ‘과학(science)’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고 설명한다. 그의 이론이 유럽 중심적이며, 서구문화에 기초한 단선적 진보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며 후대의 인류학자들에 의해 상당 부분 부정되기는 했지만, 그 연구 성과가 오랫동안 인류학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3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저서인 『황금가지』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자료와 예시, 그리고 인류사 전체를 아우르는 프레이저의 ‘직관(intuition)’ 때문일 것이다.[2] 주어진 사료가 부족할 때 그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은 역사학자의 직관이라는 점에서 프레이저의 통찰력은 사료가 부족한 고조선을 연구하는 여러 역사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처럼 우리 고조선의 초기 왕위 계승과정은 사료의 부족으로 그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동시대 중국의 예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과정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고조선 성립과 동시대의 중국은 이른바 요(堯)-순(舜)-우(禹) 세 전설적인 성군(聖君)의 교체기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의하면 이들은 크게 봐서 같은 부족이긴 하지만, 부자 관계가 아닌 군신 관계를 통해 왕권 계승이 이루어졌다고 전해지곤 하는데, 요가 순에게로, 또 순이 우에게로 왕위를 선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이와는 상반된 기술을 하고 있다. 요-순-우의 왕위계승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이야기처럼 폭력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순이 요를 그리고 우가 순을 차례로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감금하고 압박하여 왕위를 찬탈했다고 한다. 마치 『황금가지』에 등장하는 숲의 왕들처럼 말이다. 아마 우리 고조선 성립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지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런 상상 때문일 것이다. 글 유정희(역사학자/고고학자)이소영 기자각주[1]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1890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후 1915년까지 12권으로 중판되었다.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책들은 후대에 나온 요약본이다. 물론 요약본이라 해도 그 내용이 방대하다. 본 칼럼은 J. G. Frazer, The Golden Bough (Amazon Digital Services LLC, 2016)을 참고하였다.[2] 프레이저와 그를 이은 인류학자들에 대한 평가와 분석은 Peter Munz, When the Golden Bough Breaks: Structuralism or Typology? (New York: Routledge, 2016)을 참고하라. 2019.07.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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