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들 확실히 달라졌다. K-리그 사령탑들 말이다. 아저씨에서 미중년으로 변했다고 해야할까. 거듭된 고민과 줄담배로 홀아비 냄새가 풀풀 날 것 같던 이들에게서 이제는 쿨한 스킨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바뀌었다. 방금 샤워 후 수건으로 툭툭 털어 말린 것 같던 헤어스타일은 깔끔하게 정돈됐고, 트레이닝복 대신 말쑥한 수트를 입었다. TV중계화면에 잘 나오기 위해서는 화장품도 아끼지 않는다. 16명의 K-리그 사령탑. 이제는 패셔니스타가 될 준비를 마쳤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와 비교해 가장 환골탈태한 F4(Flower 4·꽃중년)의 변화를 소개한다. 최진한최진한(50) 경남 FC 감독은 지난해까지 정장을 입은 적이 거의 없다. 서울 2군 감독·전남,대구 코치 등을 역임하면서 트레이닝복만 입고 살았다. 하지만 경남 감독에 부임하고 나서는 정장을 네 벌이나 샀다. 깔끔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야 보기도 좋고 경기도 잘 풀릴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든든한 두 딸이 최 감독의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한다. 개막전 직전 함께 백화점에 가 경기에 입고 나갈 옷과 액세서리를 샀다.
홈 경기가 있을 때면 서울에서 경남 창원까지 내려와 아버지를 돕는다. 개막전에는 화장까지 해줬다. 선크림과 비비크림을 가져와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얼굴을 하얗게 변신시켰다. 최 감독은 "딸들이 'TV 중계화면에 잡히는데 까만 얼굴로 나오면 보기 안좋다'며 여러 가지 크림을 발라주더라. 이제야 '감독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이어 "여전히 정장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나보다는 박경훈(제주) 감독님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성효축구밖에 모르던 윤성효(49) 수원 삼성 감독이 패션에 눈을 뜬 건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단에서 실시한 화보 촬영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만져 준 머리와 옷 매무새에 대해 주변의 칭찬이 쏟아지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머리 손질은 1군 선수단 버스를 운전하는 한만재(37)씨에게 맡긴다. 윤 감독을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 방법을 별도로 배웠을 정도로 열성파라고.
화보 촬영을 계기로 윤 감독은 의상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눈을 떴다. 지난해부터 '노 타이' 제도를 시행 중인 삼성그룹 방침에 동참해 넥타이 없는 패션을 추구한다. 구단을 통해 제공받은 의상도 여러 벌 있지만, 최근에는 직접 옷을 고르며 '변신'을 즐기고 있다. 윤성효 감독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자꾸 하다 보니 적응이 되어간다"면서 "팬들에게 좀 더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지도자 이미지를 심고 싶다"고 말했다.
이수철상주는 삼백(三白)의 도시로 유명하다. 쌀·누에고치·곶감 세 가지 흰색 특산품이 유명해서다. 요즘 상주 시민들은 "이제는 사백(四白)이 됐다"며 웃는다. 백발의 이수철(45) 상주 상무 감독이 가세했다. 하얗고 긴 퍼머 머리는 이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 깔끔한 캐주얼 정장차림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난해까지는 코치직을 맡고 있어 그의 패션 센스가 트레이닝복 속에 감춰져있었다. 올해 사령탑에 오른 뒤엔 유감없이 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스타일리스트는 아내 이은주씨. 이씨는 "감독님은 양말 한 켤레 못사시는 분이다"며 웃는다. 아내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해 색감에는 자신이 있다.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색 등 밝은 색을 선호한다. 무난한 듯 보이면서 디테일이 살아있다면 금상첨화다. 인천과 K-리그 개막전에서 컬러 부분만 하얀 푸른색 셔츠를 입은 이유다.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이씨. "벨트와 구두도 신경을 좀 쓰는 편이다. 점잖으면서도 고급스러운 것이 사람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며 남다른 패션 철학을 과시했다.
안익수부산은 프로축구 출범 때부터 참가한 전통 깊은 팀이다. 안익수(46) 부산 아이파크 감독도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검정 정장을 입는다. 그리고 빨간색 넥타이를 맨다. 지난 시즌까지 FC서울에서 수석코치로 있었던 안 감독은 당시에는 선수들과 함께 뛴다는 생각에 트레이닝복을 선호했다.
그러나 안 감독은 "감독은 구단의 얼굴이다. 감독이 되고 나서 머리도 단정하게 깎았다. 검정 양복을 입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안 감독은 "사실 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다. 나는 경기력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 감독이 양복을 입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양복을 입는 것은 지원을 해주는 회사에 대한 예의다. 스폰서가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구단을 살찌우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구단의 얼굴인 감독이 불편함이 있더라도 스폰서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Tip…지난해만해도 K-리그 최고의 패셔니스타를 꼽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백발 신사' 박경훈(50) 제주 감독과 '젠틀맨' 최순호(49) 강원 FC 감독은 별명이 말해주듯 말쑥한 차림으로 화제를 모은다. 박 감독은 몸에 착 달라붙는 수트에 머플러 등 소품으로 한 껏 멋을 낸다. 제주를 상징하는 오랜지색 시계를 착용할 만큼 감각이 남다르다. 최신 트렌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올 해는 더블 재킷이 눈에 들어온다"고 답하는 센스의 소유자다. 최 감독의 패션은 과거 포항 사령탑을 맡았던 때부터 눈길을 끌었다. 분홍색 셔츠에 흰 면바지 그리고 맨발에 신은 구두. 지금도 충분히 세련되게 느껴질 이 차림이 지금부터 7년전 여름 그의 스타일이다. 훤칠한 키에 현역 시절 못지 않은 날렵한 몸매로 최고의 맵시를 자랑한다. 신세대 주자 중에는 신태용(41) 성남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사령탑답게 정장보다는 캐주얼을 선호한다.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는 셔츠, 풀린 단추 사이로 보이는 화려한 목걸이. 모델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