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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구자철 선수 생활 마침표…제주 구단 “상호 기여 방안 논의 중”

구자철(35·제주 유나이티드)이 축구 선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는다.11일 제주 구단에 따르면 구자철은 최근 선수 은퇴를 결심하고 구단과 향후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지도자든, 앰버서더든 상호 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구자철은 지도자 자격증 B급을 보유하고 있고, 향후 A급과 P급도 딸 계획이다.이로써 구자철은 26년의 현역 생활을 마치고 제2의 축구 인생을 준비한다. 2007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한 구자철은 연령별 대표를 거쳐 이듬해 A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빠르게 한국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2010년 K리그 26경기에 출전해 5골·11도움을 기록하고, 이듬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득점왕에도 오른 그는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에도 진출했다. 이후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05 등 지난 2019~20시즌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서만 무려 10시즌 동안 활약했다.이후 알 가라파, 알코르(이상 카타르)를 거쳐 지난 2022년 3월 친정팀 제주로 복귀했다. 제주 복귀 후 세 시즌 간 28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다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이번 시즌엔 3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선수 은퇴를 결심했다. 국가대표로도 오랫동안 활약했고, 지난 2008년부터 2019년까지 A매치 76경기에 출전해 19골을 기록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3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2회에 각각 출전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멤버로,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선 2-0 승리를 이끄는 쐐기골을 터뜨리기도 했다.앞서 구자철은 이번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앞두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올 시즌 내내 부상을 이겨내지 못한 채 그렇게 좌절했다. 한 해 한 해 스스로 제 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한 경기라도 우리 팬들 앞에 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스럽다”며 “그 아쉬움을 다시금 보람으로 만드는 것 도한 제게 다른 숙제가 될 거 같다”고 적었다. 제주 구단은 구자철과 향후 역할에 대한 논의를 마치는 대로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김명석 기자 2024.12.11 13:34
스포츠일반

'당구 여제' 김가영 "3쿠션 선수의 길, 이제 시작일 뿐…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IS 인터뷰]

“제 나이에 ‘시작’이라는 말,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은 자신의 3쿠션 커리어를 ‘시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프로당구 남·여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에 최다 우승(11회), 그리고 최다 연승(24연승) 신기록까지. 2019년 프로당구 출범 이후 그야말로 새 역사를 거듭 써 내려가고 있는데도, 3쿠션 선수로는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가영은 “3쿠션 선수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쿠션을 제대로 친 지 이제 3~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사실 아직 목표도 없다.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계획이 그려졌다면, 3쿠션은 아직 청사진을 못 그리겠다. 그저 선수로서 올인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김가영은 “이 나이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그렇지만, 3쿠션 선수로 조금씩, 또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김가영 천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프로당구 3쿠션 무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정점에 오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프로당구 3쿠션 대기록들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구 2000점' 목표로 시작된 김가영의 당구 인생실제 30년 가까운 김가영의 당구 인생에 3쿠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처음 접한 건 4구였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아버지께 매일 1~2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400~500점을 치면서 2000점을 목표로 삼았다. 특기 정도로 만들어놓으려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당시 한국계 미국인 포켓볼 선수 자넷 리(미국)의 방한이 화제가 되고, TV 광고도 찍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김가영의 시선이 쏠렸다. 공부보다 당구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당구 선수의 길을 고심하던 그는 4구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포켓볼 선수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포켓볼 선수로 정식 등록해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김가영은 “사실 당구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선수로 등록했을 때 바로 윗 선배도 20대 중반이었다”며 “자넷 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프로 하면 되게 좋은가 보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4구 2000점에서 포켓볼 세계 챔피언으로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일반 남자 운동부처럼 매일 훈련했다. 