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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미스터리Q] 222. 4.3사건 구명시식
천석꾼은 천 가지를 걱정하고 만석꾼은 만 가지를 걱정한다. 노숙자는 오늘만 걱정하지만 부자는 주식도 걱정이고 세금도 걱정이다. 다른 사람은 자기 영혼 하나만 걱정이지만 나 같은 사람은 내 영혼뿐 아니라 다른 사람 영혼들까지 걱정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구명시식을 피한 적은 없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피하고 싶은 구명시식도 있다.
만25년 동안 이상하게 하지 못했던 구명시식이 있다. 바로 제주도 4.3사건 구명시식이다. 강제 징용 피해자 영가들, 빨치산 영가들, 6.25전쟁 때 참혹하게 죽은 민간인 영가들까지 억울하게 돌아가신 수많은 영가들을 구명시식했지만 제주도 4.3사건 피해자 영가 구명시식만큼은 몇 번을 보류했는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주도 4.3사건 피해자 영가처럼 한 맺힌 영가들을 본 적이 없었다. 4.3사건은 10.19 여수사건을 촉발한 사건으로 해방정국 좌우익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줬으며 더 나아가 6.25전쟁의 시발점이 됐던 참혹한 사건이었다.
그래서일까. 4.3사건 피해자 영가들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다. 사건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정다운 우리네 이웃이었으며, 동네 형이었고,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였다. 그런 그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아침에 대나무 죽창에, 총탄에, 농기구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으니 한 또한 매우 깊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제주도 분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러나 4.3사건 피해자 영가들을 위한 구명시식만큼은 자꾸 미뤄졌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올라온 부부가 구명시식을 청했다. 단순히 가족령을 위한 구명시식이라 생각했는데 구명시식 전날 영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다름 아닌 4.3사건 피해자 영가가 아닌가.
이제와 구명시식을 못하겠다고 할 수 없고 정말 난감했다. 그런데 구명시식 당일 때마침 낙뢰에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쾌재였다. 이대로 쭉 비가 내려 제주도발 김포행 비행기가 안뜨길 바랬다. '만약 비행기가 뜨면 4.3사건 구명시식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요, 비행기가 안 뜨면 구명시식을 접자.'
그때였다. '따르릉.' 제주도 부부의 전화였다. "법사님, 기적적으로 비행기가 딱 한 대 뜬답니다.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순간 나는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25년 구명시식 역사상 최초로 올리는 제주도 4.3사건 구명시식이었다.
그날 밤,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번개가 쳤다고 한다. 여름이 아닌 봄에 무려 4만 9000번 이상의 번개가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을까. 제주도 4.3사건의 내막이 구명시식을 통해 밝혀졌지만 영원한 비밀로 함구됐다. 하늘은 낙뢰와 함께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제주도 4.3사건 구명시식을 드디어 하게 된 것은 좌우익 대립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 말인즉, 우리에게 통일이 머지않았다는 뜻. 몽고와 제주도는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모이면 갈라지고, 갈라지면 다시 모인다. 제주 4.3사건이 발생한지 한 갑자가 넘었다. 이제 다시 돌아와 모일 때가 아닌가 싶다.
선친 차일혁 총경이 작사한 '학도병가' 중 '해도 하나 달도 하나 사랑도 하나/나라 위해 바친 목숨 그도 하나이건만/하물며 조국이 둘이 있을까보냐/길이 막혀 못가나 산이 높아 못가나/백두에서 한라까지 강물은 흐르네'라는 가사가 있다. 이번 구명시식으로 이 가사가 곧 현실이 되는 큰 이벤트가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