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구 총재의 구속은 KBO가 '낙하산 움직임'에 맞서가며 이뤄냈던 민선 총재 체제의 좌초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 크다.
과거 KBO 총재들은 박용오 전 총재(12~14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권에서 내정한 '낙하산' 인사였다. 1998년 8개 구단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박용오 전 총재를 추대하며 기틀을 마련했던 민선총재 체제가 2006년 정치권 인사인 신상우 15대 총재의 취임으로 깨지자 야구계에서는 반발 목소리를 높였다.
신상우 전 총재 역시 임기말 개인비리로 흔들리자 야구계는 정치권에 반격을 가했다. 친 야구계 인사이던 유영구 당시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총재 후보로 추대하며 정치권 개입을 사전 차단하려 했다. 총재 승인권을 갖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불쾌감을 나타내며 사전 조율하던 관행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승인 요청을 한때 거부하기도 했다.
유영구 총재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지만 KBO 이사회는 민선총재 체제 회복에 대한 강렬한 의지로 재추대해서 결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냈다. 야구계의 강력한 지지로 16대 수장에 취임한 유영구 총재는 무보수로 헌신하겠다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힘들게 되찾은 민선총재 체제였던 만큼 야심차게 출발했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의 쾌거를 이뤘고 한 시즌 최다관중 기록(592만5285명)을 경신하며 야구흥행에 불을 당겼다. 지난해에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최다관중 기록 재경신(592만8626명)으로 내실을 다졌다.
또 유소년 야구 지원과 낙후된 지방구장 개선에 앞장서 광주구장과 대구구장의 신축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최근 엔씨소프트의 9구단 창단이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창원시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 냈고 기존 구단들의 입장차를 잘 조율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명지학원 이사장 시절 개인 비위 혐의에 대한 수사로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9구단 창단 매진으로 만회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민선총재 시스템에도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