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관계자는 포인트가드 빅 3로 신한은행의 전주원(38)·삼성생명의 이미선(32)·신세계의 김지윤(34)을 꼽았다. 차세대 포인트 가드의 선두 주자 최윤아(25·신한은행)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의외였다. 가파른 성장세로 보면 최윤아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탄 선배들을 밀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최윤아는 2009년 5월 받은 왼 무릎 수술 후유증 탓에 23경기에만 출전했다. 뛸 수 없는 포인트가드의 칼 같은 패스는 소용이 없었다. 올 시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막 후 8경기까지 최윤아를 볼 수 없었다. 그는 왼 무릎 상태가 다시 악화돼 재활 중이었다.
부상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면 최윤아는 지금쯤 전주원에 근접하는 선수로 성장했을 것이다. 2008~2009시즌 어시스트 부문 4위(경기당 5.85개)로 정상급 포인트가드 반열에 올라선 최윤아였다. 평균 6개 가까운 어시스트를 올리는 선수는 리그 전체에서 2~3명에 불과하다. 5.85어시스트는 부문 1위 전주원의 기록에 약 1개 모자란 것이었다.
포인트 가드는 타고난다는 게 농구계 정설이다. 최윤아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인은 어떤 것 같냐”는 질문에는 “재능이 있었겠지만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될 순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최윤아는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매끄럽게 경기를 조율한다. 1m68㎝로 비교적 작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힘과 스피드로 극복했다. 최윤아의 부상은 악바리 같은 성격과 관련이 깊다. 그는 “어릴 때 잘하는 선수가 아니어서 아파도 참고 운동을 했다. 그게 쌓이고 쌓여 부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했다.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의 생각도 비슷했다. “독종이라 몸을 안 사린다”는 것이다.
“윤아는 6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팀 후배다. 시야가 넓고 코트 장악력이 뛰어나다. 공격과 수비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전주원이 생각하는 최윤아최윤아는 3일 삼성생명과 경기에 부상을 털고 올 시즌 처음으로 출전했다. 3라운드 복귀가 점쳐졌으나 재활이 순조로워 복귀가 앞당겨졌다. 최윤아는 “재활을 통해 시간은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다. ‘네가 안 아프고 농구하면 너무 잘할까봐 벌칙을 준 거’라며 다독여준 (하)은주 언니가 특히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부상 복귀 뒤 달라질 점이 있느냐는 질문엔 “욕심이 줄었다”고 했다. 욕심을 버리면 부상에서 자유로워진다.
최윤아에게 우승과 부상 방지 외에 다른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1초도 되지 않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로 만족해요. 그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고요.” 최윤아는 “둘 중 하나만 잃어도 올 시즌은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의지였다.
▶이경은이 최윤아에게
-언니는 왜 이렇게 어깨가 넓은 거죠.“집안 내력인데.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렇고 오빠까지 다들 한 어깨 하셔. 나도 원래 어깨가 넓었는데 프로 들어와 웨이트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더 벌어지더라. 수영 선수 아니냐는 말도 자주 들었어. 사복 입을 때 좀 안 좋긴 한데 농구에선 유리한 점도 있지. 몸싸움하거나 돌파할 때.”
-왜 언니가 없어서 아시안게임이 재미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내 질문을 바로 받아치니까 좀 서운한데(웃음). 질투나서 말한 거야. 나도 아시안게임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부상 때문에 못 갔잖아. 숙소에서 마음 졸이면서 경기를 다 지켜봤어. 너 잘하더라.”
-남자친구 있나요. 최근 소개팅은 언제 했나요.“없어. 소개팅은 해본 적도 없고. 소개팅 자체를 싫어해. 처음 보는 사람이랑 얘기하고 밥먹는 게 마음에 안 내키더라. 질문하는 거 보니 넌 소개팅 자주 하는구나.”
-신한은행에 뼈를 묻을 생각인가요. KDB생명으로 올 생각은 없나요.“그렇다고 얘기해야겠지. 난 우리 팀이 좋아. 2009년 자유계약선수(FA) 됐을 때 신한은행보다 돈을 더 줄테니 오라고 한 팀도 있었어. 그런데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잃고 싶지 않아서 남았지. 여기선 돈 주고 못 사는 것들을 배울 수 있거든. KDB생명은 네가 있는데 어떻게 가니.”
-저한테서 닮고 싶은 점이 있다면요.“스피드. 너가 나보다 더 빠르잖아. 또 어린 나이를 닮고 싶어. 2살 차이인데 그게 크더라. 예전에는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리는 게 낯 간지러웠는데 요즘은 괜히 듣고 싶어지는 거 있지.”
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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