오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낮에는 수업을 받았다. 오후에 당구 훈련을 하다 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중생인 김가영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들이었다.김가영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5년이었다. 훈련을 혼자 다 버텨내야 하니까 기댈 곳도 없었다”며 “남자 선수들도 그렇게 안 하는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거나 사이클을 타야 했다. 꾀를 부리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혼도 났다. 당시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매일이 괴로웠다”고 돌아봤다.그러면서 김가영은 “다들 1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경험들은 뒤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이자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혹독한 훈련 속 김가영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만 국적이던 아시아당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 무대로 향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행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김가영은 “(처음 제안을 받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류신메이(대만)라는 선수의 존재였다”며 “유일하게 테크닉에 반했던 선수이자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전패를 당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만에 가서 다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언어도 통하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 김가영은 오롯이 포켓볼로 승부했다. 남다른 승부욕 속 류신메이에게는 설욕도 성공했다. 대만 진출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류신메이를 이겼고, 1년 정도 지난 뒤엔 승률이 비슷해졌다. 2년 가까이 된 시점엔 오히려 류신메이보다 승률이 더 높은 선수가 됐다. 세계 챔피언의 영예도 안았다. 2004년과 2006년 잇따라 우승해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올랐다. 세계 최초로 포켓볼 그랜드슬램의 역사도 썼다.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도 나섰다. 2006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가영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나라에서 귀화 제의도 받았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는데 한 마디로 잘랐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딸 기회 역시 신청조차 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대만에서 김가영은 결국 외국인 선수였다. 김가영의 실력이 급증한 건 곧 대만 당구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황당한 이유로 대만당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단의 요청으로 잠시 통역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김가영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 때 통역이 따로 없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기 도중 한국 남자 선수들이 판정과 관련해 나에게 통역을 요청해 한국 선수들의 입장을 대신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심판 판정은 대만 선수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런데 그 판정 이후 승부가 뒤집혔다. 경기가 끝난 뒤 대만 당구계의 모든 화살이 돌연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대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기자들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보도했고, 인격모독성 내용까지 담겼다. 대만당구협회장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화살을 나한테 돌려야 자기들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양쪽에 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자격정지는 6개월 만에 풀리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포켓볼 선수에게 내려진 사실상 사형선고대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김가영은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포켓볼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굳게 지켰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였다. 당시 새로 출범한 프로당구협회(PBA)의 초청을 받아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는 게 중징계의 이유였다.