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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동진 영화만사] 41년만에 빛을 본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주는 메시지

1983년에 만들어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4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국내에서 개봉된 것에는 일정한 사정이 있다. 1983년은 영화와 대중음악 등 일본의 대중문화가 국내에 개방되기 전이다. 일본 영화 개방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단행된 일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전쟁 포로 수용소를 다룬 영화이고 퀴어 영화다. 첫 장면은 자바섬 영국군 포로수용소에서 동성애로 빚어진 소동을 다룬다. 수용소의 네덜란드 포로와 재일 조선 군인이 성행위를 하다 들켰고 그것 때문에 할복을 하네 마네 하는 얘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의 개봉이 늦춰진 것은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당시의 국내 사회적 정서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성애의 주체가 재일 조선인이어서 한국인 비하 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전근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그러다 이 영화는 한국의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잃었고 40여 년간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 국내 영화사 엣나인이 뒤늦게 수입해 개봉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국내 최초 개봉을 하게 된 이유가 다른 요인을 다 차치하고 국내 극장가가 극도의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데에서 찾아진다는 점이다. 영화사들은 다소 저렴한 비용으로, 그럼에도 오히려 명성은 높고, 그래서 당연히 희소가치가 상당한 클래식 무비로 관객 확보에 나서려고 애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재개봉, 최초 개봉하는 ‘올드 무비’가 늘어나고 있는 경향이야 말로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대중 앞에 선보이게 한 요인이다.‘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일본 거장 오시마 나기사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화를 섹스와 정치(권력)를 내세워 만들었다. 그는 반(反)군국주의자였고 반(反)남성우월주의자였다. 그의 영화 ‘감각의 제국’(1976)은 실제 섹스 장면, 남녀 배우들의 신체 주요 부분이 노출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래서 포르노 논란을 빚었지만 오시마 나기사가 이 영화로 표출시킨 무정부주의적 감성은 당시의 일본사회와 유럽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가 나왔던 1970년대는 이전 시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부작용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역시 성과 권력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시대와 인간이 그 두가지를 뛰어 넘으려 할 때 보편적 인류애와 휴머니즘을 회복할 수 있다는 주제를 선보이고 있다.자바섬의 영국군 포로수용소에서는 매일같이 전쟁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수용소 내에서도 엄연한 군율이 있고 수용소 측이나 포로 측이나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해 이를 지켜 나가려 한다. 수용소장 요노이(류이치 사카모토)는 하라 상사(기타노 다케시)를 통해 포로들을 통제하고 있지만 하라는 잔혹무도하고 다소 변태적인 인물이다. 툭하면 집단 구타가 자행되고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이틀간 밥을 굶기기도 한다. 늘 할복을 요구하고 너희들처럼 항복하느니 명예롭게 죽으라는 둥 정신적 학대가 이루어진다. 새로 온 포로이자 말썽을 자처하는 잭 셀리어스 특공대 소령(데이비드 보위)을 죽이는 것도 머리만 남긴 채 흙 속에 파묻어 놓고 갈증과 고통 속에 서서히 말려 죽이는 방식을 쓴다. 수용소에는 존 로렌스 중령(톰 콘티)이란 인물이 있고 그는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양측간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 영화의 화자는 바로 이 로렌스이며 원작자인 로렌스 판 데르 포스트가 쓴 자전적 소설 ‘씨앗과 파종자’를 토대로 한 내용이다. 영화의 원제 역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이다.수용소의 폭력 사태는 영화가 시작되고 1시간 반쯤에 이르러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요노이 수용소장은 포로들의 부대장이자 영국군 공군 대령인 힉슬리를 명령 불복종(요노이는 포로 중에 무기 전문가를 찾아 내 데리고 오라고 한다. 힉슬리는 전황이 연합군으로 확실하게 기운 때인 1942년인 만큼 무기 전문가를 숨기려 한다)으로 처형하려 하고 이를 말리려던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뺨에 키스를 하는 기행으로 막으려 한다. 수용소는 일대 난리가 벌어진다. 잭 셀리어스가 힉슬리를 대신해서 잔혹하게 처형을 당하는 것은 이 행동 때문이다. 그 모든 사건이 크리스마스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잔인하고 무식한 하라 상사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위기에 처한 존 로렌스를 구해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때문이었을까.