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내 폼이 저래? 많이 낮아진 것도 같고…. 괜찮네!"
오릭스 이승엽(35)은 국내 사진기자의 노트북을 들여다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자신의 타격 사진들을 보며 미처 의식하지 못한 자세의 변화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승엽은 경산에서 훈련할 때 원핸드배트·노크배트·장대 등 다양한 길이의 방망이로 공을 때려봤다.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시도해 보고 싶은 게 많았다. 미야코지마 스프링캠프에서도 부활을 위한 '열쇠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을 보고 스스로 놀랄 만큼 낯설지만 처음 설정한 방향을 향해 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승엽이 지향하는 타격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역설의 타격폼'이라고 봐도 되겠다.
언밸런스 아닌 밸런스'언밸런스 스윙'은 이승엽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하체가 중심이동(오른발 스트라이드)을 하는 동안 상체는 꼭 붙들고 있는 것이다. 상·하체가 완전히 따로 놀 수 없는 만큼 상체도 어느 정도 앞으로 쏠리게 마련이지만 이승엽은 의식적으로 상체를 뒤에 잡아두고 있다. 마치 하체는 전진, 상체는 후진하는 것 같아서 언밸런스 스윙이다.
이는 이승엽 타격에서 혁신적인 변화다. 그는 국내 시절 전형적인 체중이동 스윙을 했다. 오른발을 높이 들어 체중을 이동하며 공에 파워를 실었다. 2004년 일본 진출 후에도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요미우리 시절엔 체중이동과 허리회전(제자리에서 허리 회전을 이용해 때리는 스윙)의 힘을 반반씩 섞은 듯한 타격을 했다. 그리고 2011년엔 체중이동보다는 허리회전력을 더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몸에 익히기 위해 언밸런스 스윙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상체를 뒤에 잡아 두는 건 이해되지만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한다. 이에 이승엽은 "다른 소리를 들으면 자꾸 헷갈린다. 오릭스 코칭스태프와 잘 상의해 폼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현재 이승엽의 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상체의 힘을 빼고 하체를 단단히 하려는 노력이다. 시즌이 시작되면 지금보다는 느슨할 수 있다. 현재는 조금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이승엽의 언밸런스 스윙은 결국 밸런스를 잡으려는 노력이다.
홈런왕 아닌 타격왕 이승엽의 새 스윙은 장효조 삼성 2군 수석코치의 조언으로 만들어졌다. 홈런왕 이승엽을 타격왕 장효조가 도운 셈으로, 이 또한 역설이다.
장 코치는 "콘택트 능력 높이기 위해 언밸런스 스윙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그가 이승엽에게 한 말들은 교타자에게 주로 강조하는 금언들이었다. ▶준비 자세 때 왼쪽 팔꿈치를 몸으로 붙이고 ▶방망이 헤드가 뒤쪽으로 향하도록 하며 ▶중심을 뒤에 두고 헤드업을 조심하라 등이다. 결국 정확한 타격을 강조하며 최소한 커트라도 할 수 있는 폼을 만들려 한 것이다. 배트 무게를 900g으로 줄인 것도 정확성 향상을 위해서다.
장 코치는 "승엽이에게 필요한 건 투스트라이크 이후 변화구에 삼진 당하지 않는 것이다. 크게 치기보다는 정확히 맞혀 타율을 높이다 보면 승엽이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장타도 나온다. 파워가 워낙 좋기 때문에 제대로 맞기만 하면 얼마든지 홈런을 때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직선 아닌 곡선현재로서는 성과가 좋다. 오카다 아키노부 오릭스 감독은 "지금까지 봐온 것 중 지금 이승엽 컨디션이 가장 좋다. (41홈런을 때린) 2006년보다 나은 것 같다"고 극찬했다. 이승엽의 표정을 봐도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는 미야코지마 훈련에서 커다란 타구를 펑펑 쏘아올리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라이너보다는 포물선형 타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승엽은 국내 시절 아름다운 곡선형 타구를 날렸다. 파워보다 부드러움이 실린 스윙 덕분에 타구의 종속이 쭉쭉 살아났다. 그러나 일본에 가서는 직선형 타구를 때리는 타자로 점차 변했다. 일본 투수들의 변화구를 받아치기 위해 몸을 키우고 스윙 폭을 줄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다. 특히 요미우리 시절 잡아당긴 타구는 대부분 직선이었다.
그러나 오릭스에서 날리는 타구는 예전처럼 높이 떠올라 쭉쭉 뻗는다. 방망이 끝에 걸린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좌측담장을 자주 넘어가기도 한다. ▶하체(중심)가 많이 낮아졌고 ▶배팅포인트가 약간 뒤로 간 데다 ▶다운스윙이 레벨스윙에 가깝게 변했기 때문이다. 임팩트 뒤에서 상체 회전이 완전히 이뤄지고, 양 어깨가 수평으로 이동하는 덕분에 예전의 아름다운 곡선 타구가 나오는 것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