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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포환 던지기 최강자 中 궁리자오, 드디어 웃었다...올림픽 4수 끝에 金

궁리자오(32·중국)가 네 번째 도전 끝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궁리자오는 1일 일본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포환 던지기 결선에서 20m58을 던져 우승을 차지했다. 현역 최고로 꼽히던 궁리자오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7년 런던, 2019년 도하에서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했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걸지 못해왔다. 첫 출전인 2008년 자국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4위 후 상위 두 명이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메달을 박탈당하면서 이후 2위로 승격하며 은메달을 받았다. 세 번째 출전인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4위에 그쳤다. 네 번째 도전 만에 따낸 금메달이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따르면 궁리자오는 우승 후 인터뷰를 통해 “20m의 선을 돌파하고 싶었다”라며 “오늘 개인 최고 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그를 위한 모든 노력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개인 신기록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이날 궁리자오는 5라운드에서 20m53을 기록했고 이어 6라운드에서 20m58로 개인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그는 “20.53m를 기록했을 때 우승을 확신했다”며 “이 금메달은 나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와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금메달을 딸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밝혔다. 세계육상연맹도 궁리자오의 우승을 축하했다. 세계육상연맹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마침내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고 처음으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딴 중국 여성이 되었다”라며 “궁리자오는 2017년과 2019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올림픽 우승을 놓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한편 19m79로 2위를 차지한 레이븐 손더스(미국)와 19m62로 3위를 기록한 밸러리 애덤스(뉴질랜드)도 축하를 나눴다. 세계육상연맹은 손더스가 부상과 정신건강 문제를 극복하고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손더스는 인터뷰를 통해 “대회를 통해 정말 많은 성 소수자들,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은 사람들, 미국 흑인 커뮤니티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의 흑인들에게 영감과 동기부여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4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수상한 애덤스도 밝게 소감을 전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2016년 리우올림픽 은메달을 수상했던 애덤스는 이번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면서 4회 연속 시상대에 올랐다. 애덤스는 “동메달이든 금메달이든 느낌은 같다”라며 “나는 오늘 한 여성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이면서도 선수로 돌아와 둘 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두 자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감을 전했다. 차승윤 인턴기자 2021.08.01 18:03
연예

'노는 언니' 이수정, 500kg 거뜬 괴력의 센언니 첫 등장

'포환던지기 최강자' 이수정 선수가 '노는 언니'들을 투포환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내일(22일) 오후 8시 50분에 방송될 티캐스트 E채널 '노는 언니'에는 '2021 제25회 전국실업 육상경기 선수권대회' 투포환 부문 1등이자 '2019 한·중·일 친선육상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제주 육상팀 소속의 현역 선수 이수정이 등장, 언니들과 같이 차원이 다른 웨이트의 신세계부터 포환던지기 도전까지 함께한다. 실내 육상 훈련장에서 만난 이수정과 언니들은 웨이트 3대 운동에 나선다. "최고기록 16.67m"라며 투포환 여자 현역 랭킹 1위임을 밝힌 이수정은 허리를 다쳤음에도 가볍게 몸을 풀어야겠다며 스쾃만 90kg을 들어 놀라게 한다. 심지어 평소에는 스쾃 210kg에 벤치프레스 125kg, 데드리프트 170kg 총 505kg의 웨이트 운동이 가능하다고 해 투포환계 1인자 다운 명성을 증명한다. 이 모습을 본 언니들도 운동선수들답게 자극받아 웨이트 3대 운동에 도전한다. 언니들은 웨이트 중 발견한 소도구인 메디신볼로 다양한 훈련법을 선보인다. 특히 이들은 종목별로 훈련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앞다투어 종목별 시범을 시작한다. 한유미는 배구에서는 스파이크를 연습해야 한다며 땅을 향해 공을 내리꽂는가 하면 반대로 박세리는 골프에서는 스윙을 친다며 공을 올려친다. 수영선수 정유인은 영법 하듯이, 투포환 선수 이수정은 누워서 공을 위로 밀어내는 등 각양각색 메디신볼 운동법에 관심을 모은다. 몸풀기를 마친 언니들은 본격적인 포환던지기 배우기에 돌입한다. 육상의 한 종목임에도 투포환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아쉬워하던 이수정과 함께 직접 투포환 종목에 대해 알아가기로 한 것.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육상부 출신인 박세리는 체육 특급 클래스답게 완벽한 자세로 내공이 느껴지는 투포환 실력을 뽐낸다. 언니들이 다 함께 도전한 투포환에서 누가 가장 포환을 멀리 던졌을지 그 결과가 더욱 기다려진다. 제주 육상대표주자 이수정은 학창 시절 감사했던 선생님들을 회상한다. 당시 그녀는 남자고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던 육상부 선생님의 집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꺼내 과연 무슨 사연이 있었을지 궁금증을 치솟게 한다. '노는 언니'는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된다. 공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E채널을 통해 선수들의 생생한 현장 소식을 만나볼 수 있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21.06.21 09:58
스포츠일반

