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여행은 아주 특별하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을 수 있어서다. 게다가 새해 첫 날이 일요일과 이어져 조금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 때문에 새해맞이를 위해 400만명 이상이 동해로 ‘대이동’을 할 전망이다. 어디를 가든 인산인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새해 일출 감상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조금은’ 한산한 곳이 있다. 경북 영덕이다. 지리적으로 멀어 웬만한 결심이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이 고장에는 전국에서 가장 긴 해안도로가 있다. 대축해안도로라 불리는 이 길은 무려 100리에 이른다. 구불구불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어디든 일출 포인트가 된다. 일출과 함께 색다른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영덕대게 드이소
대축해안도를 따라가는 드라이브는 남쪽 강구항에서 출발하면 세 가지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첫째가 제철을 만난 대게. 둘째는 과매기와 양미리. 세째가 오징어다.
출발점은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횟집이 죽 늘어서 있다. 여느 항구와 마찬가지로 횟집 형태이지만 다른 점은 가게마다 대게 조각이나 그림이 붙어 있다.
지난 1998년 MBC TV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강구항은 요즘 매우 바쁘다. 본격적인 대게철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새벽녘에는 밤새 잡아올린 대게를 쏟아내는 어선. 이를 경매로 넘기고. 다시 소매상들의 손으로 이어지는 손길들로 옆에서 불이 나도 잘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해가 동해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부터 밤까지 항구 주변은 대게맛을 보러 온 이방인들 차지가 된다.
▨비릿한 내음도 정겨운 어촌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대게타운을 뒤로한 채 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시작된다. 빼곡히 들어선 대게전문점들이 드문드문 적어지기 시작하면서 한적한 어촌 마을이 이어진다. 강구항을 떠난지 10여분. 금진리에 이르러 차창을 열자 비릿한 내음이 밀려온다. 새끼줄에 엮여 허리를 깊게 꺾은 채 축 늘어진 양미리와 과매기가 햇빛과 바닷바람에 몸을 말리면서 뿜어내는 내음이다.
이제 갓잡아온 듯 물을 뚝뚝 흘리는 양미리를 두고 어민들과 갈매기떼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어민이 작대기를 들고 건조대 옆을 서성이는 사이 방죽 너머 갯바위 위에 앉은 갈매기떼는 곁눈질로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 마리라도 더 말려 수입을 올리려는 쪽과 주린 배를 채우려는 쪽이 매년 이맘때 펼치는 ‘생존경쟁’이다. 이방인에게는 비릿한 내음에 곁들여진 소주 한 잔 생각에 침이 절로 넘어가고. 실랑이하는 모습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길은 해안에서 10m 이상 떨어지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진다. 파도소리와 갈매기 웃음소리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따라온다. 차를 세워놓고 바닷가에 서면 어디든지 일출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방파제를 쌓아 작은 포구를 만든 창포리를 지나면 해맞이공원이 나타난다. 가파른 언덕에 조성된 공원은 새해맞이를 준비하는 듯 데크 공사가 한창이다.
왼쪽 언덕 뒤에는 영덕풍력발전단지의 발전기 24대의 프로펠러가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면서 쉼없이 돌아간다. 국대 최대 규모로 연간 2만 가구가 이용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대관령과 이곳 등 전국적으로 두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오징어 피데기 사이소
다시 방향을 북으로 틀어 축산항을 지나면 갈 양편은 오징어가 가로수를 이룬다. 동해바다에서 잡아온 오징어의 내장을 도려낸 오징어 말리기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반건조 오징어가 주류를 이루는데. 이 고장에서는 이를 ‘오징어 피데기’라 부른다.
수분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말랑말랑한 상태인데. 불에 구워도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몸을 쭉 편 채 철망 같은 곳에 누워있는 놈. 빨래 널린듯 몸통과 다리를 반을 접어 줄에 걸린 놈. 가느다란 꼬챙이로 몸통을 꽃아 줄에 걸린 놈 등 형태도 다양하다. 공통점이 있다면 아낙들의 손놀림이다. 열 마리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철망에 눕거나 줄에 매달린다.
대진항 바로 아래 사진리에서 만난 한 아낙은 “요즘 같은 날씨에는 3일 정도 말려야 합니더. 와예. 사실라꼬?”라며 말리던 오징어 한 마리를 쑥 내민다. 어른 손바닥 두 개만한 오징어 피데기는 20마리 한 축에 3만원 정도 한단다. 작은 것은 1만원짜리도 있다.
그 사이 오징어를 가득 실은 트럭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오징어 피데기를 만드는 건조대는 대진항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