김가영은 “당시 와일드카드를 통해 단 한 번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PBA에 정식 가입한 것도 아니어서 서류상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것도, 당구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런 중징계를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당시 새로 출범한 PBA와 대한당구연맹 간 ‘대립’의 본보기 징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가영도 “‘PBA로 가면 김가영조차 제명’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이 PBA로 가지 못하도록 내린 징계였다고 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몇 번 우승을 했든, 국위선양을 얼마나 했든 본보기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특히 당시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한 것 역시도 그저 포켓볼과 나아가 한국 당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던 터라, 김가영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컸다.김가영은 “포켓볼을 더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쫓겨난 셈이다. 그때 대회에 참가한 것도 3쿠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당구 선수들을 위해서는 프로가 생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프로가 생겨야 당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고, 그래야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단체라 (선수들의 생활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그동안 프로당구를 만들겠다는 단체들이 몇 번 있었지만 미심쩍었다. 하지만 PBA는 준비 과정이 믿을 만했다. 첫 대회인 만큼 대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참가해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이었다”며 “PBA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켓볼 역시 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가 생겨야 당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 포켓볼 종목에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그런데도 돌아온 건 ‘영구 제명’이었다. 이 징계로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로서 국내 대회 참가는 물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모두 막혔다. 평생을 포켓볼만 해온 김가영에겐 사실상 사형선고였다. 김가영의 등록 말소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됐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김가영으로선 자신의 선수 생활의 위기만큼이나 후배 선수 등 포켓볼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그는 “후배 등 포켓볼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수분들이나 관계자분들에게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다. 포켓볼 선수로 돌아간다거나 대한당구연맹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포켓볼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포켓볼 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은퇴 기로에서 결심한 3쿠션 선수의 길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는 김가영의 인생 계획도 바꿔놨다. 사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이후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는 “원래 마흔 살 정도까지만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40대 초반부터는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도 ‘경기력도, 이론도 잘 돼 있는 사람이 체육계에서 인정받는다, 너는 가능하지 않느냐’고 해주셨다. 지도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도 포켓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자를 준비하려다 제명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김가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계획보다 더 이른 포켓볼 지도자의 길, 그리고 3쿠션 선수로의 전향이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엄연히 다른 종목인 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종목으로 전향한다는 것 그야말로 큰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김가영은 “결정하는 데까지 정말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초보자 때의 기억과 느낌도 없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큐 길이나 굵기, 공 크기, 당구대 높이 등 모든 게 다르다. 포켓볼을 칠 땐 최소한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탱해 줬다면, 3쿠션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생판 모르는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지도자와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3쿠션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3쿠션 전향 첫 시즌 6차 대회부터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두 번째 시즌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시즌 우승 역시 ‘반짝 우승’으로 비쳤다. 김가영은 “첫 시즌에 왜 우승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할 실력도 아니었다. (초창기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면서 “두 번째 시즌에 혼란기가 왔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나 치자고 했다면, 3쿠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혼란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 운이 좋게 포켓볼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면, 두 번째 시즌이 진짜 내 실력이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그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가영은 세 번째 시즌부터는 매 시즌 2회씩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적응을 마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4연승을 달성하며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기록을 넘어 프로당구 남·여 투어 최다연승 신기록까지 썼다. 