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을 게 뭐 있습니까. 모교 후배들을 가르치니 그 이상 더 뿌듯한 것도 없지요.”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얼굴은 마치 도인 같았다. 일본 미야자키현 휴가시 다이오타니 구장에서 전훈 중인 이광은(52) 연세대 감독은 “여유가 엿보인다”는 말에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산자락 끝에 자리잡은 구장에는 선수들의 기합소리만이 적막을 깰 뿐 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절대 큰소리 한번 지르지 않는다.
이 감독은 2004년 9월 타격 인스트럭터를 거쳐 2005년 8월 정년 퇴임한 김충남 감독의 바통을 이어 연세대 사령탑에 부임했다. “처음 선수들은 엉망이었어요. 자질은 충분했지만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야구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외부적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감독이 도입한 것이 ‘프로식’ 자율야구였다. “학원야구라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상 자기 몸은 알아서 관리를 해야죠. 고졸 프로도 잘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야구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과감하게 프로 스케줄을 도입했다. 따라서 캠프 훈련은 3일 훈련 1일 휴식으로 진행되고 캠프 일과도 오전 10시께 시작해 오후 3시 반이 되면 공식적인 훈련은 모두 마친다. 다른 대학에서 1주일 훈련 1일 휴식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외출 금지 등 숙소에서의 딱딱한 규율도 없다. 하루 3끼 식사만 잘 하면 된다. 이 감독은 “훈련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가면 자유시간이다.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다. 그런데 요즘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야간훈련을 한다”고 귀띔했다. 이번 일본 전훈도 프로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고싶어 실시했다.
물론 처음부터 선수들이 ‘자율야구’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은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방종으로 잘못 생각하고 선수단을 이탈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을 이해하고 껴안으니 이제 자리가 잡혔다.
덕분에 성적도 좋아졌다. 연세대는 지난해 대통령배에서 4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올 시즌에는 연세대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기대해 달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 감독의 표정에는 2001년 시즌 도중 LG사령탑에서 불명예 퇴진할 때의 어두운 그림자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