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박주영(26·모나코)의 '스킨십 리더십'이 시작됐다.
박주영이 조광래팀의 주장으로 발탁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식사자리 재배치였다. 박주영은 터키와 평가전을 치르기 위해 8일 터키 트라브존에 도착한 뒤 첫 식사자리였던 이날 점심식사 때 주장의 권한을 발동해 일부 선수를 대상으로 앉을 자리를 지정해줬다.
차영일 대한축구협회 홍보국 대리는 "박주영이 식사시간 전 선수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일부 선수들이 앉을 자리를 정해줬다. 이전까지는 식사시간에 자유롭게 자리를 정하고 앉아 밥을 먹었다"고 전했다.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다. 박주영은 자신이 앉는 테이블에 팀의 막내뻘 후배들을 불러모았다. 손흥민(19·함부르크)·남태희(20·발랑시엔)·지동원(20·전남) 등이 박주영과 식사하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조광래 대표팀 감독의 조언이 박주영을 움직였다. 조 감독은 "주장이 됐다고 너무 부담을 갖지 마라. 먼저 식사자리를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박주영을 격려했다.
박주영이 후배를 자신의 테이블로 불러모은 건 스킨십을 위해서다. 박주영은 달변가다. 농담도 잘 한다. 다만 대표팀 밖으로 알려져 있지 않을뿐이다. 말 수 적은 박지성(30·맨유)이 조용한 카리스마를 과시했다면 박주영에겐 '스킨십 리더십'이 제격이다. 후배들과 장난도 잘 쳐 나이 차가 나더라도 격의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게 박주영의 장점이다. 수비수 홍철(21·성남)은 "작년 아시안게임 때 주영이 형을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해졌다. 대표팀에서도 주장을 잘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극도로 꺼리던 언론과 '스킨십'도 한결 원만해졌다. 박주영은 9일 터키전 공식인터뷰에 진지하게 임했다. 농담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주장이 된 뒤 (옛 주장인) 박지성으로부터 연락온 게 있느냐'는 질문에 "지성이 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며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의 얼굴 역할에도 소흘함이 없어야 한다. 당장 많은 게 바뀌지 않겠지만 영리한 선수다.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초보캡틴 박주영이 갈 길은 멀다. 후배들과 격의 없는 주장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표팀 관계자는 "적당한 권위는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주장으로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부담은 금물이다. 박주영은 9일(한국시간) 공식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경기를 앞두고 개인적인 준비만 하면 됐다. 하지만 주장이 된 뒤에는 팀 차원의 준비를 더 많이 한다. 예를 들어 경기 때 선수사이의 의사소통 문제, 벤치의 지시사항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며 바뀐 현실을 전했다. 영리한 박주영은 주장의 임무를 금세 파악했다. 하지만 주장이기 이전에 골을 넣어야 할 공격수다. 지나치게 팀 위주로 움직이다 골을 넣어야 할 박주영의 집중력이 흐트려질 수도 있다. 주위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다.
트라브존=장치혁 기자 [jangt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