평생을 포켓볼을 치다 3쿠션에 전향한 지 5년도 채 안 돼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었다.김가영은 “선수 경험이 많았던 게 컸던 거 같다. 3쿠션에 대한 경험은 적어도, 승부사나 경기인으로서의 경험은 남녀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곧 있으면 선수 생활만 30년 차가 되는데, 그 경험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하는 거 같다. 공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나 공을 다루는 건 아무래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어 “4회 연속 우승 등 이번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3쿠션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나 지금이나 훈련량이나 루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뒤집어엎은 것도 없다. 조금씩 루틴을 수정하고 조절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3쿠션을 시작할 때와 똑같다”며 “그저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김가영이 따라 걷는 레전드의 길지도자까지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가던 포켓볼과 달리, 김가영은 아직 3쿠션 선수로서 목표나 향후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전체적인 계획이 그려지는데, 3쿠션은 아직 안 그려진다. 사실 몇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켓볼과 달리 3쿠션은 선수 생명이 길다.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올인할 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더더욱 체력 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오프시즌 때는 당구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가영은 “오프시즌 때는 한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신경을 쓴다. 당구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할 정도다. 그때 몸을 만들어놓고, 시즌이 시작되면 몸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오프시즌 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여기에 틈틈이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빠졌다. 김가영은 “동호회는 처음 가입해 봤다. 경기 때 다이버 분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와주신다. 사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당구장 평생 안 가보신 분들이 이제는 당구룰을 꿰고 계신다. 반대로 당구 선수들은 저 때문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이어 “프리다이빙에 당구에 도움이 되는지 결론은 못 냈다. 다만 확실히 느끼는 건 있다. 열이 받거나 하던 게 잘 될 때, 긴장될 때 숨이 가빠지지 않나. 당구칠 때 역시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좋은데, 프리다이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며 “취미 생활을 할 땐 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구를 치거나 훈련할 땐 ‘늘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런 마음이라면, 취미를 할 때는 ‘재미있게 놀자, 못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칠 일도 없다. 나쁠 게 없는 거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자기 관리는 끝”이라고 웃어 보였다.이처럼 김가영이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체력 등 자기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다. 여기에는 김가영이 유독 마음속에 담고 있는 레전드의 조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포켓볼 레전드 앨리슨 피셔(영국)가 김가영에게 직접 건넸던 조언이다.김가영은 “예전에 피셔에게 ‘나도 당신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 잠깐 잘하면 그건 반짝 스타’라고 답해줬다. 그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랫동안 잘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선수 생활을 하는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해는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건 운이 아니라 제 노력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고양=김명석 기자 2024.11.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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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s] 명서현, 11년 만에 승무원복 입고 오열 “옷은 예쁜데 나는 늙어”(‘한이결’)

