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561돌 한글날이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 언어라는 찬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한글은 시나브로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 빈자리는 외래어가 차지하는 추세다.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문제는 범람하는 국적 불명의 언어들이다. 뿌리도 없는 말들이 일상 생활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의미가 왜곡된 영어식 표현이 대부분이며, 일본어 사용도 적지 않다. 특히 자동차 부문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대부분 일본어 또는 일본식 영어가 차지하고 있는데 수십 년 동안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핸들 입빠이 꺾어!"
운전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3개 국어가 사용된 문장으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하면 어색하기만 하다. '핸들'과 '입빠이'란 단어는 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래어들이다.
우선 핸들이란 표현이 잘못됐다. 핸들이란 자동차 용어에서 도어에 달린 손잡이다.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우리말로 운전대, 영어로는 스티어링 휠이다.
입빠이(一杯·いっぱい)는 '가득히'라는 뜻의 일본어다. 술을 마실 때 "잔에 입빠이 채워라", 주유소에서 "입빠이 넣어 주세요" 등에 쓰이고 있다. 위의 문장에서는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이처럼 본래 의미와 맞지 않은 외래어 사용이 빈번하다. 일상 생활은 물론 카센터, 자동차 생산 현장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 자동차 업계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장에서 와꾸(틀)·기스(흠·흠집)·야스리(줄)·자바라(주름 상자)·기레빠시(자투리) 등 공구류나 기계 장치류에서 일본어 사용이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식 영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핸들 외에 백미러·미션·세루모다·쇼바 등이 대표적이다.
백미러는 실내에서 운전자가 후방을 볼 수 있는 거울을 지칭하는데, 정확한 표현은 '리어 뷰 미러' 또는 '룸 미러'이다. 실제 백미러는 SUV 등에서 후진할 때 편의를 위해 차량 뒷 부분에 장착된 거울을 부르는 이름이다.
미션은 변속기의 영어인 트렌스 미션, 세루모다는 엔진 시동 장치인 스타트 모터, 쇼바는 스프링의 2차 진동을 흡수하기 위한 완충기 쇼크 업소버를 지칭하는 일본식 영어다.
이밖에 빠꾸(후진)·마후라(머플러)·화이바(헬멧)·밤바(범퍼)·본네뜨(보닛)·빵구(펑크)·다찌방(대시보드) 등 일본식 영어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말 표현이지만 잘못된 경우도 있다. 가장 흔한 단어가 깜빡이. 방향 지시등을 지칭하는데 깜빡깜빡 점멸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지만 비속어에 가까운 데다 방향 지시등은 점멸 기능만 하는 것으로 볼 수 없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우리말을 쓰면 가장 좋겠지만 자동차 분야의 특성상 영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영문 용어를 써야 한다면 원래의 단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