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여행이 일순간 돌이키고 싶지않은 악몽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난감한 상황.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매력이라지만 한 번 당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 매일 마주치는 여행지에서의 트러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J양은 지난 번보다 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J양과 함께한 여행이 언제나 즐겁고 유쾌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길어야 일주일의 짧은 시간. 앞으로 함께 할 6개월여의 시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남자끼리 여행을 해도 트러블이 생기게 마련인데. 과연 그녀와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함께 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 확실히 우리는 95m 높이의 고딕 성당 돔이나 괴테하우스 같은 관광지보다는 뢰머 광장 근처의 길거리 음식에 더 열광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때마침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200개가 넘는 가게가 빼곡하게 들어차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잘 익은 독일식 소시지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글뤼바인(따뜻하게 데워 먹는 와인). 괴테가 좋아했다는 사탕과자와 갖가지 모양의 초콜릿…. 그리고 현지인 가득한 팝에서의 독일식 정통 맥주 한 잔. J양과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진하게 건배를 했다. 치어스
며칠 후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연인의 도시 프라하에 도착한 우리는 올빼미처럼 밤에만 돌아다녔다. 프라하의 밤은 저렴하고 수준 높은 공연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한 가격 3000원에 보았던(비록 입석이긴 하지만) 오페라 <아이다> . 모차르트 오페라의 재기발랄 버전인 인형극 돈 조반니는 이미 프라하의 상징이 된지 오래고. 연극·무용·무언극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재즈바의 화려한 연주.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바츨라프 광장의 밤거리를 서성거렸다. 조그마한 선술집에서의 독한 흑맥주 한 잔도 좋고. 우아한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 레스토랑의 식사도 좋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에서는 밤에 대한 기억만이 존재한다.
●트래블? 트러블? 여행자는 언제나 KO패
사실 프라하에서 좋은 기억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프라하의 첫 날. 바츨라프 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남자에게 그만 어처구니 없는 국제 사기를 당하고 만 것. 달러와 유로만 가지고 있어 체코 돈이 필요한 우리는 환전을 해야 했고. 때마침 나타난 사내는 시세보다 저렴한 환율로 우리를 유혹했다.
러시아나 다른 동유럽 국가에서도 길거리 사설 환전을 많이 이용해 봤던 터여서 별 의심 없이 덜컥 환전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받은 체코 돈은 국적불명의 위조지폐였다. 아뿔싸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 자리에 사기꾼 남자가 있을 확률은? 이런 울트라 캡숑 바보들~.
시내로 들어가보니 여기 저기에 우리가 받은 돈 그림을 커다랗게 걸어놓고 있었다. 그 위에 대담하게도 그려진 빨간 X자. 주.의.요.망 아~ 이런 밀란 쿤데라도 울고 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부끄러움’ 같으니라고.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사실 전쟁과 같다. 매일 매일 마주치는 선택의 기로에서 늘 승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호시탐탐 어리버리한 여행자들의 급소를 노리는 호객꾼과 장사치들. 중국이나 동남아·이집트 등지의 시장에서는 무려 5분의 1 가격으로 흥정에 성공하고도 가게 문을 나설 때는 뒤통수가 찜찜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번 현지인들과 자존심을 건 싸움을 해보지만 여행자는 언제나 KO패. 이럴 땐 결국 그런 흥정까지 즐기는 수밖에 없다. 사기와 바가지를 당해도. 그런 싸가지 없는 피플들을 만나더라도 그 모든걸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당신의 정신건강을 지켜 줄 처방전이자 여행의 고수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J양의 숨겨진 로맨스 전략
한국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나오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던 전세방도 빼야 했고. 여러 가지 서류 처리와 휴대전화·신용카드·통장 정리….
게다가 출발하기 전날까지 나의 발목을 잡던 마지막 업무 처리까지. 여행을 준비하며 너무 지쳤는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H씨만 졸졸 따라다녔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건 완전한 휴식을 의미한다. 아~ 아무런 고민 없이 누군가 대신 선택을 해준다는 것이 이렇게 편안할 줄이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출발한 야간 열차의 4인실 쿠셋(간이침대칸)에 다른 손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밤새도록 자유롭게 애정행각을 벌인 우리는 새벽 어스름이 지날 무렵 프라하에 도착했다.
호객꾼을 따라간 호스텔은 조금 낡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본 더블룸 중에 크기로만 치면 단연 최고다.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낮에는 주로 이 방에서 수다를 떨거나 음식을 해먹으며 뒹굴거렸고. 저녁이 돼서야 눈을 반짝거리며 숙소를 나섰다.
사실 첫째 날의 환전사기는 큰맘 먹고 온 여행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자신만만하게 환전하던 H씨가 밉기도 했지만. 여행지에서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법이라는 H씨의 귀여운 주입식 교육에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얻게 된 한 가지 교훈. ‘이 남자에게 모든 걸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
여행을 하면 언제나 트러블은 생기게 마련이다. 솔직히 나 자신도 어느 정도 H씨에게 의존하려던 구석이 있었다. 지금도 많은 여성이 함께 여행하는 남자 친구나 남편을 짐꾼이나 해결사로 생각하고 있다.
여자들이여. 즐거운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커플여행을 위해 이것만은 반드시 기억하도록 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비난하지 않기.’
●프라하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 Best 5
1. 서푼짜리 오페라(?). 국립 오페라 극장
아름다운 건물로 유명한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아이다> <카르멘> <리골레토> <나비부인> 같은 주옥 같은 오페라들이 1년 내내 펼쳐진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공연 내용은 거의 최고 수준. 입석표를 끊으면 3000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
2. 유쾌한 돈 조반니.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300년 이상 된 체코의 인형극 중에서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돈 조반니> . 모차르트의 동명 오페라를 인형극으로 각색한 이 공연의 주인공은 단연 줄에 매달려 화려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인형들.
3. 자유의 리듬이 넘쳐나는 곳. 재즈바
프라하 시내 곳곳에서는 밤마다 수많은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 뮤지션들의 화려한 연주와 도수 높은 흑맥주에 취하다 보면 프라하의 밤이 어떻게 깊어가는지 모를 것이다.
4. 어둠과 빛의 향연. 블랙 시어터
체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마임극. 어둠 속에서 조명장치를 이용해 특수 안료를 바른 배우의 움직임을 마치 야광 봉처럼 볼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다. 춤과 팬터마임. 음악이 함께하는 신비하고 코믹한 세계.
5. 작은 음악회. 시민회관
세계 최고 수준의 체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음악축제인 ‘프라하의 봄’의 개막 무대가 펼쳐지는 스메타나 홀에서는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갈라 콘서트 위주의 공연이 펼쳐진다.
<다음주 예고>
여행지에서도 가끔 휴식은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호수 온천 헝가리 헤비츠 교기과 부다페스트에서 맛 보는 깔끔한 스위트 와인 ‘토카이 아수’. 와인하우스를 저렴하게 이용하는 방법과 지친 여행을 달래주는 휴(休) 플레이스들을 소개합니다. 다음주> 돈> 나비부인> 리골레토> 카르멘> 아이다>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