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대는 명동 도심. 오가는 사람들에 치여 숨조차 고르기 힘든 대로는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 돌려보면 여유로운 옛 정경을 간직한 골목도 가득하다. 그중 명동 입구에서 첫 오른쪽 골목을 눈여겨보자.
이 골목은 어느 곳보다 낡고 허름하다. 대로의 현대식 고층 빌딩과 휘황찬란한 숍과는 달리 작은 근대식 건물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중국대사관 정문을 기준으로 양쪽 옆과 앞쪽의 T자형 길은 중국풍의 상점들과 음식점이 몰려 있는 ‘콴챈루’ 또는 ‘대사관 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이 낡고 초라한 간판들이 바로 이곳의 역사와 위치를 말해 준다. 유행 따위는 관심 없는 듯. 무심하게 변화 없이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대사관 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중국색은 짙어진다. 150m 정도에 이르는 이곳은 낮보다 해가 지면 불야성을 이룬다. 폭이 3~4m쯤 될까 한 골목에 낮에는 문을 닫아 놓거나 밥 등을 팔던 가게가 포차를 펼쳐 놓고 오가는 주당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I love NY. 명동 85번가. 홍성여행사 간판 아래 간판 없는 주점. 이 세 곳이 모여 하나의 ‘포차군’을 형성했다. 야채 곱창·오돌뼈 볶음·번데기 등 술안주에 좋은 메뉴들을 비슷하게 갖추고 있다. 퇴근 후 저렴한 가격과 부담 없는 맛으로 소주 한잔을 걸치려는 직장인들의 어깨와 주머니를 가볍게 한다.
지금은 중국대사관이 종로로 옮겨 가고 중앙우체국이 공사 중이라 거리가 더욱 고요해졌지만 음식을 찾는 미식가의 발길은 여전하다. 화교가 운영하는 진짜배기 중국 음식들의 중독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맛도 맛이지만 저렴한 가격도 무시 못할 매력이다. 이유는 저렴한 임대료 덕이다. 가게 부지는 중국령으로 중국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영구 임대하고 있다. 때문에 이변이 없는 이상 가게를 빼는 일은 드물다. ‘개화’ ‘일품향’ 등이 40년 이상 묵을 수 있던 것도 이 덕이다.
요리사는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라 면 요리뿐 아리라 육류·해산물 요리가 맛있고. 조미료를 듬뿍 넣어 맛이 강하다. 대부분의 메뉴판은 여느 중국집과 다를 바 없는 다양한 요리를 갖추고 있다. 물론 요리 연륜만큼 대부분의 음식점이 기본 이상의 수준이다. 하지만 요리 집마다 잘한다는 대표 메뉴가 있어 ‘땡기는’ 음식에 맞춰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우선 중국집의 대표 메뉴 자장면 맛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개화를 찾아라. 이곳은 대사관 길에 즐비한 중국 음식점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중국집으로도 통한다. 3대에 걸쳐 한자리에서 중국 음식만을 만들어 왔다. 저렴한 가격의 푸진 밥 한 끼를 원한다면 향미를 찾아라.
양남동에서 이미 40년의 역사를 굳힌 향미.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연남동 가게는 아버지가. 명동 가게는 아들이 주방을 운영한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3대째인 조수핑씨는 산둥 출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대만 유학파 출신이다.
덕분에 산둥의 손맛에 대만의 입맛을 가미해 이색적 풍미의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산동교자는 물만두와 오향장육이 맛있는 곳. 쫄깃쫄깃한 만두피에 중국 부추로 소를 채운 물만두가 일품이다. 마늘을 듬뿍 갈아 넣은 새콤달콤한 소스를 부어 먹는 오향장육은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식사보다는 고량주 한잔을 하러 온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저녁시간이 붐빈다.
두 손에 부모를 위한 간식거리를 들고 집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중국 전통 과자를 파는 도향촌은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출출할 때 영양 간식이나 선물용으로도 손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