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날아갔다. 미나스제라이스주 벨루오리존치에 있는 크루제이루 클럽을 찾았다. 호나우두(레알 마드리드)를 배출한 명문이자 ‘아드보카트호 황태자’ 이호(울산 현대)가 2년간 유학한 곳이기도 하다.
2003년 브라질 정규리그 우승 멤버 14명 동시에 이적 '수억챙겨' 12~19세 나이별로 20~0명 훈련 기숙사 생활 중 술,담배 땐 퇴출 철저한 관리, 실력으로 자기 발전
2003년 브라질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크루제이루는 브라질에서 ‘선수 장사’를 가장 잘 하는 클럽이다. 2003년 우승 멤버 14명을 한꺼번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지난해도 짭짤한 장사를 했다. 2부 리그 아메리카 팀에서 프레디(27)를 50만 헤알(약 2억5000만원)에 데려와 14개월 만에 프랑스 리옹에 1300만 유로(약 150억원)를 받고 팔았다. 프레디는 지난해 브라질 리그 득점선두를 달리다 프랑스로 갔고. 노장 호마리우(40ㆍ바스코다가마)가 득점왕에 올랐다.
'토카 데 라포사(여우굴)’라고 불리는 훈련장은 벨루오리존치 시내에 두 곳이 있다. 2001년 새로 지은 ‘또까 2’는 프로 선수들이 쓰고. ‘또까 1’은 유소년 선수들이 사용한다. 프로팀 감독인 세자르는 99년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친선경기 때 골키퍼 코치로 왔던 사람이다.(당시 한국이 김도훈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그는 “우리 클럽은 유소년 팀에서 프로로 올라오는 선수의 숫자가 브라질 전체 클럽 중에서 가장 많다. 그만큼 전력이 탄탄하고. 좋은 선수를 외국에 많이 팔 수 있다”고 말했다. 훈련 시간이 되자 선수들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하나둘씩 나타난다. 지난해 일본 J리그 득점왕(33골)에 오른 아라우조는 목발을 짚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무릎 수술을 했다고 한다. 독일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133골) 기록을 갖고 있는 에우베르도 모습을 보였다.
다음날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공을 이용한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20분 정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그라운드 절반을 쓰는 ‘장난 게임‘을 했다. 말이 장난 게임이지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진지하다. 골을 먹은 팀 선수들끼리 서로 책임을 물으며 큰 소리로 다투기도 했다. 그라운드 옆에는 흰 가운을 입은 영양사 두 명이 유심히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컨디션을 보며 식단을 구상하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발목수술을 한 켈론(18)이 코치 한 명과 함께 재활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17세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 당시 하프라인에서부터 공을 머리로 통통 튀기면서 달려가 골을 넣어 화제를 모았던 선수다. 공 다루는 솜씨가 정말 예술이다.
크루제이루 클럽은 12세부터 19세까지 나이별로 20~30명 정도씩 선수들을 데리고 있다. 프로 팀은 50명이다. 클럽의 기술고문인 반투일은 “열두 살 아이들끼리 하는 대회까지 스카우트가 찾아가 유망주를 뽑아 온다.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테스트를 한다. 프로 바로 밑 단계인 주니어(19세 팀)는 ‘선수들의 무덤‘이다. 그 나이에 프로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면 선수로서 이미 죽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호나우두는 16세 때 프로로 올라왔다고 한다. 12세부터 주니어까지의 선수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살며 용돈을 받는다. 술ㆍ담배를 하다 걸리면 가차 없이 퇴출이다.
훈련이 끝난 뒤 이호와 함께 유소년 팀에서 뛰었던 지아고와 조나단을 만났다. 그들은 이호를 ‘체력이 정말 좋고 헤딩도 뛰어났던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억했다. 이호를 가르쳤던 에메르손 코치는 “2003년에 이호ㆍ이진호(광주 상무)ㆍ송한복(전남 드래곤즈) 세 명을 프로 팀으로 올려보내려 했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만약 이호가 지금 우리 팀에서 뛰고 있다면 당장 이적료 500만 달러를 받고 유럽 빅 클럽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은 전국 리그 외에 주별 리그가 있어 거의 1년 내내 경기가 이어진다. 한 해 60경기 정도를 치른다. 삼바 리듬과 골목 축구로 단련된 선수들은 철저한 관리와 끊임없는 실전을 통해 한 단계 더 진화한다. 클럽들은 선수 하나만 잘 뽑아 키워내면 이적료로 수백억 원을 벌 수 있다. ‘메이드 인 브라질’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의 이호 꿈꾸는 한국 유학생들>제2의>
크루제이루 클럽 유소년팀에는 ‘제2의 이호‘를 꿈꾸는 한국 선수 20명(13~17세)이 유학을 하고 있다.
‘토카 1’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하루는 오전 6시30분에 시작된다. 숙소 앞 커다란 호수를 따라 조깅을 한 뒤 아침을 먹는다. 천연 잔디구장에서 오전에 한 시간 반 기술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브라질 선수들과 함께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오후 7시부터는 학교 수업이다. 포르투갈어를 먼저 배우고. 언어가 어느 정도 숙달되면 수학.영어.사회.역사 등을 공부한다. 고1부터는 스페인어도 배운다. 오후 10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녹초가 된 몸을 누인다.
몸은 힘들어도 아이들은 재밌다고 한다. 홍승욱(13)군은 “코치 선생님이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5월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축구 교본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진 알렉산더 코치는 “한국 선수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기술 향상 속도도 빠른 편”이라고 했다. 반면 ‘생각하는 축구‘ ‘창의적인 플레이‘는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토요일은 숙소를 떠나 선수들을 관리하는 교민 문대찬 씨 집으로 간다. 따뜻한 밥과 찌개 등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크루제이루 클럽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로 놀러가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곳이 낙원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 브라질 선수들은 하지 않는 오전 기술훈련을 한국 선수들만 하는 것은 그만큼 기초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호를 가르쳤던 에메르손 코치는 “기본기를 제대로 익히지 않고 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오는 선수는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