정대세의 아내 명서현이 11년 만에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오열했다.3일 방송된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이하 ‘한이결’)에서 정대세는 나고야에서 누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명서현은 자택에서 승무원 유니폼을 꺼내 들어봤다. 정대세는 누나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아내의 음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하지만 누나는 명서현의 편을 들어줬다. 정대세의 누나는 고부갈등을 겪은 적 있어 무조건 명서현을 편을 들어준다고. 그 시각 명서현은 집에서 결혼하며 그만 둔 승무원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명서현은 “사직한 지 11년 차가 되는데, 유니폼을 입은 제 모습이 기억이 안 나더라. 특강 마치고 유니폼 생각이 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제 커리어 중에서 정말 위에까지 올라갔는데, 갑자기 마침표가 되어 버리니까 미련이 계속 남아있다”고 고백했다.이후 명서현은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손질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옷은 예쁜데 나는 너무 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진 제작진 인터뷰에서 명서현은 “제가 너무 늙어있더라. 주름, 기미도 많고, 머리가 휑했다. 승무원복 입으면 마냥 설렐 줄 알았는데, 여러 감정이 들더라”고 말했다. 이 모습을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던 정대세는 “지금의 제가 비슷한 상황 아니냐. 울컥하더라.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떤 방송에서 아스널에서 제안이 와도 은퇴할 수 있냐고 물어본 적 있다. 그때 전 답하지 못했는데, 아내가 비슷한 상황 아니었냐. 절 위해서 그런 결심을 했단 게 대단했던 것 같다”고 명서현의 깊은 마음을 고마워했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11.0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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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명서현에 말도 없이 일본행…“말 했다가 싸울 것 같아”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의 정대세가 아내 명서현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일본으로 떠나 긴장감을 조성한다.27일 오후 10시 방송하는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이하 ‘한이결’) 15회에서는 정대세가 모처럼 일본 출장길에 오른 가운데, 고부 갈등으로 남편과 다툰 명서현이 옛 직장 동기를 만나 ‘경단녀’로 살며 힘들었던 속내를 털어놓는 모습이 그려진다.앞서 정대세는 “명절 때 아이들을 데리고 나고야 본가에 가고 싶다”고 밝혀, 명서현과 크게 다퉜던 터. 이날 정대세는 냉랭한 집안 분위기 속, 일본 요코하마 출장 때문에 짐을 싸서 현관문을 나선다. 그는 아내가 있는 방문을 두드릴까 잠시 고민도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비행기에 오르는데, 이와 관련해 정대세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가 또 싸울 것 같아서…”라고 나름의 속사정을 밝힌다. 반면 명서현은 “인사 한 마디 없이 일본 출장을 간 남편에게 좀 서운했다”라면서, 남편과 또 다시 엇갈린 마음을 드러내 스튜디오 출연진들을 안타깝게 만든다.잠시 후, 일본 도쿄에 도착한 정대세는 요코하마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이번 출장에 대해 그는 “(은퇴 후) 축구 해설 및 해외 경기 중계를 많이 하고 있다. 축구 선수로 17년 뛰었는데 오랜만에 경기장에 오니 기분이 묘하다”라고 털어놓는다. 직후 그는 멋진 정장 차림으로 구장 관계자 및 팬들과 만나 토크 콘서트를 한다. 구름 같이 몰린 팬들과 프로페셔널한 정대세의 모습에 김용만, 오윤아 등 스튜디오 출연진들은 “와, 멋지다!”라며 감탄한다.같은 시각, 명서현도 승무원 지망생들을 위한 특별 강연에 나선다. 꼼꼼히 멘토링을 해주며 강연을 훈훈하게 마친 명서현은 이후, 절친한 친구이자 옛 승무원 동기를 찾아간다. 모처럼 동기와 만난 명서현은 “사실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겨 서 승무원 일이 그만뒀지만 여전히 (일이) 그립다”고 이야기한다.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정대세는 “사실 아내가 소수만 선발되는 대통령 전용기 승무원이었는데, 그 자리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 당시 내가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 충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미안해한다. MC 오윤아는 “저도 결혼 후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이 끊어질까 봐 불안감이 들었다”라며 명서현의 이야기에 폭풍 공감한다.‘경단녀’로 살아온 결혼 생활과 일본 시댁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명서현의 답답한 속내와, 일본 출장 후 본가 나고야까지 찾아가는 정대세의 위태로운 모습은 27일 오후 10시 방송하는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15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10.24 18:06
예능

율희, 최민환과 결혼 5년만 파경… 양육권 포기? “아이들 위한 선택” (‘이제 혼자다’)

전 아이돌 출신 율희가 ‘이제 혼자다’를 통해 새 출발을 알린다.오는 22일 방영되는 TV조선 관찰 예능 프로그램 ‘이제 혼자다’에서는 아이돌 그룹 라붐의 멤버였던 율희가 첫 독립 공간을 공개하며 인생 2막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선보인다.율희는 ‘최연소 아이돌 부부’라는 타이틀로 21살에 결혼해 세간을 들썩이게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으로 은퇴한 후, 아이들과 단란한 모습을 방송에 공개하며 행복한 소식만을 전했던 율희가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알렸다.아직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인 율희의 삶은 어떨까. 율희는 눈을 뜨자마자 SNS 사진 업로드로 아침을 시작하는 MZ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핸드폰을 한 시도 손에 놓지 않는다. 생계형 인플루언서의 하루가 공개된다.또 율희는 이혼 당시 세 아이들의 양육권을 포기하며 많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다. 율희는 “오직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털어놓는다.한편, ‘이제 혼자다’ 7회는 오는 22일 오후 10시 방송된다.이수진 기자 sujin06@edaily.co.kr 2024.10.21 13:56
예능

문경찬, ♥박소영 결혼 결심 이유 “실물 미인…믿음직스럽다”

