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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한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통쾌한 누아르와 익숙함의 함정 사이
호불호가 분명한, 장단점이 극명한, 개성이 뚜렷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다. 5일 개봉해 여름 극장가에 도전장을 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앞서 차례로 개봉한 '#살아있다'·'반도'·'강철비2: 정상회담'이 차례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가운데 코로나19로 여전히 침체된 극장가에 출격한다. 좀비를 지나 잠수함을 건너 거친 누아르 세계로 관객을 인도한다. 468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세계'(2013)의 두 주역,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다시 뭉친 작품이다. "드루와 드루와"를 외치던 황정민이 처절한 암살자 인남으로, "거 중구형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라던 이정재가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로 변신했다. 여기에 지원군 박정민이 힘을 보탰다. 박명훈·최희서·오대환 등이 조연으로 참여했다. 메가폰은 홍원찬 감독이 잡았다. 데뷔작 '오피스'로 2015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바 있는 연출자다. '황해'·'추격자'·'나는 살인범이다' 등 다양한 장르 영화의 각색을 맡은 경력도 있다. 이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연출자의 이름만큼이나 촬영감독의 이름도 눈길을 끄는 작품. '기생충'·'곡성'·'설국열차' 등 한국 영화 명작에 빠짐없이 참여한 홍경표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았다. 화려한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약 138억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였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려면 35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슷한 규모로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반도'(3일 기준 누적관객수 349만 명)가 유일하다. 장단점이 극명한 영화의 특징처럼 흥행과 실패, 모 아니면 도다. 출연: 황정민·이정재·박정민 감독: 홍원찬 장르: 범죄 액션 줄거리: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한줄평: 액션, 딱 한 놈만 팬다 별점: ●●●○○ 신의 한 수: 역시 홍경표 촬영감독이다. 액션 신 하나하나에도 홍 감독의 내공이 녹아있다. 리얼한 액션신을 위해 짐벌을 장착하고 근접 촬영을 했다. 액션을 더 리얼하게,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만들어냈다. 또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차갑고, 태국에서는 뜨겁다. 3개국의 각기 다른 분위기를 한 영화에 고스란히 담았다. 여기에 음향 효과를 강렬하게 쓰며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특히 액션신의 진한 타격감은 음향효과의 역할이 8할이다. 연기로는 실망하기 어려운 황정민과 이정재는 인남과 레이의 캐릭터성을 극대화 시켰다. 전사와 이유가 부족한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열연을 펼친다. 차가운 듯하면서 뜨거운 황정민과 뜨거운 듯하지만 차가운 이정재의 분위기는 서로 오묘하게 섞여 들어간다. 두 베테랑 배우 앞에선 어떤 배우도 맥을 못 추릴 것 같지만 박정민은 예외다.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감행해 오히려 황정민과 이정재보다 앞서 나간다. 박정민이 아니라면 유이 캐릭터는 존재하지 못했을 정도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액션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내달린다는 점이다. 앞뒤 옆 돌아보지 않는다. 폼 잡으며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여름 더위를 날릴 시원한 액션 하나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린다. 복잡한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다. 이로써 여름 같은 시기 개봉작 가운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만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신의 악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그냥 액션 한 놈만 팬다. 각 인물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일에 소홀하다. 목숨 걸고 쫓고 쫓기는데, 관객석에서 '쟤 왜 저래?'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또한, 장르적 재미를 강조한 나머지 영화관 밖을 나서자마자 강하게 휘발된다. 이는 이 영화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여운이 남길 바라는 관객이라면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화끈한 누아르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으로 향한 관객들도 실망할 수 있다. 당초 19세 이상 관람가였으나 최종 버전은 15세 이상 관람가다. 시원하고 잔혹한 액션 대신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모호한 장면으로 채워졌다. 홍원찬 감독은 "잔혹한 장면은 찍지도 않았다"며 일부러 편집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화끈한 설정에 맞지 않는 몇몇 장면들로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극적인 범죄 설정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어린 아역 배우가 직접 아동 유괴 피해를 연기하는 장면은 다소 불편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기시감이다. 분명 멋진 때깔로 완성한 영화인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이 익숙하다. 황정민의 엘리베이터 신은 '신세계'를 떠올리게 만들고, 쫓고 쫓기는 구도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유사하다. 황정민이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서사는 '아저씨'와 같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20.08.05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