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약간의 선한 의지가 남아 있고 그 점이야 말로 우리가 인간에게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부분임을 보여 주려 했던 감독의 생각 때문에 그려진 장면으로 보인다.종전 이후 전범 감옥에서 하라 상사를 면회한 로렌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다 자기만이 옳다고 믿었던 사람들 때문에 빚어진 일이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느 누구도 옳지 않다는 것에 있소.” 지금으로선 이 대사야 말로 “셀리어스가 죽음을 통해 요노이에게 씨를 뿌리고 우리가 그 곡식을 거두고 있다”는 여전히 회자되는 이 영화의 명대사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영화는 시대에 따라 변주하며 메시지를 다르게 전하기 마련이다. 지금 시대의 전쟁이든 정치사회적 혼란이든 다 자기만이 옳다고 강변하는 사람들 때문에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얘기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4.11.28 06:05
영화

가족주의가 지닌 허상, 그 이상한 해학의 영화 ‘장손’ [오동진 영화만사]

추석 연휴 기간에 맞춰 개봉한 독립영화 ‘장손’은 수려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음에도 그 이야기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제목이 ‘장손’이지만 그렇다고 장손인 성진(강승호)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어쩌면 장손이라는 개념, 장손을 중요시하는 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집안 식구들 전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이 집안은 대대손손 대명식품이라는 두부공장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아버지 태근(오만석)은 아주 잠깐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인물이었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전다. 두부공장은 아내인 수희(안민영)가 거의 도맡아 한다. 아내는 집안 일로도 허리가 휘지만 거의 매일 술에, 주사가 장난이 아닌 남편 때문에, 엄격하기 그지없는 시부모 때문에도 속이 탄다. 할아버지는 망나니 아들이 젊은 시절 빨갱이들과 어울려 다녀서 그렇게 됐다며 툭하면 빨갱이 타령을 한다. 그는 꼴통 반공주의자다. 주인공 장손 성진의 본가는 대구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국력배양, 통일성취라는 한자어 표구를 걸고 산다. 장손 성진은 무명급 조연 배우이다. 그는 자신의 서울 전세방 돈을 빼 자신만의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건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빨리 여자를 데려와 아들 셋을 낳으라고 한다. 이런 집안은 많다.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다. 그래서 언뜻 이야기가 신선하지 않아 보이지만 여기저기 의문의 미스터리를 몰래 몰래 박아 넣으며 영화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할아버지가 종종 찾아가는 선산은 비어 있다. 누가 파묘를 하고 누가 빈 무덤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빨갱이를 싫어 하는가. 어떤 서사가 있는 것일까. 할매(손숙)는 자신의 큰 딸, 곧 성진의 큰 고모인 혜숙(차미경)의 통장을 어떻게 했을까. 그 돈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 것인가. 큰 고모가 머물던 별채의 불은 과연 누가 저지른 짓일까. 영화는 마치 한편의 가족 미스터리극처럼 요리조리 의문의 지뢰를 묻어 놓는다.어쩌면 영화 ‘장손’이 묻고 있는 것은 추석 밥상을 준비하고 돌아가신 선친들을 기리는 엄숙한 의식을 치르면서도 그 안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족간 갈등과 각자의 욕망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위선적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을 가족주의라는 고래의 전통적 이데올로기 만으로 과연 극복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것이다. 가족주의만으로는 역설적으로 현대 가족의 문제를 풀어 낼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현대화, 다른 차원의 계승으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꼭 답을 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불을 누가 질렀는지, 통장 명의가 누구로 돼있는지 등등은 범인을 색출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족 문제는 가족이 덮어야 오히려 풀릴 때가 있는 법이다.‘장손’은 롱 쇼트의 미학을 지닌 작품이다. 할아버지가 길을 나설 때 집에서부터 선산으로 향하는 그 길고 굴곡진 길을 카메라는 멀리서 오랫동안 침묵하며 지켜본다. 저 멀리 높이 있는 신(조상)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인 양, 너의 고민과 마음 속 풍파를 다 짐작하고 있다는 것인 양 카메라는 할아버지와 가족 모두의 내면을 응시한다. 그 침잠의 목소리가 참으로 좋은 작품이다.인생은 풀기 어려운 난제들로 가득 차 있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관계들에서 나온다. 우리 모두 가족을 아끼는 척하지만 지긋지긋해 하고, 모든 것을 다 내줄 수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치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가족은 사실상 운명적인 구속의 관계이며 거기서 해방된다는 것은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방된다 해서 그것이 진정 자유로운 무엇을 얻는 것도 아니다.