코미디언 박소영이 예비 신랑 문경찬과 첫 라디오 동반 출연에 나섰다.박소영은 지난 20일 방송된 MBC 표준FM ‘박준형, 박영진의 2시 만세’에 예비 신랑 문경찬과 출연해 러브 스토리를 밝혔다.오는 12월 22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첫 인상을 비롯해 결혼 준비 과정까지 모두 공개했다. 먼저 박소영은 “오늘 같이 라디오에 출연한다고 주변에 다 알리고 다녔다”라며 첫 동반 출연에 대한 설렘을 드러냈다.결혼 준비 과정에 대해 문경찬은 “소영 씨가 잘 리드를 해준다”라며 박소영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박소영 역시 “제가 정신이 없을 때면 경찬 씨가 불을 꺼준다”라며 남다른 애정을 내비쳤다.또한 문경찬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예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실물 미인이라 생각했다. 작년에 은퇴하고 쉬는 도중,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때 박소영이 옆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다. 그런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고 밝혔다.이에 박소영은 “처음 봤을 때 활짝 웃으면서 오는데 그 인상 자체가 너무 좋았다”라며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화를 하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라고 털어놔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두 사람은 청취자의 고민 사연을 콩트로 완벽 소화하는가 하면 처음 노래방에 가서 불렀던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라이브로 부르며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박소영과 문경찬은 “경찬 씨랑 오늘 처음 방송에 나왔는데 제가 더 긴장한 것 같다”며 ”소영 씨랑 형님들이 편하게 해주셔서 더 잘했던 거 같다“라며 결혼을 축하해준 청취자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 2024.10.21 08:55
예능

“母 은퇴식도 못 와”vs“누가 부르지 말랬냐”…정대세♥명서현, 갈등 폭발 (한이결)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의 정대세와 명서현 부부가 여전히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딪혔다.20일 방송된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이하 ‘한이결’)에서는 ‘결혼 11년 차’ 정대세와 명서현이 고부 갈등과 서로에 대한 서운함으로 팽팽히 부딪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방송 말미에는 정대세가 본가인 일본 나고야로 홀로 떠나는 장면이 나오며 새 국면을 예고했다.이날 정대세는 자신의 전화도 받지 않고 늦게 귀가한 명서현에 대해 “일부러 날 걱정시키려고 하는 악의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고, 명서현은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이어 명서현은 “결혼 후 지난 10년간, 난 쥐 죽은 듯이 살았었다. 당신 경기 결과에 좌우됐던 집안 분위기를 견디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정대세는 “나도 많은 걸 포기했다. 선수 생활도 더 하고 싶었는데, 너와 장모님의 눈치가 보여서 일찍 은퇴한 것”이라고 맞섰다.급기야 정대세는 “난 축구 선수 생활 30년을 뒷바라지 해주신 어머니조차 은퇴식에 부르지 못했다”며 오열했다. 명서현은 “누가 부르지 말라고 했나?”며 억울해했고, 스튜디오에서 이를 지켜보던 양소영 변호사는 “아내와 먼저 (은퇴식에 관련해) 의논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서 아내 탓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용만과 노종언 변호사는 “아내와 어머니 중, 어머니의 희생을 택한 것”이라며 정대세의 편을 들었다. 팽팽한 양측의 의견에 김병후 정신과의원 원장은 “먼저 부인의 아픈 마음을 공감하고 헤아려 준 뒤, 충분한 설명과 함께 어머니를 은퇴식에 모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며칠 뒤, 정대세는 절친한 친구와 만나 고민 상담을 했다. 고부 갈등으로 아내가 일본 나고야 본가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말에 친구는 “아이들을 본가에 보내는 게 맞는 것 같다”면서도 “아내와의 갈등은 꾸준히 대화로 풀면서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대세는 집으로 돌아와 두 아이와 놀아줬고, 모두 잠이 들자 아내와 단둘이 대화를 시작했다. 정대세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셋째를 갖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나고야에서 설날을 보내고도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그러자 명서현은 “그건 당신 욕심이다. (본가에)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당신에겐 거기가 천국일지 몰라도 나에겐 지옥”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정대세는 서운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명서현도 욕실에서 혼자 눈물을 쏟았다. 이후 인터뷰에서 명서현은 “(대세 씨와) 너무 안 맞고 계속 서로에게 바라기만 하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이와 함께, 방송 말미에는 정대세가 갑자기 짐을 싸고 홀로 나고야로 떠나는 모습이 공개돼 긴장감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한 번쯤 이혼할 결심’은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10.21 08:01
프로야구

'은퇴' 이명기 "기량이 떨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베풀며 살겠다" [IS 인터뷰]

