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이 무산된 뒤, 장병수 롯데 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젊고 패기 있는 롯데의 팀 컬러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후임 인선의 주요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로이스터와 반대되는 스타일의 감독은 인선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
그리고 지난 21일, 롯데는 양승호 전 고려대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택했다. 그가 ‘롯데의 팀 컬러에 잘 맞는 지도자’란 얘기다. 다르게 말하면 로이스터 체제의 좋은 점은 계승하고 부족한 점은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신임 감독은 전임 감독과 닮아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① 학연-지연에서 자유로운 외부인
양승호 감독이 롯데의 감독 제의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말에도 롯데는 양 감독을 감독 후보로 심각하게 고려한 바 있다. 막판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추천으로 로이스터 감독이 급부상하지 않았다면, 양승호 감독의 롯데행은 지금보다 3년 정도 빨라졌을지도 모른다.
지역색이 강한 롯데가 출신이나 학교 어느 쪽에도 연고가 없는 양승호를 영입하려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롯데는 팀 내 특정 학교 출신 간의 파벌 다툼으로 몸살을 앓던 차였다. 이에 구단 최고위 인사는 해결책으로 ‘학연과 지연에서 자유로운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할 것’을 지시했고, 신일고-고려대 출신의 양 감독이 강력한 후보로 거론된 것.
물론 현재는 외국인 감독의 효과로 파벌 다툼이나 내분은 상당부분 해소된 상태다. 분명한 건 이런 외부인의 정체성이 양승호 감독으로 하여금 출신 학교나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팀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란 점이다. 로이스터 감독이 그랬듯이.
② 소통의 리더십
시즌 후반 한 관계자는 “롯데의 힘은 로이스터에게서 나온다”고 했다. “롯데 선수들이 정말 신이 나서 야구를 하는 게 보인다. 감독 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즐거워서 훈련을 하고 시합에서 최선을 다한 과감한 플레이를 한다는 거다. 과연 로이스터 아닌 다른 감독이 와도 선수들이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실제 로이스터 재계약이 불발됐을 때 많은 이가 우려한 것도 ‘롯데 특유의 팀 분위기 실종’이었다. 하지만 양승호 감독의 부임은 이 문제에 관한한, 팀원들과 팬들의 걱정을 상당부분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LG 감독대행 시절부터 고려대까지 양 감독은 인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덕장’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
2006년을 기억하는 LG팬 중 상당수는 “시즌 후반 양승호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은 뒤부터 눈에 띄게 팀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양 감독이 신예와 노장에 공평한 기회를 준 것은 물론,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소통’에 힘을 쏟았기 때문. 고려대에서도 양 감독은 뿌리깊은 구타와 체벌을 근절하고 선수들에게 이성교제, 음주, 두발 등에 ‘자유’를 허용하며 팀 분위기 개선에 앞장섰다.
SK 신인 강석훈(고려대 4)은 양 감독에 대해 “선수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분”이라며 “모든 선수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운동할 수 있게 해주셨다”고 설명한다. 권위보다는 대화를, 통제보다는 자율을 중시하는 양승호 감독의 리더십은 로이스터 3년을 거친 롯데 선수들에게 일부러 맞춘 옷처럼 잘 어울린다. 롯데의 ‘노 피어’는 내년 시즌에도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③ 원칙과 소신
로이스터 감독의 고집은 유명하다. 그는 선발투수가 초반에 흔들려도 최대한 5회 이상 버티게 했고, 중심타자가 부진해도 감각을 찾을 때까지 절대 타순에서 빼는 법이 없었다. 그 믿음은 종종 배신당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주 보답으로 돌아왔다. 이런 로이스터를 가리켜 롯데 전직 코치는 ‘고집불통’이란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렀다.
양승호 감독의 고집도 그에 못지않다. 양 감독은 고려대 부임과 함께 구타와 체벌 근절을 선언했다. 구타가 발생하면 때린 선수와 함께 자신도 감독직을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3년이 지난 지금, 구타와 체벌은 지금의 고려대에는 멸종된 생물처럼 사라진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양 감독은 ‘오전에는 수업, 오후에는 훈련’의 원칙도 고수했다. 상당수의 대학이 온종일 훈련을 하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달리, 고려대 야구부는 실제로 전원이 오전 수업을 빠짐없이 받고 있다. 여기에 다소 실력이 떨어지는 4학년이라도 대회에 골고루 출전시킴으로, 취업을 위한 최대한의 기회를 보장했다. 전국대회 성적이 곧 감독 목숨인 대학야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다.
양승호 감독의 원칙과 소신은 프로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극성스런 지역 팬들의 여론이 들끓어도,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이 있더라도, 양 감독이 쉽게 흔들리거나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집불통. 이는 좋은 롯데 감독이 되기 위한 최고의 자질이 아니던가.
글 : <야구라> 배지헌 (www.yagoora.net)야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