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어쩌면 자발적 감금을 통한 인내와 달관의 무엇을 얻어 가는 고행의 실천을 담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 일이다. 뭘 어쩌겠는가.‘장손’에는 중간중간 매우 코믹한 장면들도 많다. 할매가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하고 장례를 치르는 모습에서 그렇다. 자식들이 모여 부의금을 모아 놓고 내것, 네 것 하면서 나누는 장면은 사실상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베트남으로 이민 간 둘째 딸이 엄마, 곧 장손 성진의 할머니 빈소에 도착하자 마자 엉엉 울자, 한 친척 아줌마가 와서는 곡(哭)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가르쳐 주는 장면도 역설의 코미디다. 전통의 장례와 모든 의식에는 그것을 비웃는 내면의 코미디가 담겨져 있다. 그걸 잘 담아 낸 작품이다.‘베테랑2’가 전국 스크린의 90% 가량을 뒤덮고 있는 시즌이지만 볼 영화가 없다는 불평은 게으름의 발로일 수 있다. 잘 찾아 다니면 ‘장손’같은 영화, ‘딸에 대하여’ 같은 작품 등 수작의 독립영화들이 즐비하다. 영화는 노력의 예술이다. 불평하지 말라. 저스트 두 잇. 찾아가서 이 영화를 보고, 즐기고, 생각하며 문을 나서시기들 바란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4.09.19 06:05
드라마

박찬욱 ‘동조자’ 로다주, 에미상 남우조연상 수상 불발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동조자’로 에미상 남우조연상에 도전했으나 수상이 불발됐다.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6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이하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은 ‘파고’의 러몬 모리스에게 돌아갔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해당 부문에서 ‘동조자’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드라마로, HBO 채널에서 방영된 7부작 드라마다. 극중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미 중앙정보국 CIA 요원과 하원의원, 영화감독, 교육자 등 1인 4역을 연기했다. ‘동조자’는 올해 에미상에서 남우조연상 외 작품상, 감독상 등 다른 부문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한편 텔레비전 예술 과학 아카데미(ATAS)가 주최하는 에미상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으로 꼽힌다. 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 2024.09.16 12:01
영화

[오동진 영화만사] 독파해 내기 최고로 어려운 영화 ‘희생’, 이렇게 보면 된다

소련 시대, 러시아의 거장 감독이었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86년작 ‘희생’의 4K 리마스터링 복원판 시사회에는 영화계의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국에서는 1995년에 개봉됐었으니 29년만의 재개봉이다. 2시간29분의 러닝 타임 후 극장을 나오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영화는 21일 개봉됐다.‘희생’은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일화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감독 육상효도 이 영화를 ‘픽스 롱테이크 쇼트 때문에 영사기가 멈췄다고 관객들이 항의했던 작품’이라고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영화 안에 담겨진 수 많은 상징과 알레고리, 현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철학적 담론, 부조리극처럼 이어지는 배우들의 수많은 대사와 연기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생’을 현대 영화사에 있어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만큼 가장 독파하기 힘든 영화로 생각한다. 깊이 잠들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중반부까지를 잘 참고 넘어 가면 이 영화가 어떤 시대 배경에서 나온 것이고, 또 그래서 어떤 얘기를 하는 것인 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희생’의 시대 배경은 1985년이다. 베를린 장벽은 아직 붕괴되지 않았고(1989년 8월) 소련 연방은 해체되지 않았던 때다.(1992년 공식 해체) 러시아는 여전히 소비에트 연방의 주축국이었고 공산당이 지배하던 체제였다.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기 직전이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이 시작된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전후한 일이다. 아직 몇 년이 더 걸릴 터였다.그러니까 이 영화가 나온 1986년과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85년은 세계가 극도로 불안한 때였다. 당시 미국의 지도자는 로널드 레이건으로 그의 집권 2기 때였다.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이 우주 핵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정치적 선전과 함께 미국 스스로의 우주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인 일명 ’스타워즈’ 계획을 발표하며 전 세계를 미-소간 우주 핵무기 대결로 치닫게 했다. 바야흐로 1985년은 우주 핵 전쟁으로 인한 제 3차 세계대전과 지구와 인류의 종말이라는 세기말적 분위기가 압도했던 시기였다. ‘희생’은 바로 그러한 시대의 아우라를 전폭적으로 극 전체에 깔고 있는 작품이다.