"과분한 사랑에 감사했습니다."프로 19년 차 베테랑 이명기(37·한화 이글스)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이명기는 2일 한화 구단이 발표한 재계약 불가 대상자 명단(7명)에 포함됐다. 은퇴를 결심한 그는 본지와 통화에서 "올해 2군 성적(46경기, 타율 0.244)이 안 좋았다. 어느 순간 경기를 뛰는데 (자리를 빼앗는 거 같아서) 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생기더라"며 "열심히 해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부족한) 실력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명기의 공식전 출전은 지난 8월 11일 두산 베어스 2군전이 마지막이다.이명기는 정확한 타격이 강점이다. 통산 타율이 0.305(3624타수 1104안타)로 3000타석 소화 기준 역대 21위에 이름을 올린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야구할 수 있었던 건 공을 정확하게 때리는 능력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장점이 잘 발휘되지 않더라. 경기를 뛰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며 "(타격 능력이 떨어졌다면) 다른 팀에 가서 야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쉽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인천고를 졸업한 이명기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8라운드 전체 63순위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지명됐다. 입단 당시 기대가 큰 유망주는 아니었다. 2군 밥도 오래 먹었다. 2008년 1군에 데뷔했으나 주전으로 도약한 건 그로부터 5년 뒤인 2013년. 이만수 당시 SK 감독은 이명기·한유섬·조성우(은퇴) 등 젊은 선수를 주로 기용하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는데 이명기는 1번 타자·중견수로 새바람을 일으켰다.그는 "2013년 개막전이 가장 기억 난다. 첫 두 타석에서 모두 삼진을 당해 '난 역시 2군 선수'라고 자책했다"며 "세 번째 타석(6회)에서 안타를 쳤다.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야구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당시 투수는 강속구 외국인 투수 레다메스 리즈였다. 이명기는 리즈의 150㎞/h 직구를 받아쳤는데 타구가 2루를 맞고 튀면서 행운이 따랐다. 그의 야구 인생도 그렇게 풀렸다. 이명기는 2017년 4월 KIA 타이거즈, 2019년 7월 NC 다이노스로 트레이드됐다. 지난해 2월에는 자유계약선수(FA) 미계약 상태로 꽤 긴 시간 방황하다 한화 이글스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SK는 날 키워준 팀이다. KIA는 야구선수로서 가치를 올려준 팀이고 NC는 선수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게 해준 팀이다. 한화는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팀이어서 모두 고마울 따름"이라며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내게 많은 기회를 줬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특히 이만수 감독님과 김기태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이명기는 2017년 KIA, 2020년 NC에서 한국시리즈(KS)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제 영광의 시간을 뒤로하고 제2의 야구 인생을 그려야 한다. 향후 거취는 결정된 게 없다. 그는 "좋은 지도자와 팀, 동료들을 만나 실력에 비해 야구를 오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보내주신 과분한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받은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10.03 11:07
LPGA

안신애 일본서 은퇴 선언, "골프 인생의 시작,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이게 제 (일본 무대) 마지막 대회입니다."프로골퍼 안신애(34)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JLPGA 투어에 따르면, 안신애는 지난 22일 일본 미야기현 리후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51회 미야기 TV컵 던롭 여자 오픈 골프 토너먼트를 마치고 "아직 추천 선수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지만, 자력으로 출전 기회를 잡고 싶었다. 정말 아쉽게도 이번이 마지막 경기였다"라고 말했다. 아버지 안효중 씨를 간병하기 위해서다. 췌장암 투병 중인 안효중 씨는 현재 한국에서 투병 중이다. 안신애가 일본에서 계속 뛴다면 아버지를 간호하기 힘들다. 이에 안신애는 일본투어 은퇴를 선언하고 한국에서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안신애는 지난 8월 한국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 클래식과 9월 KG 레이디스 오픈에 연달아 추천선수로 출전한 바 있다. 이 역시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 안효중 씨는 캠핑카까지 구입해 딸의 경기를 따라다녔다. 필드에서도 딸과 나인홀을 돌며 응원했다. 당시 안신애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한국 대회에 참가한 목표는 딱 하나였다. 아버지가 몸이 많이 안 좋으신데, 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나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이제까지 노력하신 보답이라고 해야 할까. 오랜만에 필드에 나오시니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안신애는 JLPGA 투어와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골프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이 환경을 잘 만들어주신 덕분이다. 골프를 통해 뉴질랜드에서 국가대표가 됐고, 한국 투어에서 우승까지 했다. 꿈에 그리던 일본에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KLPGA 투어에선 추천 선수로 상반기에 2번, 하반기에 2번 정규 투어에 출전할 수 있는데, 안신애는 두 번의 추천 선수 출전을 모두 마쳤다. 이후 안신애는 일본으로 돌아가 JLPGA 투어 대회에 임했으나 곧 은퇴를 선언했다. 안신애는 "일본 팬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팬들 앞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실력이 부족했다"며 "이번 시즌은 보람차고 좋은 추억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한국에서 2개 대회에 출전했고, 아버지 앞에서 현역으로 뛰는 모습도 보여드렸다"며 흐뭇해했다. 안신애의 '제2의 인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골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힌트만 던졌다. 안신애는 "내게 골프는 여권 같은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권은 갱신이 필요하다. (은퇴하는) 오늘이 바로 그때다. 골프는 내 정체성이다"라고 말한 뒤, 선수로서의 작별을 고했다. 2009년 KLPGA 투어에 데뷔해 신인상을 받은 안신애는 2010년 제1회 히든밸리 여자오픈과 하이원 리조트컵 SBS 채리티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다승을 수확했다. 2015년엔 메이저대회인 이수그룹 K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메이저퀸에도 등극했다. 이후 2017년 JLPGA 투어에 도전, 약 8년을 활약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윤승재 기자 2024.09.24 13:10
