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삼성 하우젠 2006 K리그 개막을 기다리는 14개 구단 감독들은 초긴장 상태다. 겨우내 갈고 닦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팀은 각 감독의 성향에 따라 색깔이 입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성적으로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우루과이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팀 운영자들과 팬들은 그에게 아인슈타인의 천재성과 프로이트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성녀 루르데스의 기적의 능력과 간디의 인내심까지도 요구한다"고 축구감독의 고충을 표현했다. 팬들과 구단 운영자들은 완전무결한 지도자를 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나 또는 둘 정도의 장기는 가지고 있지만 완비할 수는 없다. K리그 14개 구단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14인 14색이다. 가진 것이 다르다. 14개 구단 감독을 다양한 틀로 나누어 보면 2006 시즌을 맞는 이들과 이들이 지휘하는 팀의 컬러를 읽을 수 있다.
스타 지도자로 명성 작년엔 성적 부진 "올해엔 명예회복" ▲ 명예회복 노리는 스타 감독 3총사
수원의 차범근, 전남의 허정무, FC 서울의 이장수 감독은 스타 지도자다. 차 감독과 허 감독은 선수시절 벌써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였고, 이 감독은 중국 프로축구를 평정하면서 스타 지도자로 자리잡았다.
한국 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 출신 차 감독은 지도자 경력도 화려하다. 울산 현대 감독, 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2004년부터 명문 수원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월드컵 도중 중도하차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수원 감독 부임 첫해 팀을 K리그 정상으로 이끌며 명예회복을 시작했으나 지난해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쓴맛을 봤다. 올 시즌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기동력을 강조하는 `템포축구`가 트레이드 마크다.
차 감독에 버금가는 선수로서의 명성을 가진 지도자가 허정무 감독이다. 또한 포항(1993~1995년), 전남(1996~1998년) 사령탑은 물론 올림픽 대표, 국가대표 감독까지 지내는 등 지도자 경력도 선수 시절 못지않다. 7년 만에 프로감독으로 복귀한 지난 시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시 올해를 기다렸다. 빠른 공수전환을 바탕으로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팀을 지향한다.
중국에서 `충칭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고 K리그로 돌아온 이 감독의 지난해 또한 불만스러웠다. 우승후보로 꼽혔음에도 불구, 중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활동할 당시 뛰어난 선수단 장악력으로 이름을 날렸고, 수비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축구를 선호한다.
환갑 넘긴 백전노장 상황 대처 능력 탁월 ▲ 백전노장의 힘
박종환 대구 감독과 김정남 울산 현대 감독은 환갑을 훌쩍 넘긴 백전노장이다. 박종환 감독은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4강 신화를 이끌었고, 김정남 감독은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을 지휘하는 등 지도자 경력도 후배들을 능가한다. 지금까지 현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도력 때문이다. 박 감독은 프로에서도 성남의 K리그 3연패(1993~1995년)를 지휘한 바 있고, 김정남 감독은 지난해 울산을 K리그 정상에 올려 놓은 데 이어 올 시즌 2연패에 도전한다. 노련하게 팀을 관리하면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상황 대처 능력도 탁월하다. 젊은 감독들은 백전노장과 부딪히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영국-브라질 출신 한국 축구 적응 '끝' ▲ 지도자 세계에서도 용병은 강하다
부산의 이안 포터필드 감독과 포항의 파리아스 감독은 각각 `축구종가` 영국, `세계 최강` 브라질 출신이다. 2002년부터 부산 지휘봉을 잡은 포터필드 감독은 부임 초반 잉글랜드식 축구를 이식하려다 실패한 뒤 용병들을 대거 브라질 출신으로 물갈이하는 등 변화를 시도, 2004년 FA컵, 2005년 전기리그를 제패하며 한국축구에 연착륙했다. 끈끈한 포백이 특징이다. 유일한 30대 감독인 파리아스 감독은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 감독 출신으로 구단의 신임이 각별하다. 지난 해 A3 챔피언십 준우승, 컵 대회 3위, K리그 통합 5위 등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한골을 먹으면 두골을 넣으면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고, 올 시즌에는 여기에 균형감을 갖춘 안전한 축구를 접목하겠다는 구상이다.
히딩크에게 배운 압박 축구 격돌 ▲ 히딩크 효과 노리는 2002년 월드컵 4강 주역
박항서 경남 감독과 정해성 제주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면서 그의 용병술과 전술을 낱낱이 익혔다. 자연스레 그들이 추구하는 축구도 조직력을 중시하는 빠르고 강한 압박 축구다. 정해성 감독은 이 같은 전술로 지난 시즌 `부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올 시즌 데뷔 무대를 갖는 박 감독이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선수 시절 84년 FC 서울의 전신인 럭키 금성 창단멤버로 함께 활약하면서 85년 슈퍼리그 우승을 일구는 등 인연이 깊었던 이들은 오는 12일 시즌 개막전에서 격돌하게 됐다. 히딩크 감독의 적자가 누구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열악한 사정·부진 털고 지도력 과시 ▲ 간단치 않은 돌풍파와 재야파
대전의 최윤겸 감독과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지난 시즌 거셌던 돌풍의 중심에 있었다. 열악한 구단 사정에도 불구, 최 감독은 대전을 만만치 않은 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고, 지난 시즌 후기리그를 앞두고 전북 사령탑을 넘겨받은 최강희 감독은 한동안의 부진을 털고 FA컵에서 깜짝 우승, 그간 쌓아 놓았던 지도력을 마음껏 과시했다. 2002년 월드컵 직후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을 코치로 보좌했다. 최윤겸 감독은 `니폼니시 축구` 전수자. 아기자기한 미드필드 플레이가 전매특허지만 올 시즌에는 빠르고 선이 굵은 축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광주의 이강조 감독은 지난 90년 일찌감치 상무와 인연을 맺은 뒤 프로무대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약 2년 단위로 선수들이 드나들고, 선수들에게 프로의식을 강조하기 힘든 한계에도 불구, 나름대로 팀을 하나로 엮어내는 능력은 인정받고 있다.
해박한 축구 지식 바탕, 선진 축구 도입 앞장 ▲ 학구파들의축구는 허술하지 않다
성남의 김학범, 인천의 장외룡 감독은 대표적인 학구파 감독으로 통한다. 축구 지식에 관한 한 가장 해박한 감독들로 정평이 나 있다.
김 감독은 선진축구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 99년부터 시즌이 끝나면 바로 세계축구의 양대 산맥인 유럽 또는 남미로 해외연수를 떠나 새로운 기법을 익혀 온다. 국가대표급으로 꼽히는 성남의 포백라인은 김 감독이 해박한 축구 지식을 토대로 집중조련한 결과다. 성남은 올해도 우승후보 1순위다.
일본축구협회 최고 지도자 자격증인 S 라이선스를 일본어로 따낸 최초의 외국인 지도자로 잘 알려진 장외룡 감독은 경기 녹화 테이프도 직접 편집하는 열성을 갖고 있다. 큰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하나로 묶는 데 탁월하다. 지난해 인천이 통합순위 1위를 차지한 데는 그의 이 같은 노력이 바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