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더니. 이 골목 한번 들어서면 어디 옷깃뿐이더냐. 두 어깨 착착 감아치는 좁디좁은 골목. 종로 서울극장 옆 골목 되겠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만한 작은 길이라고 얕보지 마라. 종로 바닥 반질반질 묵은때가 어디 하루아침에 된 성싶은가?
종로3가역 14번 출구에서 서울극장 가기 한 블록 전에서 좌향좌. 그리고 직진.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골목골목 상패가게가 눈에 띈다. 그리고 사이사이 지하에 숨은 빠찡꼬 가게. 여기까지만 발을 들이밀고는 ‘여기가 아닌가벼’ 하고 뒷걸음을 친다면. 당신은 오늘도 대로변의 그저 그런 식당에서 한 끼를 때우게 될 것이다. 자. 원치 않는다면 다시 10m 직진.
이번엔 감 잡았는가? 뽀얀 연기 속에 올라오는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 한일식당이다.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 위에 고등어·조기·굴비가 노릇노릇 익어간다. 찌개·찜·볶음 등 50여 가지의 한식메뉴가 있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생선구이다. 5000원짜리 한 장이면 야들야들한 생선 한 마리에 된장찌개. 반찬 예닐곱 종류. 압력솥밥이 주르르 딸려온다.
날도 추운데 고생한다는 인사를 “겨울에는 땀 안나서 좋고. 여름에는 발 안시러워 좋지” 하고 기분 좋게 받아치는 사장 어깨 너머로 수족관 하나가 보인다. 목포낙지다. 수족관 안에서 열심히 몸을 놀리고 있는 녀석들은 모두 주인내외의 고향인 목포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낙지계의 로열패밀리 목포 세발낙지 한 마리(2만원)면 두 명이서 소주 2병은 달게 마실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밑반찬은 많지 않다. 대신 회 하나는 ‘퍼덕’ 소리가 날 만큼 싱싱하고 두툼하게 썰려 나온다.
목포낙지를 지나오면 골목은 더 좁아진다. 일명 굴보쌈 골목. 삼해집·전주집·최부자 등 다섯 개의 가게가 주루루 이어진다. 20년째 맛을 이어가고 있는 삼해집은 가장 오래된 집이다. 하루 동안 소금에 절여 캘리포니아롤처럼 돌돌 만 배추김치 위에 보기만 해도 입안이 화끈거리는 벌건 보쌈김치가 또 한 겹 올라간다.
그 위에 몸을 푸는 생굴 한주먹. 뜨끈한 보쌈고기와 입안에 넣으면 소주생각 간절해진다. 놀랍고 고마운 건. 귀하디귀한 굴과 보쌈김치가 공짜로 리필된다는 사실 (무한리필은 아니다. 정도껏 하자) 오후 3~4시가 되어야 문을 여니 점심 한끼로 보쌈생각 간절하다면 전주집이나 최부자로 가라.
좁디좁은 보쌈골목을 벗어나면 길이 다시 넓어진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옆길로 새지 마라. 10m 수고스러움을 견디면 천안에서 올라온 따끈따끈한 병천순대를 맛볼 수 있다. 병천순대국집. 큰창자(대창)를 쓰는 함경도 아바이 순대와 달리 작은창자(소창)를 써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적은 병천 순대만을 상에 올린다.
그렇다고 낡고 허름한 밥집만 있는 건 아니다. 고꼬로는 영화 한편 보고 연인들끼리 술 한잔 하기 좋은 일본식 오뎅바이다. 일본 이자카야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실내. 적당히 어두운 조명이 분위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