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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RE스타] ‘소풍’ 나문희, 엄마·할머니 아닌 친구로②

사연을 가진 아내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나 할머니도 아니다. 배우 나문희가 이번엔 80여년의 삶을 또박또박 걸어온 한 여자를 연기했다. 나문희의 연기를 사랑하는 이들이 영화 ‘소풍’을 놓쳐선 안 되는 이유다.‘소풍’은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고 인생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를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연예계의 절친한 동료 나문희와 김영옥이 60년지기 친구지간을 현실감 있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나문희는 ‘소풍’의 언론 시사회에서 “노인네들만 나온다고 하니 영화에 투자가 잘 안 됐는데, ‘아이 캔 스피크’ 제작사 대표님과 ‘열혈남아’ 대표님 등 몇몇 분들이 큰 용기를 내줬다. 정말 진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만든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아이 캔 스피크’와 ‘열혈남아’에서 나문희와 함께 작업한 이들이 영화의 가능성을 봤던 셈이다.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온 동네를 휘저으며 무려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라고 불리는 옥분으로, ‘열혈남아’에서는 위태로운 아들을 둔 엄마로 분해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열혈남아’에서 나문희가 아들의 죽음을 예감하고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장면은 여전히 많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비단 이뿐인가. 나문희는 셀 수 없는 작품을 통해 국보급 연기력을 보여줬다. 지난 2022년 300만 이상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한 영화 ‘영웅’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모친인 조마리아 역을 맡아 아들의 죽음을 앞둔 엄마의 절절한 심경을 표현해 호평을 받았고,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남편 때문에 속 썩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명랑하고 까랑까랑한 할머니로 분해 ‘호박 고구마’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켰다.‘소풍’에서 나문희는 이전까지 작품들과 완전히 다른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나문희가 연기한 은심은 복잡한 가족 문제로 인해 10대 시절 고향을 떠나온 인물이다. 불명예스러운 소문에 휩싸였던 은심은 사돈이 된 금순하고만 간신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어느 날 자식들의 일 때문에 금순이 은심을 찾아오고, 은심은 오랜만에 고향에 가볼 결심을 하게 된다. 상처가 많은 곳이지만 여전히 은심에게 고향은 따뜻한 곳이다. 금순이라는 자신의 든든한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은심은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 있었기에 사투리도 잘 쓰지 않고 옷차림도 보통의 동네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나문희라고 하면 푸근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먼저 생각날 수 있지만 ‘소풍’에선 도회적이고 깍쟁이 같기도 한 나문희를 만날 수 있다. 나문희는 자기 친구와 무려 MZ의 상징인 네컷 사진도 찍는다.특히 주목할 건 박근형과 호흡이다. 박근형이 연기한 태호는 10대 시절 은심을 짝사랑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은심을 본 태호는 크게 반가워한다. 어느덧 인생의 막바지를 바라보게 된 나이. 태호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은심과 예전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태호는 막걸리를 사들고 은심을 찾아오고, 두 사람은 막걸리에 파전, 라면 등을 나눠 먹으며 정을 나눈다. 금순은 그런 둘을 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데, 80대 노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로맨틱한 케미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첫사랑의 부름에 괜히 시간을 끌다가 느지막이 집에서 나서는 깍쟁이 같은 나문희를 또 어떤 작품에서 보겠는가.친구 금순을 연기한 김영옥과 호흡에서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은심은 파킨슨병을, 금순은 심각한 골다공증을 앓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어 서는 과정을 나문희와 김영옥은 오버스럽지 않은 연기로 보여준다. 김용균 감독은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셨다”고 밝혔듯 나문희와 김영옥의 연기는 디렉션대로 꾸며진듯한 느낌이 없어 자연스럽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그냥 어르신들이 대화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특히 장면과 감정마다 변화하는 나문희의 목소리 톤이 인상적이다. 