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천(32·두산)이 돌아왔다. 그리고 왼손 타자들은 '꼼짝마라'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해인 2008년 좌타자들은 이혜천을 상대로 타율 1할9푼3리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에서 보낸 두 시즌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이혜천은 조금 더 큰 투수가 돼서 돌아왔다. 어떤 점일까. 그를 상대할 타자, 그리고 동료 왼손 투수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 부산상고(현 개성고) 시절 처음 봤을 때부터 투구폼이 와일드했다. 프로에서도 그 폼으로 꾸준히 활약했는데 어떻게 그런 폼이 만들어졌나. 폼을 바꿀 생각이나 권유를 받은 적 없나.(LG 서승화)"부산상고 때 이야기 왜 안 하나 했네.(대전고를 졸업한 서승화는 이혜천의 프로 입단 동기) 자연스레 몸에 맞는 폼이 만들어 진 거지. '폼을 바꾸라'는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어. 아마추어 때도 감독님들께 늘 '팔을 위로 올리라'고 야단을 맞았지. 하지만 난 고집이 센 편이야. 나한텐 이게 맞다는 확신이 있었어. 또 지시하는 대로 폼을 바꿔 던지니 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 지난 13일 시범경기에서 선배님과 맞대결을 했습니다. 투구폼이 예전처럼 와일드하진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키킹부터 다이나믹했는데. 일본 투수 코치들의 조언으로 폼을 바꾼건가요. 폼을 바꾼 이유와 바꾼 뒤 좋아진 점을 알고 싶습니다.(삼성 차우찬)"우찬이가 좋아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직접 보니 깜짝 놀랐어. 정말 좋은 투수가 됐더라고. 그건 그렇고 내가 특별히 폼을 수정한 건 아냐. 시범경기이니 40~50% 힘으로 던지는 거지. 그날은 제구 위주로 던지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좀 작아졌다고 할까.
정규시즌에 들어가서는 시범경기와는 다른 폼이 될지도 몰라. 일본 코치들도 처음엔 손을 많이 대려고 했지. 하지만 어느 순간 '저렇게 던져도 되는구나'라고 납득하는 것 같았어. 그 뒤론 폼에 대해 별 지적을 받진 않았지."
- 타자들에게 물어보니 혜천이 형이 마운드에 서 있으면 무섭다더군요. 왼손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투수 입장에서 부럽습니다. 그런 포스,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요.(롯데 강영식)"내 경우엔 투구 폼 때문인 것 같아. 왼팔 각도가 스리쿼터와 사이드암의 중간 정도지. 위가 아닌 옆에서 공이 나오다보니 타자 입장에선 등 뒤로 공이 날아올 듯할 느낌을 가지지. 나도 타격을 해 봐서 알지만 그 느낌은 무섭거든. 그리고 난 캐처 미트가 아니라 타자 무릎을 보고 던져. 몸쪽을 던지기 위해서지. 몸쪽 공을 잘 못 던지는 투수가 있잖아. 타자가 공에 맞을까봐 두려운 거지. 하지만 투수는 몸쪽을 던져야 해."
- 일본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언어? 음식? 그리고 일본 선수들이 실제 생각하는 한국 프로야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SK 김광현)"용병 신분이니 팀에 적응하는 게 어려워. 말도 제대로 안 통하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든 건 역시 플레이가 잘 안 될 때지. 나는 상대해야 할 타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어. 물론 선수 분석 자료는 주지. 분석원 수도 한국 구단보다 많고 데이터도 방대해. 하지만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잖아.
난 10타수 무안타로 누른 선수에게 4타수 4안타를 맞은 적도 있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타자는 다른 방식으로 타격을 해. 저 선수가 컨디션이 어떤지, 그때는 어떤 식으로 치는지를 모르니 답답했지. 일본은 너무 분석에 의존해 야구를 하는 것 같아. 그 때문에 오히려 힘들어하는 선수도 있어. 일본 선수들은 실제로 한국 야구를 높게 평가해. 두산 시절 경기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에 특히 감탄하더군. 연봉 수준이 높아선지 일본에선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많지 않아."
부산=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