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은 갈대 천국이다. 갈대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면적만 해도 무려 70만여 평에 이른다. 여의도의 거주지와 상업 지구 넓이에 필적하는 규모다.
억새가 가을 산의 진객이라면 갈대는 바닷가나 습지의 주인이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갈대도 옷을 갈아입고 있다. 순천만 갈대도 허리는 아직 초록치마를 두르고 있지만 머리는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억새처럼 푸른 머릿결을 흩날리며 늦가을의 정취를 보여 줄 것이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로 둘러싸여 있는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 하나로서 지난 1월 연안 습지 중 최초로 ‘람사협약’에 등록될 만큼 소중한 생태계의 보고다. 갯벌을 포함한 면적은 800만여 평. 북쪽으로는 갈대밭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남쪽으로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다.
그 사이를 ‘S’자 수로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 만을 휘감는 외곽 도로만도 약 40㎞에 이르는데 특히 석양 무렵 이 길을 달리면서 보는 순천만은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다.
순천만 여행은 내륙에서 흘러 들어오는 동천과 이사천이 합류하는 대대포구에서 시작된다. 순천 출신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에서 안개나루라고 불렸던 곳이다.
무진교라 불리는 다리를 건너면 갈대숲 사이를 걸어갈 수 있는 산책용 데크가 설치돼 있다. 지난해 만든 1200m 길이의 이 산책로는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태 학습장이다. 바로 옆에는 갈대가 시야를 가리고. 눈을 아래로 돌리면 갯벌이 손에 들어온다.
그 위에는 농게·칠게·갈게 등이 이방인의 발길에 이리저리 눈치보고. 장뚱어는 사람 눈과 마주치자 물고기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내뺀다.
갈대는 한때 이곳 주민들의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다. 이삭을 모아 빗자루를 만들거나 말려 땔감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갈대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자 자생력 강한 갈대가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1998년 15만 평에 불과하던 갈대밭은 8년 만에 무려 다섯배 가까이 늘어났다.
갈대 데크를 지나 대대포구 건너편 야산 숲길을 20분쯤 걸으면 용산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 서면 순천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갈대밭을 헤집고 다니는 ‘S’자 수로가 절경이다.
순천만 구석구석을 보기 위해서는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대대포구를 떠나 북쪽 갈대밭을 감상한 후 남쪽으로 내려가 석양이 아름다운 와온해변까지 다녀오는 30분 코스다.
포구를 떠난 유람선이 갈대밭으로 들어서자 먹이를 사냥하던 두루미가 화들짝 놀라 그 큰 날개를 펴며 비상한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갈대밭을 돌아보는 데 10여 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갈대밭을 벗어나니 광활한 갯벌이 끝도 없다. 유람선이 잠시 갯벌에 몸을 기대는 동안 선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갯벌 너머 붉은 풀밭이 보이지요. 그거이 칠면초입니다. 소금기 많은 염습지에서 자라는디 봄에 연두빛을 내다 차츰 붉어지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11월이면 하얗게 말라 죽지요. 그동안 일곱 번 색깔을 바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칠면초입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잇는 영종대교를 지날 때 갯벌 위에 자라고 있는 붉은 색 풀이 칠면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양식을 위해 쳐놓은 그물 기둥 위에 재두루미·검은머리갈매기 등이 몸을 올려놓은 채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