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바다가 많다. 사방이 망망대해로 둘러싸고 있지만 어디를 가든 바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코 앞까지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오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마치 호숫가에 앉아있는 듯 잔잔한 물결이 손등을 간지럽히는 곳도 있다. 섬을 한바퀴 돌아도 같은 모습의 바다는 없다. 최소한 바다만 상상하더라도 제주도는 ‘환상의 섬’이다.
■제주 성산읍 루마인펜션
성산 일출봉은 제주도의 동쪽 끝.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일출봉에서 섬을 바라볼 때 왼쪽은 섭지코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신양해수욕장. 오른쪽은 잔잔한 바다를 끼고 달리는 북제주군 성산읍 종달리 해안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해안선은 구불구불 이어지다 슬그머니 모습을 감춘다.
성산항을 벗어나 북쪽 종달리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깨끗하게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띈다. 루마인펜션(www.roomine.com)이다. 최근 펜션의 외관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예쁜 집을 연상시키는데. 여기는 인테리어나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빌딩같다.
“단순하잖아요.” 설계부터 완공까지 직접 참여했다는 송기영(42) 사장은 간단히 설명한다. 어찌 보면 종달리는 제주도에서도 외진 곳이다. 단순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릴 뿐 머무는 장소는 아니란 뜻이다. 그래도 찾는 손님은 꾸준하다.
송 사장은 “잠시나마 현대 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기 위해 찾는 손님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건물의)모습이 복잡하면 생각까지 어지러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능하면 단순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했지요.”
펜션은 1층에 카페. 2층에 객실로 돼 있다. 특히 2층의 높이는 1층에 비해 1.5배쯤 되는 것이 이색적이다. 객실은 20평에서 28평형까지 모두 7개. 실내에 들어서면 2층의 높이가 1층보다 왜 높은지 알 수 있다. 복층형으로 아래는 주방겸 거실. 위는 침실로 된 구조다.
■지중해 휴양지같은 분위기
제주도의 어느 해안과 마찬가지로 루마인펜션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그런데 다른 점은 방 안 어디에서고 우도와 성산 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또한 해가 떠오르는 지점도 건물의 정면이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위치가 달라지지만 방 안의 조망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선을 따라 채워진 쪽빛 바다. 그 뒤로 붉은 등대.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병풍처럼 에두른 풍경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일출은 맑은 날이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장관이지만 느낌은 항상 다릅니다. 신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곳에 묵는 손님도 마찬가지겠지요.”
인테리어도 독특하다. 벽을 온통 꽃무늬가 그려진 벽지로 바르고. 짙은 보라색 소파와 같은 색의 실내등으로 장식해 뭔가 도발적인 분위기를 유도하는 방이 있는가 하면 은은한 베이지색으로 통일시켜 차분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갖게하는 객실도 있다. 모든 객실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미술을 전공한 부인 김원소(36)씨의 아이디어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1층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탁자와 소파가 밖을 향하고 있는데. 대형 통유리로 이어진 창 밖으로 바다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렴 펼쳐진다. 평일인데도 차한잔 즐기기 위해 들르는 차량들이 끊이지 않는다.
“갑자기 도시 생활이 갑갑해졌어요”
루마인펜션은 지난 2004년 7월 오픈했다. 서울 토박이자 직장인이었던 송 사장이 이곳에 터를 닦은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탈출이었다. 약 5년 전 출근길에 꽉 막힌 도로 위에 갇혔던 송 사장은 문득 “내 인생도 이렇게 막혀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길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고. 그 때부터 야인으로 돌아갔다.
평소 풍경 좋은 언덕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지어 살고 싶었던 송 사장은 전국을 헤맸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지형은 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2002년 대학시절부터 자주 찾았던 제주도로 발길을 돌려 장기간 답사 끝에 이 자리를 선택하게 됐다.
“이 건물을 짓는 2년 동안 여기서 살았지요. 기둥부터 마감재까지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모든 것을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결정했어요. 대상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분이었어요. 그래서인지 퇴실 때 불만을 이야기하는 손님은 거의 없습니다.”
루마인펜션의 이용 요금은 평일 16만~22만원. 주말은 18만~24만원이다. 064-782-5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