80이 돼서도 여전히 중학생 시절처럼 금순과 투닥거릴 때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사업이 잘 되지 않는 아들과 대화할 때는 대사 사이의 공백이 더 길어진다. 마음이 급할 때만 튀어나오는 사투리도 재미있다. 나문희가 얼마나 다양한 톤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소풍’ 이상이 없다. 나문희는 자신을 ‘82세가 돼서도 일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은퇴를 해도 벌써 했을 나이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를 엄마나 할머니에만 가두기는 아쉽다. ‘소풍’은 나문희에게 누군가의 아내, 엄마, 할머니가 아닌 그냥 ‘사람 은심’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나문희는 또 한 번 증명했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1.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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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썹 K-할매' 남해 스포츠광 할머니-남수단 손자 역대급 케미

'와썹 K-할매'가 역대급 케미스트리를 자랑한 할머니와 외국인 손자의 기막힌 동거로 웃음과 힐링을 동시에 선사했다. 18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와썹 K-할매'에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남해 '인싸'(인사이더) 할머니와 '남수단의 손흥민'이라 불리는 축구선수 마틴이 등장해 웃음이 마르지 않는 2박 3일 동거 생활을 펼쳤다. 할머니와 외국인 손자 마틴은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마틴이 어른을 만나면 큰 절을 올려야 한다고 해 할머니의 웃음꽃을 만개시킨 것. 할머니 역시 남다른 친화력을 보여 두 사람은 금세 한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축구, 야구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마틴이 축구 선수라는 사실에 흥미를 보였다. 새벽에 손흥민이 출전하는 해외 축구까지 챙겨본다는 할머니의 모습에 MC 장윤정은 "할머니에게서 토트넘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포츠 팬인 할머니와 마틴 사이에 '스포츠'라는 공통분모가 생기자 이들의 사이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야구 경기에 집중해 있는 할머니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귀여운 방해 공작을 펼친 마틴과 마틴의 질문에 대답하랴, 경기에 집중하랴,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으랴 바쁜 할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콩트처럼 코믹했다. 바다를 보고 싶어하던 마틴을 위해 에메랄드빛 남해 바다를 보러 가고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함께 바지락을 캐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힐링 그 자체였다. 저녁 시간에는 할머니와 이모들이 손수 만든 김치찌개와 장어구이, 바지락전 등 힘이 나는 K-보양 밥상으로 침샘을 자극했다. 할머니는 남수단에 있는 마틴의 가족들과 영상 통화하며 우아한 어투로 "안심하세요. 대한민국은 좋은 곳이고 나,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속사포로 안부를 묻는가 하면 다소 거친 손길로 마틴에게 시금치 팩 서비스를 해주는 등 남다른 방식으로 애정을 쏟아 웃음과 감동을 자아냈다. 마틴이 떠나기 전 손수 만든 김치와 막걸리 그리고 삼베옷을 선물한 할머니와 스포츠 마니아 할머니를 위해 자신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선물한 마틴의 마지막 인사는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며 긴 여운을 남겼다. '와썹 K-할매' 3회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 손자와 할머니의 마음 깊이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존 한국어를 할 줄 몰랐던 외국인 손자들과는 색다른 재미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25일 오후 10시 30분에 4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탄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21.05.1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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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쉬며 1박 2일, 부산 해운대로 오이소