‘희생’은 타르코프스키가 1984년 이탈리아 망명 이후 만든 작품이라는 점도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타르코프스키는 스탈린 체제였던 1932년에 태어나 영화 인생 대부분을 소련 공산당과 갈등을 벌이며 살아 간다. 1966년작 ‘안드레이 루블료프’부터 전설의 소련 SF영화 ‘솔라리스’(1972)에 이르기까지 타르코프스키는 인간 본성의 문제와 우주의 근원, 인간 구원의 종교성까지, 유물론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소련 당국이 그토록 싫어하는 관념의 영화들을 만들어 내는데 열중했다. ‘희생’은 타르코프스키의 반(反)유물론, 인간이 궁극의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의 종교 철학적 담론이 집대성 된 것으로 평가된다. 주인공 알렉산더는 인류 종말의 극단적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비우고(집을 불태우고) 하녀인 마리아와 통정을 한다.(계급을 뛰어 넘으려 한다.) 그는 작은 실천에 애를 쓴다. 죽은 나무를 심고 실어증에 걸린 아들에게, 3년을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하면 나무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알렉산더는 미친 세상을 향해 스스로 미친 사람이 됨으로써 시대가 자신을 지배할 수 없음을, 이념의 광기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할 수 없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은 수많은 질문과 의문부호를 이어가게 한다. 영화 오프닝부터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까. 알렉산더가 하녀 마리아와 동침을 하는 장면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를 연상시키는 것은 왜일까. ‘희생’의 재개봉이 이번엔 관객들에게서 어떤 반응들을 끌어 낼까. 1995년에 비해 관객들은 성숙했을까. 타르코프스키가 다시 한번 국내에 예술영화 붐을 일으킬 것인가. 그건 꼭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영화는 시대를 넘어 당대에까지 이르며 여전한 세상의 수많은 난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희생’은 바로 그러한 영화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4.08.22 05:55
연예일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박찬욱 감독 ‘동조자’로 에미상 노미네이트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박찬욱 감독의 작품 ‘동조자’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17일(현지시간) 미국 TV예술과학아카데미가 발표한 제76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 따르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HBO 채널에서 방영된 ‘동조자’로 미니시리즈(Limited·Anthology Series·Movie)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됐다.‘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BBC ‘리틀 드러머 걸’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글로벌 시리즈로,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담은 7부작 시리즈다. 박찬욱 감독이 1~3회 연출자 겸 공동 쇼러너(총괄 책임자)로서 ‘동조자’ 전반을 진두지휘했으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CIA 요원, 교수, 국회의원, 영화감독 1인 4역을 맡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경쟁할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는 ‘펠로 트래블러스’ 조너선 베일리, ‘베이비 레인디어’ 톰 굿먼-힐, ‘트루 디텍티브: 나이트 컨트리’ 존 호크스, ‘파고’ 러몬 모리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동조자’는 남우조연상 외 작품상, 감독상 등 다른 부문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한편 텔레비전 예술 과학 아카데미(ATAS)가 주최하는 에미상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으로 꼽힌다. 국내 수상자로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의 주역들이 있다. ‘오징어게임’은 앞선 제74회 에미상에서 연출상(황동혁 감독), 남우주연상(이정재), 여우 게스트상(이유미), 미술상, 특수시각효과상, 스턴트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올해 제76회 에미상 시상식은 오는 9월 15일 오후 5시(미 서부시간 기준)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07.18 16:31
영화

박찬욱 감독 ‘동조자’ BIFAN에서 만난다…7월 11일 스크린 최초 특별상영

박찬욱 감독의 ‘동조자’가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다.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 집행위원장 신철) 측은 ‘동조자’가 오는 7월 11일 CGV 소풍에서 스크린 최초 특별상영회를 갖는다고 25일 밝혔다. 박찬욱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고 A24 등이 제작에 참여한 ‘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후 선보이는 첫 작품이자 BBC ‘리틀 드러머 걸’(2018)에 이은 두 번째 글로벌 시리즈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이에 BIFAN은 완성도 높은 시리즈를 스크린으로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소개함으로써 매체 간 경계를 허물고 다각화된 관객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전편 특별상영을 결정했다. 이번 ‘동조자’ 특별상영은 영화 매니아들을 위한 BIFAN만의 섹션인 ‘살아있는 덕후들의 밤’에서 다뤄진다.뿐만 아니라 ‘동조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탄 응우옌이 집필한 동명의 원작 소설이 제3회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뜻깊다.현재 ‘동조자’ 시리즈는 국내에서 쿠팡플레이를 통해 독점 시청 가능하며 이번 ‘동조자’ 특별상영은 쿠팡플레이, 모호필름, HBO의 전폭적인 협조로 성사됐다.한편 제28회 BIFAN은 오는 7월 4일부터 14일까지 부천시 일대에서 개최한다. 이주인 인턴기자 juin27@edaily.co.kr 2024.06.25 09:54
