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변산반도는 반도 대부분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어디를 가든 시간대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다. 남쪽 곰소만 일대는 겨울 아침이 아름답다.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 작은 마을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산등성이를 맴도는 모습은 이곳이 바닷가인지. 깊은 산골마을인지 헷갈리게 한다.
▨바다·육지·갯벌 한데 어우러진 일출 장관
곰소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10㎞쯤 가면 남쪽으로 툭 튀어나온 작은 돌기를 돌아 넘는 고개가 있다. 갑을치라 불리는데. 고갯마루에 서면 곰소만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출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최적이다. 그렇지만 곰소만처럼 바다와 육지. 그리고 갯벌을 함께 품고 있는 지역에서는 하늘에 구름이 살짝 드리우고. 바다에 물안개가 자욱한 날이 운치있다.
지난 주말 곰소만을 찾았을 때에는 운이 좋았다. 바다에는 물안개가 넓게 퍼져 있고. 하늘에는 두껍지 않은 잿빛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우선 멀리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들의 검은 실루엣이 인상적이었다. 구름 속에서 붉게 빛을 발하는 아침 해는 이 검은 그림자와 바다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를 곁들여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세상을 밝히기 시작한 ‘붉은 불덩이’는 한동안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한 모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지경이다. 하지만 보일듯 말듯 그리고 손에 잡힐듯 애간장을 녹이며 구름 사이를 오가는 모습은 쉽게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해와 구름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 갈마봉(486m) 아래 작은 마을은 아침 준비로 부산하다. 아궁이에 군불을 때 아침을 짓는 것인지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굴뚝을 벗어난 연기는 산자락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집 주변을 맴돌고 있다. 집 앞에는 겨우내 사용할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부엌을 오가는 아낙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한 걸음만 나서면 바로 갯벌이 시작되는 바닷가 마을이지만 마치 심심산골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너무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진수성찬도 필요없다. 손으로 쭉쭉 찢은 김치를 얹은 밥 한 숟가락 생각에 침이 절로 넘어간다. 밤새 산길을 헤맨 나그네처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체면 불구하고 아침 한끼를 청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돌려야 하는 발길이 아쉽기만 하다.
▨별과 이야기하는 바람꽃펜션
갑을치에서 곰소항 방향으로 한모퉁이 돌면 닿는 작당마을 바닷가에 들어선 변산바람꽃펜션(www.bswindflower.co.kr)에 가면 특별한 아침을 경험할 수 있다.
발코니에서 갑을치 못지않은 일출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고. 침실 천장에 만들어진 스카이라이트. 즉 천창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어서다. 새벽녘 창밖에 눈앞으로 쏟아지는 별빛은 색다른 풍경이다.
2개 동 9개의 객실 가운데 지붕과 연결된 객실 5개에 만들어진 스카이라이트는 모두 36개. 침실은 물론 샤워장 등에도 지붕이 ‘뚫려’ 있다. 개인 별장 등에서는 간혹 볼 수 있지만 펜션에서 스카이라이트를 설치한 곳은 전국적으로 이곳이 유일하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이곳을 통해 별과 이야기하며 꿈나라로 갈 수 있다. 이도 부족하면 통나무집 3층에 마련된 천문대 또는 휴게실에 비치돼 있는 셀레스트론방식 355㎜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밤하늘을 감상하면 된다.
이밖에 이곳에서는 국내 펜션에 흔하지 않은 ‘재미’를 시도하고 있다. 모든 객실 창가에 통나무 욕조를 설치해 바다를 보며 목욕할 수 있도록 했고. 유럽처럼 아침을 무료로 제공하는 ‘B&B’(Bed&Breakfast) 시스템을 도입했다.
변산바람꽃펜션은 테라스 난간 바로 앞까지 갯벌이 펼쳐질 만큼 전국 펜션 가운데 바다와 가장 가까이 붙어 있다. 하지만 발이 푹푹 빠질 만큼 개흙이 너무 고와 물이 빠진 썰물 때도 갯벌체험이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캐나다산 목재만을 이용한 통나무집이란 점이 매력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른다. 펜션 사장인 서욱(48)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통나무집 전문 건설업체의 모델하우스를 겸해 지었기 때문에 꼼꼼하면서도 실용성까지 갖춰져 있다. 요금은 규모에 따라 15만~45만원(주말 기준)이다. 063-584-2885.
▨새조개·피조개·백합 자연산 제철
전북 부안군은 요즘 백합이 제철이다. 부안에서는 백합을 ‘생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디를 가든 식당 입구에 ‘생합’이라는 간판이 선명하다.
생합을 섞은 조개구이(사진)도 한창이다. 물론 일년 내내 조개구이를 즐길 수 있지만 이맘 때가 자연산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대표 조개’인 백합을 비롯해 새조개·피조개·홍합·소라·석화·가리비 등 불 위에 오르는 조개 종류는 다양하다. 이 중 겨울에 잡지 못하는 가리비만 양식을 사용할 뿐 나머지는 모두 자연산이다.
10년 넘게 갑을치에서 실내포장마차 ‘광주집’(011-9175-2317)을 운영하는 김순의(57)씨는 “항상 모든 조개류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오. 날씨가 추워지면 어부들이 물질을 꺼리기 때문에 때로는 빠지는 것도 있지라우. 특히 백합 같은 것은 더 허요”라고 설명한다.
불에 올려 껍데기가 쩍 벌어질 때 속살을 파내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은 일품이다. 날것을 좋아하면 회로 즐길 수도 있다. 보통 1인분에 1만원꼴을 예상하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조개류를 재료로 한 죽도 별미다. 광주집에서는 백합죽(7000원)이 맛있고. 계화도 포구에 있는 양지짱뻘조개구이(063-582-0496)에서는 소라죽(5000원)의 원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