부산 하면 해운대다. ‘다른 좋은 곳도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해운대는 타지 사람들에게 꽤나 상징적인 곳이다. 멀리 보이는 잔잔한 수평선과 에메랄드빛 바다, 빨간 꽃들로 물든 동백섬은 물론이고 매서운 바닷바람에 얼어 버린 몸을 녹일 수 있는 해수탕까지 가 볼 만한 곳들이 가득이다. 1박 2일의 짧은 부산 여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해운대’다. 걷기 좋은 해운대 여행 해운대역에서 나와 번잡한 부산의 길을 쭉 걸어 나오면 탁 트인 해운대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여름철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던 해운대 해수욕장은 겨울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길게 뻗은 모래사장이 보인다. 빛이 반사되는 바다를 왼쪽으로 두고 모래사장을 멍하니 걷기도 하고, 카메라 화면에 모래사장과 바다를 반반씩 담아낸다. 곳곳에 해운대다운 사진 스폿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계단에 앉아 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1월 한겨울에도 제법 따뜻한 부산 날씨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 파도에 발을 담근 아이도 보였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들고 모래사장을 걷는 사람들도 눈에 쉽게 띄었다.이렇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걷다 보면 동백섬을 마주한다. 1999년에 부산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된 곳이지만,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남해안에는 ‘동백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많다고 했다.옛날에는 섬이었던 이곳은 장산폭포가 흘러 내려온 물과 조동 동쪽 부흥봉에서 내려온 물이 합류, 춘천(春川)이 충적평야의 모래를 실어 내려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가 됐다.이날 찾은 부산의 동백섬은 이미 절정기를 넘겨 동백꽃을 흠뻑 느낄 수는 없었다. 겨울의 바다와 동백꽃이 떨어진 동백나무가 산책길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먼저 만난 바다 옆 산책로의 이름은 ‘해파랑길’. 바닷가 바위 위로 나무 데크를 놓아 바다 위 산책로로 꾸민 곳으로, 큰 오르내림이 없어 누구나 쉽게 트레킹할 수 있다. 난간에 기대 바다를 한참 바라보던 한 관광객은 “오늘은 유난히 해운대가 조용하다. 파도 소리가 온전히 들리는 것도 오랜만이다”라며 해파랑길을 감상했다. 해파랑길의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흰색의 동백섬 누리마루 전망대가 보였다. 광안리, 오륙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다. 매년 10월 부산의 불꽃축제가 열릴 때면 ‘명당’으로 꼽히는 장소로, 꽤 높은 곳에 위치한다.동백섬 둘레를 따라 내려오면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누리마루 APEC 하우스’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건축물인 정자를 현대식으로 표현한 건축물이다. 통유리로 돼 있어 풍광이 좋은 이곳은 파란 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하고, 광안대교가 멀리 보여 탄성을 자아내 한번 둘러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동백섬 끝자락에는 ‘더베이101’이 있다. 정면에 마린시티가 있어, 이미 야경으로 입소문 난 곳이다. 낮에 찾은 더베이101에는 빈자리가 많더니, 저녁의 이곳은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마린시티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이들은 물론, 야외 좌석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피시 앤 칩스와 맥주 한잔을 마시는 이들까지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또 저녁의 해운대에는 버스킹 공연이 이어지니,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하루 종일 걸으며 해운대를 즐겼다면, 침대에 몸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숙소 선택도 중요할 것이다.이날 머문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 호텔은 해운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지만, 10만원 이하의 가격대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객실은 지하 2층, 지상 22층 규모로 총 225개다.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원목 디자인과 믿고 묵는 'JW 메리어트' 브랜드의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다.부산 도시철도 2호선 해운대역과 도보 10분 거리, 특히 해운대 바닷가와는 도보 3분 거리니, 비즈니스나 레저 목적으로 해운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격이다. 해운대에서 바다와 온천을 한 번에 부산에 온천이라니, 생소하다. 생각지 못했던 힐링 스폿을 발견한 기분도 든다.우리나라 최초의 온천은 부산의 ‘동래온천’이었다. 682년 신라 신문왕 때 충원공이 온천에서 목욕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남아 있고, 신라 시대부터 왕과 고위 관직자들이 수차례 동래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돌아갔다는 기록도 볼 수 있다. 이후 역사는 흘러 조선 시대부터는 온천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소문이 퍼지면서, 일본에서도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동래온천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에 국가에서 직접 온천수를 관리하고 여관을 만드는 등 동래온천을 관광지로 발전시키면서 유명해졌다. 