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서울 근교 최고의 카페촌을 형성했던 백마역 주변. 애니골이란 이름으로 한때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던 이곳에서 추억과 새로운 맛의 향연에 빠져 본다.
이곳의 거리를 메운 상점의 모양새는 90년대에 비해 조금은 바뀌었다. 통기타 카페 일색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각종 음식점과 보통의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가족 손님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통 레스토랑과 보리밥 집에. 오리 숯불구이 레스토랑 등 이른바 퓨전 음식점들도 눈에 띈다. 백마 카페촌을 찾던 20대의 젊은이들이 이제는 가족의 손을 잡고. 또 추억을 함께 나눴던 친구들과 애니골 거리를 찾는 30~40대가 됐다.
94년 애니골이 생긴 이래로 꾸준히 인기 맛집으로 미식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이 있다. 특히 96년부터 애니골을 지켜온 장수마을은 첫 방문객들의 첫 방문 코스이기도 하다. 원래 닭백숙을 하던 집이지만 닭찜을 먹은 후에 나오는 누룽지죽이 워낙 인기가 많아 아예 메뉴 이름까지 누룽지 백숙으로 바꿨다. 누룽지 백숙은 닭찜과 죽 두 코스로 나온다.
큐파티는 뚝딱뚝딱 기계를 잘 만드는 일명 ‘기계장이’ 주인이 돼지고기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직접 고안해 만든 디지털 바비큐 기계로 유명하다. 이 기계에 초벌구이해 온 삼겹살을 한입 덥석 먹으면 ‘여지껏 먹은 삼겹살은 삼겹살이 아니었구나’ 하는 심각한 혼동을 준다. 20㎜ 두께의 돼지삼겹살에 통마늘을 떡심처럼 집어넣고 3단계 온도 조절 비법으로 바비큐를 지글지글 구워 낸다. 일반 삼겹살에 비해 멧돼지의 육질이 부드럽고 그릴에 구워 연기로 인한 불편한 점이 없다.
애니골 통나무집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실촌은 온통 통나무로 에워싸인 산장 같은 곳이다. 최근 애니골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입소문이 나서 점심시간 때면 1·2층 모두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주인에게 한결같이 “식당 말고 갤러리나 예식장으로 활용하라”고 장소의 안타까움을 토로할 만큼 무척 인상적인 공간이다.
마실촌은 자연 건강 한정식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꽃게로 만든 간장게장 정식은 멀리 부산에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을 정도로 인기 만점 요리이다.
식도락은 미국 LA 현지 교민들에게 잘 알려진 떡보쌈으로 유명하다. 주엽과 분당에 같은 이름으로 가게를 냈지만 이곳 모두를 사장이 모두 직영할 만치 깐깐함이 있다. 떡보쌈은 쌀 절편을 얇게 썰어 만든 떡으로 직접 구운 고기와 야채. 그리고 이 집에서 직접 개발한 소스와 함께 쌈을 싸서 먹는다. 상추와 깻잎 등에 쌈을 싸 먹는 일반 요리와 다르지만 그 맛이 쫀득하고 깊은 것이 인상적이어서 한 번 맛보고 나면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약호박밥으로 유명한 초가누룽지는 풍동 애니골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반찬들도 깔끔하고 점심 특선으로 나오는 달님정식에 단호박 약식을 추가한 1만원 가격의 정식은 조금만 시간이 늦으면 ‘없어서 못 파는’ 메뉴이다.
사찰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옛골시골밥상은 20여 가지가 넘는 나물과 구수한 보리밥이 한 상 가득 나오는 한정식집이다. 된장찌개 대신 뚝배기에 끓여 낸 강된장이 입맛을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