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절반은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곳. 화려한 야경과 수많은 관광지들. 하지만 런던에서 빅벤을 보고. 파리에서 에펠 탑을 보는 것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낯선 도시에서 펼쳐지는 로맨틱한 데이트.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파리(혹은 다른 도시)의 연인이 될 수 있다.
●J양. 트렁크 풀자마자 영웅 된 사연
H씨가 러시아란 나라와 힘겹게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H씨의 유럽 입성에 맞춰 런던 출장 카드를 회사로부터 받아낸 것. 뮤지컬에 대한 취재가 주목적이긴 했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했을 뿐. 런던에서의 깜짝 데이트를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낮게 드리운 우중충한 잿빛 하늘과 블랙 캡(검정 택시). 멋스런 우산을 들고 다니는 바바리 코트의 노신사. 런던을 떠올리는 이미지는 언제나 불투명한 무채색이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런던 중심으로 향하는 길가에 한 폭의 수채화를 펼친 듯한 초록 잔디와 시내를 달리는 빨강 이층 버스. 알록달록 노랑 간판들로 깔끔하게 정돈된 런던은 더 이상 무채색의 도시가 아니었다.
한달 만에 만난 H씨의 얼굴은 정말 많이 망가져 있었다. 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H씨의 하소연에 런던에 가는 트렁크는 먹을거리들로만 가득 채웠다. 볶음고추장·각종 즉석 국·골뱅이캔·신라면·짜파게티. H씨와 그 일당의 환호성은 하늘을 찔렀고 나는 졸지에 영웅이 되었다.
일주일의 출장기간 동안 버킹엄궁전·대영박물관·빅벤·하이드 파크·내셔널 갤러리 등 유명하다는 런던의 관광지들을 뒤로한 채 오로지 뮤지컬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뮤지컬 하면 쉽게 떠오르는 곳이 뉴욕의 브로드웨이지만 사실 뮤지컬의 본고장은 이곳 웨스트엔드다. 이곳에서 성공한 뮤지컬들이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건너가면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곤 한다.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캐츠> <레 미제라블> 등 현재 세계 곳곳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뮤지컬들이 모두 런던에서 제작된 것이다.
●런던의 마지막 밤은 뮤지컬과 함께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을 두 축으로 이어진 웨스트엔드는 영국이 자랑하는 대중문화의 상징이다.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이곳은 오늘의 런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현미경이자 문화충전소이다.
큐브 또는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 런던의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첫눈에 들어온 것은 색소폰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거리의 악사. 거리 공연으로 유명한 코벤트 가든의 광장에는 코미디언의 퍼포먼스가 사람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화려한 명품들로 즐비한 본드 스트리트. 쇼핑과 패션의 거리 리전트 스트리트. 영국식 건물에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차이나타운 제라드 스트리트.
이런 멋진 거리에서 우리는 열심히 한달 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노천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저렴한 런치 세트로 즐기는 피시 앤드 칩스. 세상의 온갖 지도만을 모아 놓은 스탠퍼드서점.
뮤지컬 극장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간판의 유혹만으로도 그 줄거리를 상상하며 무엇을 볼까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진다. 거리에는 티켓오피스가 즐비하고. 팸플릿을 든 채 사람들 사이를 서성이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이 짐작되는 화려한 뮤지컬들이 매일 밤 웨스트엔드에서 30여 편씩 공연된다. 저렴한 티켓을 구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오페라의 유령> 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오리지널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여운. 런던에 오면 뮤지컬을 보라.
●H씨의 숨겨진 로맨스 전략
하바로프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는 장장 52시간 동안을 논스톱으로 달려야 했다. 시베리아의 광활하고 장대한 차창 밖 풍경도 2시간이면 지루해지는 법. 삶은 계란과 팔도 도시락 면으로 연명하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결국은 비상용으로 숨겨두었던 화투까지 꺼내야 했다. 게다가 어느 날 밤에 총을 들고 나타난 술 취한 군인은 여권과 거주등록증을 보자며 행패를 부렸다. 모두가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다.
나타샤라는 아가씨의 도움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눈에 낀 콩깍지가 하나씩 벗겨지고. 러시아란 나라와 시베리아는 점점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도 보다 더 강도 같은 러시아 경찰들의 횡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의 잔재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러시아 사람들.
까칠한 나라 러시아를 횡단하면서 몸과 마음은 지쳐 갔고. 여행하며 처음으로 슬럼프에 빠져 보기도 했다. 남은 한 달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런던에까지 나타난 J양의 유난에 겁이 나기도 했지만. 30㎏이 넘는 트렁크 한가득 먹을거리들로 채워 온 모습에는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J양의 뮤지컬 취재를 도와주면서 런던의 낯선 골목들을 서울보다 더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골목길의 작은 풍경 하나.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기자기한 물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의 차 한잔. 작은 것 하나에도 여자들은 여행이 즐겁다. 남자들이여. 군말없이 잘 따라다니기만 해도 데이트의 절반은 성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런던에서 뮤지컬 티켓 구하기 법칙 5
△법칙 1. 서핑의 힘을 발휘. 인터넷 이용하라
온라인에서 가장 쉽게 티켓을 사는 방법은 공식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것. ‘Buy Tickets Online’ 버튼을 누르거나 티켓온라인 페이지로 가서 최근 상영하는 공연 정보를 확인한다. Ticket master 홈페이지에 들어가 ‘THEATRE’메뉴에서 보고 싶은 공연을 선택한다. 공식 홈페이지 www.officiallondontheatre.co.uk
△법칙 2. 원칙이 최고. 저렴한 할인티켓 TKTS를 찾아라
런던 최고의 뮤지컬 티켓을 막판에 싸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 레스터 스퀘어의 시계탑 안에 위치한 TKTS(1980년 세워짐) 티켓 창구는 반 가격 또는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공식적이면서도 유일한 곳이다. 당일 공연 티켓만 팔기 때문에 전화 예매는 없다. 서비스 비용으로 2.5파운드가 붙는다.
△법칙 3. 원하는 표를 찾는다면. 극장 박스오피스로
극장 박스오피스는 대개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저녁 공연 시작 30분 후에 닫는다. 직접 가서 티켓을 사면 부킹 비용은 없지만 전화 예매의 경우 소액의 추가 비용이 든다. 극장 박스오피스에서 티켓을 사면 원하는 좌석에서 확실하게 공연을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법칙 4. 무조건 싼 것이 최고. 티켓 대리점의 가격을 비교하라
런던 극장들의 공연 티켓은 대부분 크고 작은 티켓 대리점에서 판다. 우리나라로 하자면 티켓링크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합법적인 대리점들은 STAR(The Society of Ticket Agents & Retailers)의 멤버이기 때문에 티켓을 살 때 STAR 표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법칙 5. 최후의 수단. 암표. 에이전시 직원 불법 티켓도 방법 중 하나
암표상이나 에이전시 직원들로부터는 티켓을 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주로 티켓 창고에서부터 온라인. 길거리 판매를 주로 하는데 운 좋으면 공연 직전 좋은 표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지만 대부분 가짜 표이거나 비싼 가격에 사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
- 다음주 예고
한달 후 독일에서 완전히 합류하는 J양.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그들의 좌충우돌 세계 여행.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체코로 떠나는 야간 기차와 두 눈 똑바로 뜨고 당한 환전 사기. 밤마다 수많은 공연들이 펼쳐지는 매력도시 프라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오페라의> 레> 캐츠> 미스>오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