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크란츠라는 4할 타자가 있었는데
정말 독특한 스탠스를 가졌어
그런데 코치에게 교정을 받고서
이제 그의 폼은 완벽해졌어
그러나 그는 공을 맞히지도 못하는 타자가 돼버렸어
* 미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작자 미상의 시(詩)로 선수 지도와 관련해 큰 의미를 던진다. 원문은 “There once was a 400 hitter named Krantz, Who had a most unusual stance. But with the coaches correction, his form is now perfection, But he can't hit the seat of his pants.”
야구에서 타자와 투수의 폼은 똑같은 지문을 가진 이가 없는 것처럼 제각각이다. 가령 3할 타율을 밥 먹듯이 하는 타자와 똑같은 타격 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3할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타자 개인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이며 ‘타격의 신’으로 불리는 테드 윌리엄스가 “스포츠 중에서 타격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푸념한 것도 빈말은 아니다.
이른바 교과서적인 타격폼(혹은, 투수폼)이 있지만 메커니즘에 결점이 있다고 해도 뛰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가 적지 않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타격 코치였던 야마우치 가즈히로 전 주니치 감독은 “3할 타자는 손댈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뛰어난 타자의 기준인 3할을 친다면 타격 폼이 엉성하거나 당겨치기 일변도라는 단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선수 시절 독특한 타격 폼을 자랑한 김민호 부산고 감독도 같은 견해다. “타격에서 중요한 것은 폼이 아니다. 예비 동작은 예방 동작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파워 포지션에 얼마나 정확한 자세로 가느냐, 그리고 이 포지션에서 얼마나 짧게 끌고 나가느냐이다. 삼성에서도 뛴 훌리오 프랑코나 박정태 등이 폼은 이상하지만 타율 3할을 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만약 타격 자세 등을 고쳐야 한다면 아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광환 서울대 감독이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에 야구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한 마이너리그의 타자가 타격 연습을 하는데 잠깐 봐도 결점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옆에서 함께 보고 있는 미국인 코치는 아무 말 않고 계속해서 타자를 바라봤다. 이 감독이 답답해서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미국인 코치는 고개를 끄떡이며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당신 말이 맞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선수의 장점을 찾고 있다.”
선수를 지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자의 능력과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 장점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선하는 것이다. 올 시즌 김강민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좋은 활약을 펼치는 SK 임훈이 그 좋은 사례다. 지난해 임훈은 아주 독특한 타격 폼으로 주목을 받았다. 타격할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고개가 섰다가 스윙했다. 지도자라면 누구나 고치고 싶은 타격 폼이었다. 그러나 김성근 SK 감독은 잠자코 지켜보며 다른 코치들에게도 건들지 말라고 지시했다. 히팅포인트가 좋은데 성급하게 손을 댔다가 장점도 사라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시간을 갖고 타격 폼을 일부 수정했고, 그것이 지금의 활약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도자 자신의 이론을 선수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선수 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수정함으로써 타자의 자질을 발전시킨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선수 육성에 뛰어난 지도자로 손꼽히는 이유다. 이것은 투수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윤석환 두산 투수코치는 “폼이 나빠도 일단 시간을 갖고 지켜본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장점을 살려서 수정하는 게 내 지도방식”이라면서 “코치의 지나친 의욕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능 있는 선수라고 영입했는데 급하게 단점을 수정하다가는 역효과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선수의 투구 폼 등을 변경할 때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단점이 명확해도 선수 자신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내를 가지고 선수에게 다가가야 한다. 선수 자신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문희수 동강대 감독의 지론이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는 법이다. 선수 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수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깨달았을 때 조언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선수가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 그래서 “명지도자는 기술을 잘 가르치는 이가 아니라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야구라> 손윤 (http://yagoo.tistory.com/)
야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