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인형의 책 이야기]이중결혼 생활 해보실래요?
"세상은 전과 다음없이 돌아갔다. 내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마누라가 두 번째 남편을 얻었는데도 일상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침이면 출근을 했다. 회의와 미팅을 했고…혼자 TV를 봤다. 사소하게 달라진 것. 나는 더 나태해졌다.”
지난주 출간 3개월만에 판매부스 10만부를 넘어섰다는 김현욱의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중 일부이다. 한 명의 여자가 두 명의 남편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하는데, 오쟁이 진 첫 남자가 이를 알고도 묵인한다는 '황당한 스토리'이다. 이 소설이 인기있는 이유는 여자가 들이대는 온갖 역사인류학적 근거와 위대한 사상가들의 말이 일부일처제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무너뜨리고, 때로 코너로 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축구얘기가 시류에 맞춰 스토리에 절묘하게 편입되어 교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여자는 생활인 남편과 애인 남편, 두 남편을 데리고 살아간다.
요즘의 월드컵 열기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은 '일상생활'과 '월드컵'이라는 두 남편을 데리고 사는 소설의 주인공 여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하나도 놓치기 싫은.
월드컵 토고전과 프랑스전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토고전은 차지하고서라도 프랑스전과 스위스전은 새벽4시에 시작해 6시에 끝났으니 밤샘도 이런 밤샘은 없다. 그런데도 경기가 끝난 뒤 기자가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아침 버스에는 '축구가 언제 있었냐는 듯'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녀 직장인은 물론 교복차림 학생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집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정류장에 줄 서 있을 때는 냉방 안되는 찜통 사무실서 밤새 근무해 땀에 절은 꾀죄죄한 기자 혼자만 빨간 티를 입고 있어 민망하기까지 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모두들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 나이에 길거리 응원나갔냐, 나이 값 좀 해라."
교보서점 관계자에 따르면 월드컵 영향에 따라 매출감소가 있긴 하지만 지난 년 악몽의 재현'이라는 우려했던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2002년과 달리 이번 월드컵 한국경기는 영업시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시간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주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니 작은 차이가 눈에 뜨인다. 종합순위 50위까지의 책중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성공하라> <페페로니 전략> <한국의 젊은부자> 등 실용서적이 평소보다 배 이상 올라와 있다. 월드컵 열기로 교양서 등이 부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용서적 판매실적이 두드러져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실용서적을 찾는 사람들은 흥분에 들떠있지 않고 꾸준히 실속을 찾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월드컵 기간에도 아침 9시가 되면 증시가 어김없이 열리고, 학교종이 울리고, 출근카드는 체크된다. 월드컵을 즐기더라도 교양서든, 실용서든 꾸준히 책을 찾는 완벽한'이중결혼'생활을 해보는건 어떨까. 한국의> 페페로니> 힐러리처럼>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