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39) 전 원주 TG삼보(현 동부프로미) 센터. 농구인들은 그를 '못다핀 꽃 한 송이'라 부른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최고 유망주'란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장신(202cm)이면서 도 빠른 몸놀림으로 93년 실업팀인 현대전자에 입단했을 때도 그랬고, 97년 현대다이넷(현 KCC)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 했을 때도 그랬다. 그러던 그가 2005년 5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코트를 떠났다. 잦은 부상에다 외국인 용병이 들어오면서 그의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농구 코트를 떠난 그는 쌀국수 음식점을 하면서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다.
▲그림자 선수
선수시절 정경호는 그림자 같은 선수였다.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파울맨이자 백업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도 한때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릴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휘문고 3학년 시절 그를 둘러싼 고려대와 중앙대의 스카우트 전쟁은 유명하다.
그는 한기범·김유택을 키운 '센터 사관학교' 중앙대를 선택했다. 그가 각광 받을 이유는 충분했다. 신체 밸런스가 잡힌 리얼 신장이 2m가 넘는 장신선수였기에 기대는 컸다.
특히 그는 한기범처럼 마르지 않았고 표필상 보다는 크고 빨랐다. 서장훈 출연 이전까지는 한국인 센터로서 가장 이상적인 몸을 가진 선수였다. 덕분에 국가대표 선수생활도 1994년부터 1999년까지 할 수 있었다.
한창 기술이 발전하고 선수로서 꽃을 피울 20대 중반에 프로화가 진행된 것이 정경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도 서장훈을 뺀 국내 센터들이 겪은 고통을 곱씹어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센터들(표필상·박상관·조동기·정구근·이흥섭·박상욱 등) 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벤치만 지켜야 했다.
그는 "프로화 후 처음 외국인 선수들과 만났을 때 우리(토종 센터들)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비슷한 키에 몸무게는 30kg이 더 나가고 점프력도 더 좋은 선수들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까지 프로농구에서 토종 선수중 정통 센터로 살아남은 선수는 서장훈 하승진 단 두 명(김주성은 포워드로 등록)에 불과하다.
▲3억원 이상 퍼주고 세상을 배웠다.
은퇴후 9개월 동안 '뭘 할 것인가' 구상을 하다가 2006년 2월 삼성동 공항터미널에 '리틀 사이공'이라는 쌀국수 집을 오픈했다. 주변에서 권했고, 또 쌀국수를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그에게 사회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쉬운 게 없었다. 처음 사회와 접했을 때 그가 가장 어려워했던 것은 '어서 오세요'하는 손님을 응대하는 말이었다.
그는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데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내가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상냥하게 하고 싶은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퉁명스럽게 들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월급만 받다가 반대로 월급을 주려니까 힘들었다. 융통성 있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곧이곧대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악전고투 끝에 장사는 점점 잘됐다. 2007년 말에는 월 매출이 1억원 가까이 올라갔다. 해볼만한 장사가 아니라 남는 장사가 됐고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할까. 2008년 초, 업장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이 틀어졌다. 공항터미널과 상가임대업자의 분쟁이 생겼다. 그 와중에 십원도 건지지 못하고 쫓겨났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었다.
그는 "그때 피눈물이 났다. 인테리어 비용 1억6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보증금 1억7000만원은 아직도 받지 못했다. 화병이 나서 처음 일주일간은 잠도 못 잤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상가 4곳이 같은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잘못한 것 하나 없어도 사회에서는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회에서는 유망주 아닌 챔피언이 될 것
공항터미널에서 쫓겨난 후 6개월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항상 멍하니 있었고 두문불출 했었다. 하지만 어려울때 그를 돕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됐다. 허재 KCC 감독은 "사내자식이 뭘 그런 것 갖고 그래. 한잔 먹고 푹자"라며 함께 소주잔을 기울여 줬다.
툭툭 털고 일어선 그는 다시 쌀국수집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내가 잘못을 해서 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쌀국수는 자신 있었다. 또 내가 해본 게 쌀국수 밖에 없었다. 다시 쌀국수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쌀국수에 다시 도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6개월간 장소를 보러 다닌 끝에 보금자리를 찾았다. 지난 5월 서울 강남 교보사거리 뒤쪽에 '리틀 사이공'을 열었다.
공항터미널과 비교하면 매출은 형편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봤다. 오픈 6개월 만에 손익 분기점을 넘어섰다. 공항터미널 시절보다 빠른 성장세다. 그는 "내 승부수는 쌀국수다. 사회에서는 유망주가 아닌 챔피언이 되겠다"며 주문을 외우듯 다짐했다.
◇정경호 프로필
생년월일 1970년 6월 14일 신장/체중 202cm/98kg 혈액형 A형 취미 낚시 출신교 휘문고-중앙대
경력 2006년 프로농구 TG삼보 현역은퇴 1998년 프로농구 나래블루버드 이적 1997년 프로농구 현대 다이넷 1994~1999년 남자농구국가대표 1993년 현대전자 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