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단 3명이 만든 온라인 게임 <니다온라인> 의 개발 보금자리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12평 반지하 방에 들어서면 절로 이 말이 떠오른다. 곳곳에 라면 박스가 쌓여있고, 벽에는 캐릭터 원화 그림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PC 다섯 대가 줄지어 선 큰 방과 책상 한 대가 전부인 작은 방 하나. 그들은 이곳에서 초라하지만 작은 기적을 이뤘다.
■3명이 무슨? 농담도 잘하셔!
개발비 100억원, 총 개발 스태프 200명…. 돈으로만 쏟아부으면 모두 '블록버스터'라고 추켜세우는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 경종을 울리는 세 사람이 있다. 니다엔터테인먼트의 정대화 사장(40), 이현식 개발이사(38), 신민규 디자이너(28). 이들은 단 3명의 손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3년만에 MMORPG <니다온라인> 을 완성했다.
이 게임의 6월 초순의 동시접속자수는 4000명, 누적 회원수는 35만명이다. 지난 4월 19일 부분 유료화를 시작했다. 수치로 보면 그다지 대단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하다. 이유는 월 수천만원 정도의 매출이면 그 어느 게임회사보다 짭짤하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면 "3명이 무슨? 농담도 잘하셔!"하고 코웃음부터 칠 것이다. 그들이 게임 개발에 쓴 돈은 대형 개발사의 1달 비용도 안되는 3억원 가량. 그들은 3년 동안 하루 24시간 반지하방을 비우지 않고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며 머리를 맞대고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동안 이 좁디좁은 반지하 방에는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대기업·퍼블리셔·신규업체로 가려는 업체들의 사람들이 숱하게 찾아왔다. 개발 당시에도 그랬는데 지난 4월 19일 턱하니 상용화(부분유료화)까지 해냈으니 더욱 입질이 심하다. 찾아온 이들은 한결같은 말을 했다. "너무 힘드니 계약하시죠." 충분히 돈으로 쳐줄 테니 아예 게임 일체를 넘겨달라는 요구였다.
상용화 준비에만 70~80명이 필요한데도 셋이 상용화를 해냈고, 해외 수출길까지 뚫리고 있는 마당에 요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투자였지 흡수가 아니었다. 또 그렇게 된 회사는 거의 다 깨졌다.
자금도 없고 투자자를 구할 여력도 없었던 이들에게 고비도 많았다. 정 사장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친척들에게 손을 벌렸다. 화곡동에서 제일 싼 반지하방을 월세로 얻었다. 돈은 없지만 아무 간섭없이 개발하자며 위안을 삼았지만 지난 세월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
정 사장은 때로 "차라리 PC방이나 하자"며 제안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너희들 힘드니 다른 일자리 찾아가라"하며 강권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판과 택시 기사일을 나가기도 했다.
정 사장이 "김밥집이나 하겠다"며 반 포기 의사를 털어놓았을 때다. 이때 이현식 이사와 신민규씨는 "그럼 저희들이 김밥을 썰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부딪친 술잔에 눈물을 떨구며 다시 해보자고 손을 맞잡은 날이 부지기수다.
■믿을 건 유저 입소문, 홍보비는 0원
<니다온라인> 의 개발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홍보비로는 단 한푼도 안썼다. 홍보는 유저들이 다 해줬다.
"게임 괜찮다" "3명이 만든다"는 입소문만으로 개발 초기 팬이 만든 카페엔 6개월도 안돼 회원이 2만 명을 훌쩍 넘었고, 겨우 홈페이지를 만들어 상용화한 현재까지 회사측이 쓴 돈은 다음 등 포털에 들인 등록비 20만원 정도가 전부다.
지금까지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도 "니네 아직 안 망했냐?"다. 그런 탓에 개발자 3인방이 가장 고마워하는 것은 유저들이다. 지난 4월 상용화했을 때 1주일 동안 네이버 검색 1~3위에 오르자 스스로도 놀랐다. 24시간 내내 메신저나 전화로 문제를 지적해오는 유저들의 관심도 잊지 못한다. 주연령층이 상용화하면 빠져나가는 10~20대 메뚜기층보다 충성도가 높은 30대인 것도 특이하다. 쉴새없이 격려해주는 그들의 전화 속 목소리, 게시판의 댓글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다.
일찍이 일본에서도 3명이 만든 게임이라고 화제가 돼 기자들이 직접 반지하방을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일본 기자는 "한국에는 아직까지 이런 팀이 많다. 한국 온라인 게임이 그냥 큰 게 아니다"는 이들의 말에 깜짝 놀랐다.
팁-"돈만 지르면 나온다는 생각 버려야"
이들은 지금까지 나온 대작게임에는 "획기적 시스템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돈만 지르면 나온다"는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것. 한국에서도 <와우> 같은 글로벌 게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돈으로 개발자까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CEO들이 문제라는 것.
정대화 사장은 한때 최고 게임사였던 동서게임채널의 개발팀 출신이다. 이때 국내 최고의 RTS인 <광개토대왕> 의 개발에 참여했다. 또 인기게임 <달려라 코바> <삼국지:천명> 등에도 관여했다. 1998년엔 신사동에서 40명의 인원을 거느린 빅브레인의 대표로 RTS 장르인 <임팩트오브파워> 를 개발했다. 2003년 4월 유통 회사의 부도로 개발한 게임을 하루 아침에 날리고 소송까지 겹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이 이사가 개발안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다시 니다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을 때 "남자가 끝까지 해봐야 한다"며 마지막까지 떠나지 않은 신씨가 합류했다. 그들의 꿈은 두 가지다. 셋이 뭉쳐 힘이 닿을 때까지 개발하는 것이고, 개발실 없이 개발하는 것이다. 역시 당돌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