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는 한국프로야구 30주년이 되는 해로 매우 특별하다. 일본대지진과 방사능유출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은 연일 매진사례다. 한국인의 야구사랑도 이제 못 말릴 정도가 됐다.
나는 올해도 야구 구단주 대행이 됐다. 홀가분하게 순수한 야구팬으로 돌아가려했지만 뜻대로 되진 못했다. 아무래도 나와 야구의 인연은 생각보다 끈질긴 모양이다. 내가 처음 야구와 인연을 맺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다.
야구장도 없었던 시절. 지금은 철거된 동대문운동장에선 육상과 축구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은 대변신을 했다. 육상 때 쓰는 허들로 대충 야구장 모양을 만든 뒤 넘어가면 홈런이라며 좋아했다.
동대문 근방에 살던 나는 야구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했다. 그 시절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봤던 고교야구 결승전 경기다. 경남의 명문팀과 인천의 명문팀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경기만큼이나 관중석도 흥미진진했다. 팽팽한 경기로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는데 누군가 운 좋게 홈런볼을 잡았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기에 나도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내가 공을 잡았다! 홈런볼을 잡았다!”
그때였다. “어, 이 사람이 지금 뭐하는 거야!” 홈런볼 주인공은 갑자기 돌변해 한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알고 보니 하필 홈런볼을 잡는 순간 소매치기가 그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훔치다 딱 걸리고 만 것.
당시 만년필은 부의 상징이었고 꽤 비싼 물건이라 상황은 심각해졌다. 단번에 경찰이 들려오고 그 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관중들도 구름처럼 몰려와 소매치기를 보느라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때다 싶었는지 아이스케키 장수까지 나타나 불티나게 아이스케키를 팔아치웠다.
관중석은 난장판이었지만 경기는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경남과 인천의 자존심이 걸린 명승부였지만 승리는 인천에게 돌아갔다. 9회 말 인천의 승리가 확정되자 인천 쪽 벤치에서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라운드로 달려 나왔다.
“와!” 환호성은 요란했다. 관중들은 모두 인천팀의 승리를 축하했다. 하지만 나의 눈은 인천 선수들이 아닌 그라운드에 우두커니 서 있던 경남의 한 선수에게로 향했다. 그는 처음엔 약간 훌쩍이더니 이내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최선을 다해 싸운 고교선수의 눈물을 보고 있노라니 나까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 이후 고교야구하면 으레 그 선수의 눈물부터 떠올랐다. 과연 그는 어떤 선수가 됐을까. 눈물을 흘릴 만큼 승부욕이 강했던 선수는 고교졸업 후 모 실업야구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조용히 은퇴했다고 한다.
지금쯤 돌아가셨거나 초로의 노인이 되었을 그 선수.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프로야구의 힘은 바로 그때의 고교야구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내가 구단주대행으로 있는 팀 경기에 그분들을 꼭 모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