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파란 머리,맥아더장군,샤이니…'이색공약' 축구장을 풍성하게
근엄한 감독님의 '이색공약'이 축구팬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머리를 파랗게 물들이는가 하면 군복과 선글라스를 착용해 맥아더 장군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아이돌 그룹'을 구장으로 불러들이겠다는 공약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고루하고 무겁기만 했던 사령탑이 반짝이는 공약을 내걸고 이행까지 하면서 요즘 축구장은 풍성한 팬서비스가 넘쳐 나고 있다. K리그 감독들의 유쾌하고 발랄한 이색공약을 짚어본다. ◇파란머리 감독님, 또 볼 수 있나요?윤정환(43) 울산 현대 감독은 지난 18일 포항 스틸러스와 '동해안 매치'를 하루 앞두고 파란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였다. 지난 3월 열린 시즌 출정식에서 신인 선수인 설태수(21)와 한 '공약' 때문이었다. 설태수는 당시 "울산에 관중 2만 명 이상이 오면 윤정환 감독님이 파란 머리를 했으면 좋겠다"며 당찬 부탁을 날렸고, 윤 감독은 "선수가 원한다면 들어주겠다"고 흔쾌히 승낙했다.울산은 지난달 광주 FC와 28라운드 경기에서 홈 관중 2만 명을 넘겼다. 6개월여 만에 고대했던(?) 약속을 지키게 된 윤 감독은 "파란 색깔이 나오게 하려고 몇 차례나 염색했는데 잘 되지 않더라. 결국 파란 색이 묻어나는 스프레이까지 뿌리고 나왔다"던 염색기를 털어놨다.파란머리의 공약 실천과 함께 좋은 운도 찾아왔다. 울산은 이날 포항을 1-0으로 제압하며 리그 3위 자리를 다졌다. 동시에 6월 29일 포항에 당한 0-4 대패도 설욕했다. 이쯤 되면 조금 번거로워도 파란색 헤어컬러가 고마울 지경이다. 그는 "선수들이 내 머리카락을 보고 웃어서 쑥스러웠다. 머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면서도 "그래도 경기에서 이겼으니 한 번 더 해볼까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사실 톡톡 튀는 공약은 김도훈(46)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먼저 했다.김 감독은 지난해 6월 6일 홈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전에 앞서 검은 선글라스와 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홈 첫 승리를 거두면 맥아더 장군으로 분장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손에 파이프 담배까지 쥐어 든 김 감독은 영락없는 맥아더 장군이었다. 마침 구단이 현충일을 기념해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를 초대하면서 '맥아도훈 장군'과 함께 의미를 더했다. 마지막까지 쇼맨십이 넘쳤다. 경기 1시간30분을 앞두고 인천 팬들의 박수와 함께 등장한 김 감독은 사인회를 열어 멋들어진 자필 사인도 선사했다. 그야말로 팬 서비스와 사회적 의미까지 안긴 공약이행이었다.K리그 챌린지(2부리그)는 스케일이 더 크다. 최윤겸(54) 강원FC 감독은 대세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아들까지 불러들인다고 선언했다. 물론 단서는 있다. 바로 1부리그 승격이다. 최 감독은 올해 초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강원이 1부리그로 올라간다면 아들 민호가 있는 그룹 샤이니를 초청해 콘서트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인기가 많은 민호는 소문난 스포츠 마니아다. 축구도 좋아해서 강원 경기를 종종 관람하며 응원하고 있다. 샤이니를 좋아하는 팬 중에서는 강원의 1부리그 승격만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레스터시티, 공약 열풍의 메카 해외에도 공약을 내거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다.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66)은 지난해 선수단에 '피자와 핫도그 공약'을 내걸었다. 조건은 무실점 경기였다. 당시 레스터시티는 매 경기 득점이 많았던 만큼 실점도 적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무실점 경기를 펼치면 피자 사겠다고 했는데 선수들은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아버지 리더십'으로 유명한 라니에리 감독은 공약을 강화하며 무실점 경기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아마 어떤 선수들은 피자 대신 근사한 저녁을 사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실점 경기가 나올 때 피자 위에 핫도그를 얹어줄 수도 있다"고 재치있게 말했다. 피자와 핫도그 전략은 결국 성공했다. 레스터시티는 지난 시즌 창단 뒤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팀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일까. 레스터시티는 지난해 영국 일대에 공약 열풍을 일으키게 했다. BBC의 간판 스포츠 프로그램인 '매치오브더데이(Match of the Day)' 진행자인 개리 리네커(57)도 이 행렬에 '낚였'다. 리네커는 지난해 12월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한다면 다음 시즌 첫 번째 매치오브더데이에서 팬티만 입고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가 궁지에 몰렸다. 각종 온라인 사이트와 SNS에는 리네커가 어떤 색깔의 팬티를 입을 것인지에 대한 토론과 각종 합성 사진물이 넘쳐났다. 심지어 데이비드 카메론(50) 당시 영국 총리까지 나서 "리네커는 당연히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겠다"며 압력을 넣었다. 리네커는 "공약 시점인 12월만 해도 레스터시티가 우승 할 줄 정말 몰랐다"며 "약속은 당연히 지킬 것이다. 지키는 방법에 대해 BBC 측과 의논도 했다. BBC가 공영방송 아닌가. 내심 팬티만 입고 방송을 진행하는 건 안 된다고 거절해주길 기대했는데 '막지 않겠다'고 하더라"며 울상을 지었다.결국 지켰다. 리네커는 지난 8월 2016~2017 프리미어리그 시즌 첫날 자신의 방송에서 레스터시티의 엠블럼이 박힌 하얀 팬티를 입고 방송을 진행했다. 그는 "방송 전부터 운동과 다이어트로 몸을 만들었다"며 군살 없는 몸매의 비결을 털어놨다. 서지영 기자
2016.09.2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