영화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서 ‘탈주’ [IS리뷰] ②

지칠 때 무심코 뱉는 표현 중 ‘살기 싫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죽고 싶다기보단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 진심일 테다. 영화 ‘탈주’는 이대로는 살 수 없지만 죽음으로 도피가 아닌, 능동적으로 다른 생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는 북한 청년을 조명한다.‘탈주’의 줄거리를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북한 병사 규남의 치열한 탈북기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이제훈과 구교환의 오랜 염원인 연기 호흡 성사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극 중 규남(이제훈)은 10년간 의무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앞뒀으나 당에서 정해준 운명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북한 병사다. 반면 현상(구교환)은 북한 금수저로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꿈을 뒤로 한 채 보위부 장교를 맡게 된 인물이다. 대척점에 자리한 두 인물은 목숨과 신념을 걸고 부딪힌다. 영화는 규남이 탈주를 계획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단계별 스테이지를 깨는 슈퍼마리오 게임 캐릭터처럼 규남은 스크린을 질주한다. 비무장 지대 최전방, 어두운 밤 붉은 조명이 감싸는 부대 막사에서 눈을 뜬 규남은 각종 환기구를 넘어 벌판으로, 숲으로 달린다. 그가 지침 삼은 ‘집념의 탐험가 아문센’처럼 지뢰의 위치를 하나하나 지도에 기록하며 탈주의 꿈을 키운다.그 치밀한 계획이 실행을 앞두고 예상 밖의 일들로 틀어지며 규남을 가로막게 된 것은 그의 어린 시절 인연인 현상. 현상은 규남을 위기에서 구해주며 지금보다는 나은 처우를 대안으로 제시해 주지만, 규남이 꿈꾸는 삶은 휴전선 너머에 있다. 그렇게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폭주하는 규남을 현상이 끈질기게 맹추격하게 된다. 본격적인 탈주가 그려지며 전개에도 속도가 붙는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캐릭터를 제시했기에 영화는 전사를 상세히 풀기보다는 군더더기 없는 추격전에 집중한다. 탁 트인 비무장 지대 배경으로 흙먼지 날리는 카체이싱 장면과 총격전은 시원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안긴다. 연기력이 증명된 이제훈과 구교환 두 배우의 합도 힘이 좋다. 절박하게 쫓고 쫓기는 두 인물을 보다 보면 북한의 어느 청년이 아닌, 오늘을 버티는 대한민국 청년의 모습으로 겹치는 점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관객은 실패하더라도 뜻대로 해보고 싶은 규남도, 과거의 미련을 떨쳐내고 현실에 만족하고 싶은 현상도 동시대 한국의 자화상임을 눈치채게 된다. ‘탈주’는 온전히 북한을 배경으로, 북한 청년들을 조명했으나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다.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이종필 감독의 말대로 극 중 배경인 북한은 이데올로기나 휴머니즘을 떠나 억압된 현실을 은유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고증보다는 미쟝센과 사운드, 의상, 색감 등 모든 연출 방향이 감각적으로 영화의 콘셉트를 부각한다. 이 감독의 표현대로 ‘탈주’는 관객이 ‘북한 병사가 된 꿈’에 가깝다.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등장하는 ‘저게 될까?’ 싶은 다소 편리하고 극적인 장면들에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다. 그래도 “죽는 것도 나고, 사는 것도 나”, “마음껏 실패해 보러 가는 겁니다”라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규남의 말은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94분의 짧고 굵은 러닝타임이 끝나면 두 사람의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에 앞서 ‘나’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 당신은 규남과 현상 중 어느 입장에 가까울까. 7월 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이주인 인턴기자 juin27@edaily.co.kr 2024.06.20 06:00
영화

이제훈x구교환 “내 갈 길 갑니다”…‘탈주’ 흥행 향해 질주 [종합]