박세리, 골프신동에서 명예의 전당까지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던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 박세리(30·CJ)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영웅 중에 한명이다. 그러나 그 골프영웅이 '골프신동'에서 '골프여왕',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까지는 숱한 고난과 좌절이 함께 했다.  1977년 8월 대전 유성에서 태어난 박세리는 유성초등학교 때 골프광이던 아버지 박준철씨(57)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쥐었고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투포환 선수로 활약했던 덕인지 박세리는 또래들에 비해 힘이 월등하게 앞섰지만 특히 승부근성에서 프로들도 두려워 할 만큼 강인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싱글 핸디캐퍼가 됐다는 아버지 박씨가 당시 박세리에게 아무리 높은 건물도 계단으로만 오르내리도록 했다거나 근성을 키우기 위해 한 밤 중에 '공동묘지'를 혼자서 다녀오도록 혹독한 정신력 훈련을 시킨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박세리는 15세이던 지난 1992년 라일&스코트여자오픈에서 199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원재숙을 연장전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해 '골프신동' 탄생을 알렸다. 1995년에는 8개 밖에 없었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대회 가운데 3승이 아마추어인 그의 몫이었다. 프로 무대에 뛰어든 1996년 4승을 올린 박세리는 2승을 보탠 1997년 한국 땅을 벗어나 세계 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후원을 업고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렇지만 세간의 평가는 냉혹했다. 박세리가 "LPGA투어에서 우승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박세리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LPGA투어에 데뷔한 지 일골 달 밖에 지나지 않아 1998년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어진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마저 우승하자 세계 언론들은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별칭도 얻었다. 무엇보다 US여자오픈 당시 닷새 동안 93홀에 걸친 혈투를 벌인 박세리가 보인 '맨발 투혼'은 IMF 사태의 그늘에서 신음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일대 사건이었고 박세리는 어느덧 '국민스타', '골프여왕', '골프영웅'로 발돋움했다.  이후 두 차례 우승을 추가한 박세리는 신인왕이 됐고 이듬해 4승을 올리며 LPGA투어 최강자로 군림했다.2000년을 무관으로 보내 잠시 주춤했던 박세리는 2001년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을 포함해 5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려 골프여왕의 자리를 넘봤고 2002년에도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을 비롯해 5승을 수확했다. 박세리가 승전보를 전해올 때마다 온 국민은 환호했고 '사치성 오락'이던 골프는 '국민 스포츠'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LPGA투어 진출 7시즌 만인 2004년 시즌 초반 5개 대회에서 세 차례 '톱10'에 이름을 올려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이며 5월 초 미켈롭울트라오픈에서 우승, '명예의 전당' 헌액 포인트 27점을 모두 채우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제 남은 마지막 관문은 'LPGA투어에서 10시즌을 활동해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조건만을 남겨 놓았다. 하지만 목표를 너무 일찍 달성한 탓에 밀려온 허탈감 때문일까. 박세리는 끝없는 추락의 길로 떨어졌다. 쳤다 하면 70대 후반 타수였고 80대 타수를 치는 일도 잦아 '주말골퍼 수준'이라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했다. 박세리는 이 '주말골퍼 수준'이라는 혹평을 죽기보다 더 싫어했다. 2005년에는 12개 대회에서 세 차례나 컷 오프됐고 하위권을 전전하다 '시즌 중도 포기'라는 극약처방까지 선택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그러나 포기하지도, 주저 앉지도 않았다. 지난해 6월 자신의 LPGA투어 생애 첫승을 거머쥐었던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을 제패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우리의 '골프영웅' 박세리는 바로 그 대회와 장소에서 8일 지난 10년간 회한의 눈물을 뿌리며 한국인 첫 '명예의 전당' 헌액의 선포를 알렸다. 최창호 기자 ▷ 박세리, LPGA 명예의 전당은 ‘아시아 1호’▷ 빅3 시대 다시 오나?▷ 박세리에게 남은 최고의 과제는 결혼?▷ 세리-지성-찬호, 한국스포츠 빛낸 '3朴'▷ 박세리 `10년 노력하니 여기왔다` 2007.06.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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