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엘리자베스2세컵에 출전한 말들이 결승선 직전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를 펼치고 있다. 샤틴경마장(홍콩)=채준 기자 퀸엘리자베스2세컵에 출전한 말들이 결승선 직전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를 펼치고 있다. 샤틴경마장(홍콩)=채준 기자
1일 홍콩 샤틴경마장. 5만여명의 경마팬들이 운집한 가운데 홍콩에서 인기있는 경주인 ‘퀸엘리자베스2세컵’ 경주(GI)가 막을 열렸다. 홍콩 경마팬들은 이날 하루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 환한 표정으로 경마를 즐겼다. 경마장에는 다양한 고객층이 몰렸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3대가 함께 온 가족·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모임도 있었다.
매 경주가 끝나면 곧바로 시상식이 열렸는데 팬들은 우승마와 기수·마주의 세리머니에 큰 박수로 화답했다. 도시국가 홍콩에서 경마는 국민레저다. 인구의 60%가 경마를 하고 성인남자 중 90%가 경마팬이다. 국내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홍콩경마와 한국경마가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은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자키클럽의 적극적인 사회공헌 한국경마의 운영주체는 KRA한국마사회지만 홍콩경마는 비영리단체인 자키클럽이 주도한다. 자키클럽은 1만2500명의 회원 중에서 선출된 이사회와 최고경영자에 의해 운영된다. 자키클럽의 자산규모는 2조원이 훨씬 넘으며 매년 12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홍콩거리를 걷다보면 말발굽을 형상화한 자키클럽 로고가 붙어있는 건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건물들은 자키클럽이 자금을 출현해 세워진 건물들이다. 홍콩과학기술대·홍콩대·중문대·오스트리아국제학교·퀸엘리자베스정부병원·오션파크 등이 모두 자키클럽의 지원으로 세워졌다. 또 관공서 건물의 30%에도 자키클럽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1886년 출범한 자키클럽은 12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오랜 시간 동안 경마 수익을 홍콩 사람들을 위해 적극 투자했다. 이로인해 경마의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부각됐고, 마주들은 홍콩에서 최고의 사회지도층으로 대접받고 있다.
▲팬들을 위한 경마, 손해 보는 마주 경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는데 앞장 선 것은 자키클럽의 마주회원들이다. 자키클럽은 일반회원·경마회원(5000명)·마주회원(850명)으로 나뉜다. 홍콩의 환급율은 83%로 한국(73%)보다 10%나 높다. 홍콩경마를 운영하는 자키클럽은 팬들에게 더 많은 돈을 돌려줘야 경마가 건전해진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매 경주 한 개의 승식에 1000홍콩달러(13만8000원)를 베팅했을 경우, 미적중 마권에 대해 베팅금액의 10%를 환불해 주는 손실보존제를 도입했다.
홍콩은 인구가 600만명에 불과하지만 마권 매출규모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다. 2개의 경마장(샤틴경마장, 해피밸리경마장)과 126개의 장외발매소가 있다. 적은 인구에 세계 3위의 매출규모를 이루다보니 고객 일인 당 베팅액수와 경마장 당 베팅금액은 세계 1위다.
매출규모가 높지만 정작 마주들은 손해를 상당한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홍콩 마주들은 경주마를 최대 3마리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주마들이 3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고가지만 한 경주도 못 뛰고 퇴출 되는 경주마도 있다. 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새 경주마를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다. 경주마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추첨을 해야 한다. 경주마 구입 추첨은 보통 3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마주에게 불리한 규정을 마주들이 소속돼 있는 자키클럽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팬들의 믿음, 경마는 기부활동 홍콩경마 팬들도 경주마가 4코너를 돌면 술렁거리고, 결승선 100m를 앞둔 시점부터는 함성을 지른다. 경주가 끝난 다음에는 아쉬운 한숨과 욕설도 들린다.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 경마장 분위기와 흡사하다.
하지만 팬들은 한숨은 오래가지 않는다. 팬들이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경마를 통해 잃은 돈이 다시 자신을 위해 쓰인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경마를 하는 것 자체가 기부활동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