자연스럽게 동래온천은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 신혼여행지로 부상했다. 해운대 온천은 신라 시대에, 해운대 구남벌 저습지 갈대밭 가운데 웅덩이에서 온천물이 나와 불어나기 시작한 ‘구남온천’에서 시작됐다.어느날 노파가 이 온천을 지나가다가 한쪽 다리를 저는 학이 목욕하는 것을 봤는데, 다음 날 또 학이 오고 그렇게 2~3일을 오더니 다리를 절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노파는 이 웅덩이가 약물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아픈 다리를 웅덩이에 며칠 동안 담갔는데, 완치가 됐다. 이 소문이 퍼져 신라 진성여왕이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해 찾았던 곳이 해운대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은 일본인들이 부산항 개항 이후 몰려들면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온천 중 ‘유일한 임해온천’이며, 염도가 강한 편이라 입욕 이후 피부가 매끄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해운대 온천의 특징이다.해운대 최초의 온천은 1935년에 문을 연 ‘할매탕’. 이곳은 지금도 해운대 온천의 역사를 이어 간다. 최근에는 리모델링과 마케팅까지 하며 해운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할매탕은 말 그대로 유독 할머니들이 많이 찾아 할매탕이라고 불렸다. 특히 라듐이 다량 함유돼 있어 류머티즘·관절염·신경통·근육통·소화기 질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으며, 아픈 부위만 물에 담그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최근 ‘가족탕’이 할매탕의 명물이다. 할매탕 온천수는 피부병에도 좋아 당시에는 피부병 환자가 원탕에서 어울려 온천을 즐겼는데, 지금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게 됐다. 이에 할매탕에서 가족탕을 만들어 눈치 보지 않고 온천욕을 즐기며 치유할 수 있도록 배려해 만든 것이다. 지금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이 주위로 온천들이 들어서면서, 해운대는 여름철에는 해수욕과 온천욕을 동시에 즐기고, 겨울에는 해변 산책 이후 온천욕을 즐기는 일석이조 여행지로 떠올랐다. 여기에 해운대 백사장을 바라보면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도 추가된다.온천이 부담스럽다면, 해운대 해수욕장 바로 앞에는 시민 온천 족욕탕도 마련돼 있어 발만 담그는 것도 좋겠다.권지예 기자 kwon.jiye@jtbc.co.kr 2019.01.16 07:00
스포츠일반

파도가 점점이 만든 수채화, 고군산군도

밤잠마저 빼앗아갈 만큼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 풀 꺾이나 싶더니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지난 주말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후 하늘은 여느 때보다 푸르다.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피서객으로 북적이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적당한 날씨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보다 한적한 여행을 원한다면 섬으로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멋진 풍경까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한적함과 비경을 모두 만족시켜줄 곳으로는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에 떠 있는 고군산군도가 첫 손에 꼽힐 만하다. 군도는 여름의 부산함을 치워놓고 차분하게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파도·바람이 빚은 조각 전시장, 고군산군도원래 이름은 군산이었다. 수평선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마치 작은 산들이 모여 있는 듯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후기까지 서해를 방어하는 수군이 주둔했을 만큼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수군 진영이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지면서 고군산군도란 이름을 얻게 됐다. 고군산군도는 모두 6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타원형을 형성하고 있어 군도 한 가운데 들어서면 마치 큰 호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신안이나 진도의 조도군도 등 전남 서남해안에서는 흔한 풍경이지만 서해 한 가운데 이처럼 많은 섬이 몰려 있는 것이 이채롭다.섬이 많은 만큼 볼거리도 풍성하다. 군도의 속살까지 모두 돌아보려면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다. 대신 배를 이용한 선상 관광이라면 한나절로도 충분할 듯하다. 군도의 북쪽에는 횡경도·소횡경도·방축도·광대도·명도·보농도·말도 등이 마치 병풍처럼 동서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이 육지였던 먼 옛날 봉우리로 이어진 산줄기였던 듯 싶다.가장 먼저 횡경도에 다가서면 능선 한 가운데 송곳처럼 솟아오른 바위가 눈에 띈다. 이름은 할배바위다. 선유도 바로 옆 장자도에 있는 할매바위와 한 쌍을 이루는 바위다. 할배바위는 망건을 쓴 채 먼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고, 할매바위는 아이를 업은 형상이 뚜렷하다. 