‘탈주’ 이제훈과 구교환이 여름 박스오피스 제패를 향해 힘차게 내달린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이제훈)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작품으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7일 열린 ‘탈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감독은 “작품을 시작할 즈음 우연히 해외 토픽을 봤다. 남아프리카 청년들이 유럽에 밀입국하기 위해 활주로에 잠입해서 비행기 바퀴에 매달려 떴다. 그 이야기를 보며 ‘그 심정이 무엇일까’ 궁금했다”며 “비슷한 시기에 친구가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술 취해 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인물들과 규남의 마음이 비슷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보편적이구나 생각했다”고 기획 계기를 밝혔다.그렇기에 온전히 북한을 배경으로 하지만 정치적 의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 감독은 “작중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나오면 남북관계나 이데올로기, 휴머니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저는 북한을 통해 인간 자체 근원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관객들이 마치 꿈을 꿨는데 북한에 온 것 같은, 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콘셉트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작은 악몽인데 점점 남쪽을 향해 자신의 의지로 달려나가면서 굉장히 짜릿한 꿈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출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영화 곳곳에서는 사실에 기반한 철저한 고증보다는 영화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북한 청년 규남이 훔쳐듣는 남한 라디오에서 가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흘러나오는 식이다. 이 노래는 규남이 탈주를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끊임없이 자극하는 주제곡처럼 등장한다. ‘탈주’에서는 각자의 입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상반된 두 인물이 조명된다. 이제훈은 병사 규남 역을, 구교환은 장교 현상 역을 맡아 치열한 대립각을 세운다. 두 배우의 캐스팅은 이제훈의 지난 2021년 청룡영화제에서 구교환에게 하트를 날린 ‘큰 그림’으로 출발했다.이날 이 감독은 “현상 역의 구교환 배우는 이제훈 배우가 오랫동안 원하기도 했고 저도 원했다. 시나리오 드리기 전에 현상 역은 단순한 추격자 캐릭터였으나 캐스팅을 위해 입체적으로 작업을 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이에 이제훈은 “촬영하면서도 ‘왜 이제야 만났지’ 싶었다. 스크린을 통해 보니 현상이라는 역은 구교환 배우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면서 “지금껏 작품 중에서 이렇게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구 배우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호흡을 맞춘 소감을 전했다.이제훈 캐스팅에 대해서 이 감독은 “극 중 규남을 신념을 갖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혼자 정의를 했었다. 오래전에 스쳤던 인연이자 먼발치에서 본 이제훈 씨가 배우로서 신념을 갖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처럼 보였기에 함께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이제훈이 배역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남달랐다. 이제훈은 “‘잡히면 내 인생은 끝난다, 벼랑 끝이다’ 생각하며 연기했다”며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규남에게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저도 절박하게 연기하면서 제 마음이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추격자 역할을 입체적으로 연기한 구교환은 “현상의 여유 있는 모습의 한편으로 포마드 머리, 화려한 장교 복장 이런 것들이 본인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치장이 아니었나 싶다. 현상 같은 경우는 계속 궁금한 인물로 남겨진다. ‘현상은 이런 인물입니다’라고 쉽게 이야기를 못하겠다. 계속 곁에 두고 보고 싶다”고 애정을 드러냈다.끝으로 이제훈은 “제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그 진심이 관객분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 귀중한 시간 내주시는 한 분 한 분께 부끄럽지 않을 마음으로 임했다. ‘탈주’가 재미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탈주’는 오는 7월 3일 개봉한다.이주인 인턴기자 juin27@edaily.co.kr 2024.06.17 17:26
연예일반

[오!뜨뜨] 막 내리는 ‘지배종’·전환점 돈 ‘동조자’

이번 주말 볼 만한 따끈따끈한 OTT 신작을 소개합니다. 너무 많은 OTT와 작품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간은 이제 끝. 정주행을 부르는 작품들만 일간스포츠가 모아모아 엄선했습니다. 나홀로,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즐겨주세요. <편집자 주> #디즈니 플러스: 지배종‘지배종’이 이번 주 9, 1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배종’은 2025년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 윤자유(한효주)와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퇴역 장교 출신의 경호원 우채운(주지훈)이 의문의 죽음과 사건들에 휘말리며 배후의 실체를 쫓는 서스펜스 스릴러 드라마. 지난달 10일부터 매주 2회차씩 순차 공개됐다.앞선 7, 8회에서는 BF 내부 스파이 정체가 정해든(박지연)으로 밝혀지며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여기에 BF의 극비 프로젝트인 인공 배양 조직 기술이 세상에 드러나며 진정한 ‘지배종’이 되려는 선우재(이희준)와 이를 막기 위한 윤자유의 갈등이 예고됐다. 이 과정에서 윤자유는 자신이 직접 ‘인공 배양 조직’ 기술의 1호 임상 실험 대상이 될 것을 선언했다. 마지막 9, 10회차에서는 인체 실험에 나선 윤자유의 운명과 인공 배양 장기 기술을 손에 쥐기 위한 선우재 일가의 선택, 그리고 BF 직원들과 윤자유를 위기에 빠트릴 대규모 총격 사건이 담긴다. 