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김기자의 V토크] 흥국생명 창업주라면 쌍둥이를 어떻게 했을까
올해는 프로배구 흥국생명 창단 50주년이다. 모기업인 태광그룹 창업주 이임용 회장은 재정난을 겪던 동일방직 배구단을 인수해 1971년 새롭게 팀(태광산업)을 꾸렸다. 1991년부터 흥국생명 배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회장은 원래 축구를 좋아했는데, 당시 대한배구협회장이던 이낙선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유로 배구단을 맡았다. 1996년 작고한 이 회장은 생전에 선수들을 딸처럼 아꼈다. 숙소를 챙겨주고 틈날 때면 선수단을 찾아 함께 식사했다. 부인 이선애 여사는 김장 때는 선수들을 불러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쳤다. 한 번은 회사의 한 임원이 배구단 선수 숙소에 세탁기를 사주자고 했다. 이 회장은 “선수도 결혼 후엔 주부가 된다. 딸을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선수들이 올바른 사회인이 되기를 바랐던 게 이 회장 마음이었다. “시집가기 전까지 선수들은 다 내 딸”이랬던 이 회장은 나중에는 세탁기는 물론 청소기까지 마련해줬다. 흥국생명 배구단이 다시 시끄럽다. 학교폭력 문제로 무기한 징계를 받았던 이재영·다영 자매의 복귀 움직임 때문이다. 구단은 30일 두 선수를 다시 등록할 계획이다. 그 이후 이다영을 해외(그리스)팀에 임대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영도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코트에 복귀시킬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선수 보유권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언젠가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혀 다시 뛰게 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다영의 그리스행 소식이 해외 에이전트를 통해 국내에 전해지자 구단 측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결국 구단이 이적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재영 복귀 여부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구단은 심지어 팀 내 다른 선수에 대한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고 있다. 혹시라도 인터뷰 때 자매 문제가 거론되는 걸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이재영·다영 자매의 ‘폭력’은 학창 시절 일이다. 피해자 폭로가 있었지만, 수사 등 법적 책임을 묻는 단계로는 가지 못했다. 한국배구연맹(KOVO) 징계도 없었다. 구단과 선수가 복귀하려고 하면 막을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팬들은 두 사람 복귀에 비판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태도 문제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구단 태도도 자매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선수 잘못을 구단이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으려 애쓰지 않는 건 구단 잘못이다. 지금의 구단 처신은 잘못한 자식을 감싼 채 소나기가 지나기만 기다리는 부모와 다를 바 없다. 선수를 딸처럼 여겨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우려고 했던 창업주라면 지금의 상황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효경 배구팀장 kaypubb@joongang.co.kr
2021.06.28 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