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1982년 3월 27일, 한국에 첫 프로야구 경기가 열렸을 때
2016년 프로야구는 4월 1일 전국 15개 구장에서 개막전을 치른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35번째 시즌.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철거된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선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이 역사적인 프로야구 첫 경기를 치렀다.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사무총장인 이용일(85)씨는 구장 관리실에서 경기 운영을 지휘했다. 긴장을 풀 수 없었지만 ‘프로야구가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공식 입장객은 2만3998명. 하지만 관중석에 빈 자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주요 좌석은 경기 전 이미 예매가 끝났다.시구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했다. 대통령 뒤로 6개 구단 구단주가 도열했다. 사이 사이 심판 유니폼을 입은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 서 있었다. 시모다 다케소 일본프로야구 커미셔너, 나가시마 시게오, 장훈 등 저명 외빈이 이웃나라 프로야구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1회초 타석에 선 타자는 삼성 천보성이었다. 프로야구 첫 타석이라는 역사적인 순간. 욕심이 생길 법도 했다. 천보성은 MBC 선발 이길환의 초구를 냅다 후려쳤지만 타구는 유격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플라이가 됐다.2사 뒤 삼성 3번 함학수는 1루수 김용윤의 실책으로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1루와 2루를 밟은 주자가 된다. 김용윤은 뒷날 이름을 김바위로 바꾸며 프로야구 1호 개명 선수가 된다. 김바위를 2루에 두고 4번 이만수는 볼카운트 3-2(당시엔 2-3)에서 이길환의 7구째를 노려쳐 프로야구 1호 안타인 좌익수쪽 2루타를 친다. 1호 타점과 1호 득점도 이만수의 이 2루타에서 나왔다. 5번 송진호 타석 때 MBC 유격수 정영기가 다시 실책을 한다. 프로야구의 첫 두 득점은 그래서 모두 비자책점이었다.삼성이 5-2로 앞선 5회초 이만수는 3회부터 등판한 MBC 두 번째 투수 유종겸의 5구째를 노려쳐 구장 왼쪽 펜스를 넘긴다. 프로야구 1호 홈런이었다. 6회초까지 MBC는 3-7로 뒤졌다. 그러나 6회말 감독 겸 선수 백인천의 좌중월 솔로 홈런으로 한 점을 따라갔다. 7회말에는 2사 1·2루에서 4번 유승안이 동점 3점 홈런을 날렸다. 그러자 서영무 삼성 감독은 선발 황규봉을 강판시키고 왼손 에이스 이선희를 투입했다.‘선발 로테이션’이라는 개념이 없던 때였다. 원년 마운드에 오른 6개 구단 전체 투수래야 43명. 각각 2경기, 1경기만 던진 김시철(MBC)과 김경남(삼미)을 제외하곤 선발로만 던진 투수는 없었다. 게다가 김경남은 원래 야수였다.스코어 7-7에서 경기는 연장 10회로 접어들었다. 초반에 힘을 너무 쓴 탓인지 삼성의 10회초는 볼넷 하나만 나왔을 뿐 무득점으로 끝났다. MBC는 10회말 1사 1·3루에서 황금 기회를 잡는다. 볼카운트 3-0에서 4번 유승안이 투수 앞 땅볼로 3루 주자 김인식을 홈에서 횡사시키자 많은 이들은 ‘연장 11회’를 연상했다. 이 땅볼은 1984년 시즌을 끝으로 유승안이 해태로 이적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다음 타자 백인천은 고의4구. 하지만 6번 이종도는 볼카운트 2-0에서 정면승부를 걸어 온 이선희의 3구째를 강타해 비거리 100m짜리 좌월 만루홈런으로 개막전을 잊지 못할 명승부로 끝낸다.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뒷날 동대문구장으로 이름을 변경했고, 2007년 철거된다. 원년 6개 구단 중 삼성과 롯데만이 그때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개막전의 사람들 중 서종철 KBO 초대 총재, 서영무 삼성 감독, 선발투수였던 황규봉과 이길환은 유명을 달리했다. 프로야구는 나이를 먹었고, 더 발전했다.청와대에 ’한국프로야구 창립계획서‘를 제출했던 이용일 전 총장은 “당시에 프로야구가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는 프로야구의 지역연고제를 반대했다. 쿠바 야구를 참고해 밀어부쳤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프로야구가 서른 다섯 살이다. 구단이 자립해야 한다. 프로야구는 구단이 돈을 벌어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해 팬을 즐겁해하고 성적을 올리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규 기자
2016.03.2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