바람난 남편에 실망한 아낙이 돌로 변해 할매바위가 되자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한 남편은 반대편으로 돌아앉아 돌로 굳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소횡경도를 지나 방축도 남쪽 바닷가에서는 독립문바위를 만난다. 길게 누운 큰 바위 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작은 고깃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크다. 하지만 형태는 홍도의 독립문바위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방축도 서쪽 끝은 거대한 절벽이 형성돼 있다. 그런데 절벽을 이루는 바위의 형상이 기묘하다. 시루떡을 양 옆에서 힘을 줘 찌그러뜨렸을 때 보이는 모습처럼 층층이 쌓인 바위가 이리저리 일그러지며 바다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떡바위다.서쪽 끝에서 남북으로 길게 누운 관리도는 억겁의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조각품이 많이 새겨져 있다. 1㎞ 가량 되는데, 병풍바위로 불리는 절벽에는 독수리·부엉이·해골 등 기기묘묘한 바위가 즐비하다. 특히 남쪽 끝에는 하늘로 구멍이 뚫린 천공바위, 마치 1만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듯한 만불상바위 등이 절경이다. 천공바위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바라보면 코뿔소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관리도를 돌아들면 장자도에 닿는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섬 주변은 한때 조기가 지천이었다. 조기잡이에 나선 수백척의 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작업하던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던지 장자어화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선유8경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걸어서 만나는 선유도·장자도고군산군도의 외곽 섬들을 바다에서 만났다면 선유도 주변은 걸어서 감상할 수 있다. 선유도와 장자도·대장도·무녀도는 연도교로 연결돼 왕래가 수월하다. 게다가 각 섬에는 가벼운 트레킹을 겸한 산행이 가능한 산이 있어 몇날이고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마치 신선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 듯한 모습을 품고 있다 해서 이름붙여진 선유도에 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산이 망주봉이다. 유배온 신하가 매일 임금님을 그리워하며 올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 진안 마이산처럼 우뚝 솟아오른 두 개의 봉우리는 바로 아래 백사장인 명사십리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가파른 길을 이용해 20분이면 봉우리 정상에 오르는데, 맑은 날이면 군도의 모든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수욕장의 모래톱은 마치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과 비슷해 평사낙안이라 불리기도 한다.선유도에서 바닷가로 이어진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장자도에 닿는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섬은 선유도에 비해 조용하고 깔끔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제격이다. 두 섬을 연결하는 장자대교에서 낚시도 쏠쏠한 재미를 전해준다. 굳이 낚싯대가 없더라도 낚싯줄과 낚싯바늘, 미끼만 있으면 우럭·놀래미·장대·백조기·아나고 등이 줄줄이 물려 올라온다는 것이 섬 주민의 설명이다. 장자도에서는 갖가지 체험을 즐길 수 있는데, 특히 김종승(38)씨가 운영하는 1박 2일 일정의 꽃게체험이 인기다. 10명 기준으로 참가 신청을 받으면 김씨는 2~3일 전 근처 바다에 꽃게잡이용 그물을 쳐 놓는다. 이 그물에 잡힌 꽃게는 양에 상관없이 몽땅 손님들 차지다. 손님들이 직접 그물을 걷어올리는 것은 물론이다. 잡히는 양이 적을 경우 김씨가 필요한 만큼 조달해주기도 한다. 이외에 숙박·식사·갯바위낚시·갯벌체험 등이 포함된다. 1인당 12만원. 011-680-6314.▲가는 길=군산 외항에 자리한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선유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6차례(주말 오후 3시 30분 추가) 운항한다. 요금은 약 1시간 20분 소요되는 일반여객선이 1만 3500원, 약 50분 소요되는 쾌속선이 1만 6650원이다. 063-472-2727.고군산군도 선상여행은 군산 비응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루 두 차례 운항하는데,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사전 확인이 필수다. 비응항을 출발, 횡경도·소횡경도·방축도·대장도·장자도·선유도를 거쳐 비응항으로 돌아온다. 1만 5000~3만원. ㈜월명유람선(063-445-2240). 섬 주민의 배를 얻어탈 수도 있다. 연료비에 약간의 수고비만 얹어주면 섬의 갖가지 볼거리에 얽인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군산=글·사진 박상언 기자 2008.08.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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