특히 윤자유와 BF 그룹을 구하기 위한 온산(이무생)이 수많은 경찰과 대립하며 과거 자신의 운명을 뒤흔든 테러의 진실과 함께 설계된 모든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된다. #쿠팡플레이: 동조자‘동조자’도 새 회차로 안방 시청자들을 만난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진두지휘한 HBO 오리지널 7부작 시리즈.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뤘다.박찬욱 감독이 직접 연출한 1~3회와 달리 4회는 영화 ‘시티 오브 갓’, ‘두 교황’으로 잘 알려진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번 회차는 박 감독이 가장 코믹하다고 한 에피소드로 ‘동조자’ 특유의 패러독스(역설)을 보는 재미가 있다. 관전 포인트는 작가주의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 등장한 각양각색 인물의 부조리한 모습을 지켜보는 거다. 캐릭터에 매몰된 셰이머스 대위(데이비드 듀코브니)는 진짜 참전 군인인 양 베트콩 역 배우들을 핍박하고, 미국 망명을 꺼렸던 장군의 딸 라나가 영화에 출연, 미국 자본주의에 물들어 간다.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아이러니를 극대화화며 극의 재미를 더한다.영화 ‘서치’로 익숙한 한국계 배우 존 조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05.10 06:02
연예일반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 종영…3.3% 동시간대 1위, 유종의 미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가 보이지 않는 세상의 곳곳에서 '뒷것'을 자처하며 살아간 김민기를 조명하며 3부작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5일 방송된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에서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탄생시킨 연출가 ‘아침이슬’의 천재 음악가 김민기의 잘 알려지지 않은 행보를 조명했다. 김민기가 유독 학전 어린이 무대에 열정을 쏟았던 이유와 함께, 그가 어린이들을 위해 행했던 헌신들이 공개돼 방송 당일이었던 ‘어린이 날’의 의미를 한층 뜻깊게 만들었다. 이에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의 시청률 3.3%를 기록하며 동 시간대 방송된 전 채널 프로그램을 통틀어 1위를 기록했다. (닐슨 코리아 기준)이날 방송은 김민기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위치한 민간인 통제 구역에서 농사꾼으로 살았던 특별한 이력을 조명하며 흥미롭게 시작했다. 신군부 시대가 열리고, 혼란한 정세 속에서 정권의 탄압을 받던 김민기가 ‘너 죽는 꼴 보기 싫다’는 모친의 간곡한 말에 주변과의 연락을 모두 끊고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귀촌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당시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던 김민기는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품앗이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의 운동회와 졸업식에 참석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나누며 단꿈 같은 1년여를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민기는 농촌의 수익을 위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썼다. 그는 쌀을 팔고 싶지만 판매 루트가 없어 가슴앓이하는 주민들을 위해 당시 광고 기획자인 친구 이상우의 도움을 받아 신문에 광고를 싣고, 연천과 도시를 직접 연결해 중간 유통마진을 줄인 판매 구조를 만들어 농부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겼다. 이처럼 농촌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던 김민기는 연천 집이 의문의 화재로 전소되는 바람에 농촌 생활을 접고 다시금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이후 민주화를 소망하는 대중의 염원이 극으로 치달은 1987년, 故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시청광장에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애국가처럼 울려 퍼졌고, 당시 선봉에 섰던 안내상은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로 위로받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김민기 선생님의 역할이 대단했던 것”이라며 김민기의 영향력을 증언했다. 그러나 정작 김민기는 “나 역시 이한열 열사 노제에 갔었다. 사람들이 ‘아침이슬’을 부르는데 소름이 끼치긴 하더라. 그 순간 그 노래는 그 사람들의 것이었다”라며 역사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한걸음 물러섰다.그런가 하면 신군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김민기는 15년 만에 비로소 금지곡 가수 신분에서 해방되면서 ‘학전’의 대표로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학전에서 탄생한 걸출한 문화 콘텐츠가 대중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훨씬 다양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놀라움을 안겼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연을 시작해, 인기 예능이었던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전신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모두 학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또한 김민기는 2004년을 기점으로 학전에서 어린이 무대를 선보였다. 