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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옥자'로 8년간 타인 돈 1000억원 썼다"
봉준호 감독과 옥자는 공통점이 많다. 봉준호 감독은 새 영화 '옥자'에서 CG로 완성한 슈퍼돼지 옥자처럼, 거구다. 큰 몸집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동시에 사랑스러움을 뿜어내는 것 또한 옥자와 닮았다. 영화 얘기를 할 땐 한 없이 진지하지만, 돌연 자신도 모르게 소년 감성이 튀어나온다. 이런 모습도 '옥자'를 연상하게 한다. '옥자' 개봉 하루 전인 지난 달 28일,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옥자'로 인터뷰를 하는 게 처음인 것처럼 활기가 넘쳤다. 이미 지난 5월 국내에서 '옥자' 기자간담회가 열렸고, 같은달 17일 개막한 칸 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초청돼 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인터뷰를 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또 다시 '옥자' 배우들과 국내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개별 인터뷰까지 합치면 120개의 인터뷰를 소화했다. 봉준호는 "이제 개봉이잖아요. 2시간 동안 관객들이 '옥자'를 이미지와 사운드로 체험한다는 게 기뻐요"라며 웃었다. -'옥자'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소감이 어떤가."계속 기분이 좋았지만, 더 좋다. 지난 한 달 반 동안은 영화에 대한 말만 많이 해왔다. 물론 기자를 포함해 일부 영화를 본 분들도 있지만, 영화를 안 본 분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더 많았다. 영화에 대한 이미지와 사운드 등 각종 체험이 봉쇄된 상태에서 말만 떠들면 거기서 오는 피로감이 있다. 개봉시기에 힘든 게 그런 점인 것 같다. 특히 영화가 뜨거운 화제몰이를 하면 영화를 관객들이 보지도 못 한 상황에서 많은 얘기를 해야한다. 물론 그 시기만이 주는 뜨겁고 흥분되는 특별한 기분이 있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다. 개봉을 하면 적은 숫자건 많은 숫자건 영화를 본 분들이 생기니깐 그것만으로도 좋다." -온라인스트리밍과 극장 개봉, 두 가지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는."넷플릭스와 함께하니깐 스트리밍을 하는 건 당연한거고, 거기에 플러스, 일단 플러스니깐 욕심이 맞다. 큰 화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극장에서 수익은 저나 제작사, 프로듀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이 영화를 찍었을 때의 방식이나 기술적인 부분이 큰 화면에서 보면 더 좋을텐데라는 욕심과 미련이 있어서 최대한 넷플릭스에 욕심을 냈고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다. 그 결과 영국과 북미에서도 10 여 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작지만 의미있는 상영이 이어진다. 스페셜 스크리닝도 쭉쭉 이어진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도 가고, 시체스영화제 등에도 간다. 작은 숫자지만 스크리닝이 이어지는 게 목표다. 왜 넷플릭스와 하면서 자꾸 큰 화면에서 보라고 자꾸 권유하냐고, 이율배반적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일단 영화를 완성했으니깐 이런 고민을 하는것 아니겠나. 그러니 크게 보려고 하는 노력도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100%편집권을 가졌던 것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물론이다. 도살장 모습 등 '옥자'에서 보기 불편한 몇몇 장면이 있다. 이 영화를 완성하려면 그 장면이 필요했다. 동물들이 겪는 수난과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꼭 넣고 싶었다. 하지만 기존 스튜디오에선 정말 황당해하면서 그 장면을 찍을거냐고 물었다. 미국 스튜디오도 그런 면에서 보수적이었다. 그렇기에 100% 편집권을 준 넷플릭스에 고맙고 그게 큰 의미일 수 밖에 없다." -'옥자'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어떤 기사엔 '4층 건물을 보고 옥자를 떠올렸다' '환각을 보고 옥자를 구상했다'라고도 돼 있던데 그게 아니다. 담배도 못 피우는 사람인데 환각이라는 어감이 안 좋다. 옥자는 어느날 낮에 이수교차로에 운전을 하고 가다가 그냥 고가도로 밑면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크고 두툼한 사이즈의 애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영화 속 옥자 모습 보다 훨씬 큰 건물 4층 사이즈의 동물을 떠올렸다. 이어 '슬픈 표정의 큰 동물이 나오는 비주얼을 CG로 완성하면 어떨까. 저 큰 동물은 어떻게 어울리지 않게 이런 도시에 와 있을까' 등을 생각하다가 '옥자'가 시작한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고, 소설이나 만화를 쓰는 분들은 다 이런 순간들이 있다. 