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7관왕 이대호(29·롯데)도 졌다. 투수와의 수싸움이었다면 자신있게 맞붙었을 그였지만 논리 대결에는 고전할 수 밖에 없다. 그라운드에서만 싸워 온 이대호가 '문서'로 맞설 때는 조력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20일 연봉조정위에 참석한 조정위원들은 "이대호가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김종 야구발전위원장은 "야구 선수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 더 설득력있는 자료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대호가 제시한 자료는 이미 언론에 나온 것들 뿐이다. 연봉조정은 논리의 싸움이다. 확실한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니 이대호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7억원을 주장한 이대호는 '프로야구 사상 첫 타격 7관왕과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으로 인한 마케팅 효과, 이승엽이 6억3000만원을 받았던 2003년보다 현재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김종 위원장은 "이미 언론을 통해 제시된 자료다. 조정위를 설득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롯데는 '이대호가 팀내 최다실책을 기록한 점, 조성환·홍성흔 등 팀 동료들의 연봉 상승폭과 비교할 때 절대 부족한 액수가 아니라는 점'을 내세웠다. 박노준 SBS 해설위원은 "이대호를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그러나 롯데가 제시한 근거가 더 합당했다"고 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29·클리블랜드)의 소식을 들은 뒤라 이대호는 더욱 허탈했다. 추신수도 연봉조정신청을 했다. 클리블랜드와 추신수는 조정위로 가기 전에 구단과 지난 해보다 9배가 인상된 397만 5000달러(약 44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한 야구선수는 엇갈린 두 사례를 떠올리며 "에이전트 제도가 없는 것이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구단을 이길 수 있겠나. 일단 어떻게 자료를 준비해야할 지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이어 "미국 메이저리그는 물론, 대리인 제도가 도입된 축구가 부럽다. 솔직히 연봉협상에 들어갈 때 내가 잘 아는 축구선수의 에이전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협상 테이블에는 나 혼자 나가야하니 그 에이전트로부터 받은 조언을 활용하지 못하겠더라"고 덧붙였다. "이대호가 아닌, 그의 에이전트가 자료를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설득력이 조금은 더 생기지 않았을까." 구단과 맞선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늘어날 때마다 선수들은 '대리인 제도'를 떠올리고 있다.
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