어린이들에게 판타지를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고민을 본질적으로 이해해 주려는 목적에서 만든 작품들로 김민기가 학전 설립 당시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김민기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이야기,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 등 현실적인 주제를 어린이 무대에 담아냈는데 이를 위해 초등학교 전 학년, 전체 교과서를 공부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놀라움을 자아냈다. 더불어 어린이 무대 티겟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해 보다 많은 아이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 운영난 속에서도 소위 돈이 안되는 어린이 무대를 20년 동안 고집하며 어린이들을 향한 진심을 드러냈다. 특히 김민기가 학전에서 어린이 무대가 있는 날이면 매번 객석에 내려가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곤 했다는 일화는 훈훈함을 더했다.이 같은 김민기의 어린이 사랑은 대학생 김민기의 ‘신정야학’ 활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김민기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을 모아, 당시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다. 신정야학 출신으로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4년제 대학까지 다녔다는 장남수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준 김민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또한 김민기가 달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공공 보육시설 ‘해송유아원’ 건립을 위해, 금지곡 가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비밀 모금 공연에 참여한 일화도 공개됐다. 당시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농사를 짓던 김민기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의 취지에 선뜻 힘을 보태며, 오랫동안 잡지 않았던 기타를 다시 잡았다고. 이후에도 김민기는 해송유아원에 직접 지은 쌀을 기증하는가 하면 운영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고, 해송유아원 원생들이 언제든 학전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게 지원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신정야학을 함꼐했던 김한, 김준규, 이인용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김민기의 남달랐던 어린이 사랑을 전했다. 이들은 “당시 야학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교과서를 별도로 만들었다. 영어 교과서 속에 ‘I am a laborer, you are a owner(나는 노동자, 당신은 사장)’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때 문제 제기한 게 김민기 선배였다. ‘너희가 아이들한테 정신 주입을 하려고 이걸 하려고 한 게 아니지 않냐’라고 했다”며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목적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아이들을 돕고자 했던 김민기의 진정성을 증언했다. 나아가 “저항의 심볼처럼 되었지만 사실 그가 바란 것은 조금 더 좋은 세상,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라면서 “김민기 선배는 그저 그가 만든 노래 ‘상록수’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입을 모아 먹먹한 여운을 선사했다.이처럼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1부에서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못자리 학전의 뒷것을 자처했던 연출가 김민기의 이야기를, 2부에서 엄혹한 시국 속 음악으로 수많은 이를 위로하고 민심을 움직였던 민중의 뒷것 김민기를, 마지막 3부에서는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를 연료 삼아 따뜻한 미래를 만들고자 애쓴 세상의 뒷것 김민기를 조명하며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계기를 선사했다. 또한 김민기를 기억하는 기성 세대에는 진한 공감과 향수를, 김민기를 모르는 세대에는 좋은 어른의 롤모델을 제시하며, 학전의 폐관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멀어져가는 김민기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김민기 주변인사 100여명의 생생한 인터뷰, 나아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초연 영상, 김민기의 친필 노트, 미발매곡 음원 등 지금껏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다채로운 자료들을 아카이빙해,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김민기라는 거인의 사료로서 가치를 더했다.한편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철저히 무대 뒤의 삶을 지향하며 방송 출연을 자제해 온 학전 대표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다큐멘터리로, 5일 3부를 끝으로 종영했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05.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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