드라마

정해인♥정소민, 입맞춤…“네가 없으니까 시간 안 가” 마음 확인 (‘엄친아’)

정해인과 정소민이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21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 11회에서 배석류(정소민)는 최승효(정해인)의 고백 이후 뒤늦게 그를 향한 감정을 자각했다. 고백에 대한 대답을 약속한 유통기한이 지나고, 최승효의 허전한 빈자리를 느끼고 나서야 깨달은 마음을 전하러 간 배석류. 오랜 우정을 끝내고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최승효와 배석류의 로맨틱한 입맞춤이 본격 쌍방 로맨스를 예고했다.송현준(한준우)을 미국으로 떠나보낸 후, 최승효와 배석류의 유통기한은 디데이를 맞았다. 배석류는 최승효가 대답을 기다릴 것을 알면서도 차마 먼저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이미 한차례 마음에도 없는 거절을 한데다, 송현준과 헤어질 때 흘린 눈물을 오해할까 걱정도 됐다. 역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최승효는 “가뜩이나 복잡한 애 더 헝클어 놓고 싶지 않다”라며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고, 대답을 강요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우유의 유통기한만 들여다보며 서로 연락을 주저하는 사이 시간은 자정을 넘어 버렸다.한편, 서혜숙(장영남)과 최경종(이승준)은 이혼을 결심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최승효는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가 다투던 중 “승효를 낳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서혜숙이 무심결에 뱉은 말은 아직도 생생했고, 그 이후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의 균열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속상함에 술에 취한 최승효는 “엄마도 아빠도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며 배석류에게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서혜숙은 퇴직 권고를 받은 사실을 숨긴 채,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새로운 부임지로 출국한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을 잃은 캐리어가 터미널에서 발견됐다.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모인 최승효, 배석류, 그리고 최경종은 캐리어의 비밀번호를 풀어냈고 서혜숙의 외교부 동기 곽세환(조승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곽세환은 서혜숙이 은퇴하기로 했다며, 그가 최근에 그 일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했다.최경종은 서혜숙을 찾아 나섰다. 곽세환과 마지막 통화에서 산에 갈 거라고 했다는 말에 라벤더 멤버들을 수소문해 어느 지방의 사찰로 향했다. ‘남편과 아들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적힌 기와에는 서혜숙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최승효, 배석류, 최경종은 어두워진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던 중 서혜숙의 신발 한 짝을 발견했다. 최경종은 비탈길 아래에 쓰러진 서혜숙에게 달려갔고, 최승효와 배석류도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았다. 최경종, 최승효는 서혜숙의 무사함에 안도하며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토로했다. 세 사람의 뒤늦은 용서와 화해가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방송 말미에는 최승효가 2주의 출장을 떠나고, 배석류가 혜릉동에 혼자 남겨졌다. 배석류는 최승효가 녹음한 음성 파일에서 요리책 내용이 아닌 또 다른 문장이 기록된 것을 알아챘다. 뜻을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번역해 보니 ‘그 우유의 유통기한은 오늘까지다. 그런데 내일도 모레도 내 마음은 안 상할 것 같다’라는 최승효의 고백이었다. 배석류는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다. 최승효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간 그는 “네가 없으니까 시간이 좀 안 가”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에 최승효는 배석류에게 대답 대신 입을 맞췄다.이날 정모음(김지은), 강단호(윤지온)의 입맞춤 후일담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모음은 순간적인 감정에 저지른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강단호와 강연두(심지유)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그런 가운데 정모음의 엄마 도재숙(김금순)이 바쁜 강단호를 대신해 강연두를 봐주기로 했고, 두 사람은 뜻하지 않게 다시 마주했다. 정모음은 강단호에게 “지난번 일은 미안했습니다!”라고 어색한 적막을 깨며, “과실 비율이 제가 높긴 한데 그냥 쌍방 실수로 합의 보시는 게 어떠세요?”라고 그날의 ‘사고’와도 같았던 입맞춤을 실수로 치부했다. 과연 정모음이 강단호를 향한 마음을 진압할 수 있을지, 강단호는 정모음을 어떤 감정으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두 사람의 이야기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tvN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 12회는 22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09.2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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