절대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환각을 보거나 그런 게 아니다.(웃음)" -영화 감독이나 제작자들은 봉준호 감독을 사랑스러워한다."교류가 많지 않은 편인데 만나고 실망하면 어쩌지.(웃음) 살이 쪄서 그런가. 하하하."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기대를 박살낼 이유도 없지만,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쉽지 않다. 그냥 하던대로 해야할 것 같다. '설국열차' 때는 900만명을 넘긴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천만 관객에 실패한 '설국열차''라는 글이 있었다. 영화가 꼭 천만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맞는지, 뭘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건 영화가 어느 영화제에 가야하고, 어떤 성과를 내야한다는 등의 영화 외적인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를 준비하거나 찍을 때 나름의 추상적인 목표가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어떤 장면을 영화에서 보고 싶고, 이 장면은 처음 상상한대로 카메라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된다는 집착만 있을 뿐이다." -'옥자'를 보면 틸다 스윈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그랬나. 아직은 젊은 감독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체력적으로 지칠때가 있다. 계속 규모가 큰 영화를 하지 않았나. 기차(설국열차)에 4년, 돼지(옥자)에 4년 등 총 8년 간 타인의 돈을 1000억원 썼다. 나 자신의 상상력을 실현하기 위해 천 억원을 쓰는 기분이 참 묘하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설국열차'도 '옥자'도 틸다가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내게 무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살인의 추억'때 송강호 선배님이 그랬듯, '설국열차'와 '옥자'땐 틸다가 큰 힘이 돼 줬다. 틸다는 정신적으로 멈추지 않는 증기기관차 같은 에너지가 있다. 창의적이고, 상상력도 뛰어나다.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 틸다가 등장하는 신에 애정이 묻어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봉준호 영화엔 밥상 신이 거의 매번 등장한다. 밥상 정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사람은 밥을 먹야아하니깐. 식구라는 게 밥을 같이 먹는 걸 의미하지 않나. 그래서 그런가. 서로 마주보고 밥을 먹는 장면이 좋다. 서로 마주보고 취조하는 걸 찍을 때도 흥분된다. 상을 놓고 마주보고 찍는 신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장면을 찍을 때 기분이 좋다." -봉 감독의 일상도 궁금하다."평범하다. 취미 활동이 없다. 그냥 영화를 안 찍을 땐 영화를 본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시나리오 작업은 작업하기 좋은 조용한 카페에서 한다. 주로 가는 카페들이 있다. 카페에 앉아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조용히 시나리오를 쓴다." -봉준호가 그려나갈 앞으로의 세계도 궁금하다."구체적인 건 다음 영화 '기생충'을 포함해서 두 가지다. 둘 다 규모가 작다. '기생충'은 100% 한국어 영화다. 송강호 씨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송강호씨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야된다. 쓰고 있다. 다음 것도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규모가 크지 않고, 작고 똘똘한 사이즈의, 100% 영어로 된 영화다. 배우부터 스태프 다 미국 회사다. 그 두 편을 포함해 총 머릿 속에 일곱 가지 영화가 있다. 10년 동안 구상한 영화가 있는데 그건 공포에 가깝다. 물리적으로 이걸 다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3년에 한 편을 찍으면 21년이 걸리니깐 그땐 내 나이가 70세가 된다. 이번 '옥자' 프로모션 때 많은 감독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찍은 조지 밀러 감독님은 시드니영화제 폐막 때 '옥자'를 보러오셔서 만났다. 그날 같이 영화도 보고 식사도 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를 70대 노인이 사막에서 맹령하게 트럭에 돌진하면서 찍었다. 그 영화는 촬영감독님도 70대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나도 저때까지 현역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그릴 세계?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찍기만 했으면 좋겠다. 세계는 바뀌어도 되니깐."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사진제공=NEW
2017.07.03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