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우수한 지원자들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터져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 홍수 속에 '쓸만한' 지원자들이 분산됐거나 특정 프로그램에만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 어떤 지원자가 나오는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격상 치명적인 일이다. 결국 프로그램 제작진 입장에서는 우수 지원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천문학적 액수의 상금과 부상을 내걸며 해외까지 눈을 돌리는 건 기본이고 발품을 팔며 인맥을 총동원하는 등 직접 섭외에 나서기까지 한다.
▶유사 프로그램에 지원자 뺏기고 '중고신인' 발탁까지지난달 27일 시즌1을 끝낸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은 우수 지원자 확보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광고수익 등 외면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혹평을 받고 있다. 방송중 보여준 연이은 시행착오와 미숙한 진행, 치밀하지 못한 심사과정 중 여러가지 지적사항이 나왔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별 볼일 없는' 지원자들의 실력이었다. '감동적인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실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지 못하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일. 그나마 스타성 있는 지원자들을 살려둘 수 있는 시스템도 미처 마련하지 못해 긴장감없는 '학예회' 수준의 프로그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시즌2의 지원자 모집을 시작했지만 지난해 큰 성공을 거둔 Mnet '슈퍼스타K' 시즌 3와 일정이 겹쳐 난항을 겪고 있다. 한창 예선을 진행중인 '슈퍼스타K'가 우수 지원자들을 골라낸 후 여기서 떨어진 이들이 '위대한 탄생' 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유사성격의 프로그램인 만큼 '위대한 탄생'에 절대 불리한 조건이라는 지적이다.
예선이 진행중인 연기자 선발 프로그램 SBS '기적의 오디션'은 우수 지원자 확보를 위해 유명 연기학원 및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신인급 연기자들에게도 참가기회를 줬다. 아예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초짜'들만 데리고 방송을 진행하기에는 긴장감이 너무 떨어지고 프로그램의 재미도 살릴 수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 하지만, 이 때문에 공정성논란이 불거져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지역예선 현장에서 연기학원 강사들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강사들이 심사에 관여해 자기 제자들을 통과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연예기획사 소속 신인들도 논란의 대상이다. 본선에 진출해 우승후보가 되더라도 '소속사의 뒷받침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적의 오디션'의 한 관계자는 "연기 경험이 있는 연예기획사 소속 신인들의 경우 오히려 '너무 정형화된 연기'를 보여줘 탈락하는 사례가 많다. 심사위원들이 워낙 날카롭게 평가하고 있어 혹시 인맥이 있다고 해도 쉽게 통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면서 "'순수한 오디션'을 추구하기 위해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일반인들만 참가시키기에는 위험수가 너무 많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폭넓게 지원자들을 모집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지원자 기다리기보다 직접 섭외에 나서6월 방송예정인 KBS 2TV '밴드서바이벌-톱밴드'는 아마추어 밴드를 대상으로 한다. 제작진은 애초부터 이야깃거리와 실력을 두루 갖춘 팀을 찾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참가자 모집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밴드가 모였지만 무작정 지원자들만 믿고 있기엔 불안했기 때문. 막상 지원한 팀들 중에서는 '심각한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밴드가 너무 많아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는 한 인디밴드의 멤버는 "'톱밴드' 측에서 우리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우리 뿐 아니라 홍대에서 어느 정도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실력파 밴드를 섭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아마추어 밴드의 수는 많지만 그중 '봐줄만한' 실력을 갖춘 팀은 흔치 않다. 프로그램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기존에 활동중인 밴드를 섭외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면서 "십센치 같은 인기밴드로 발전할만한 원석을 찾아내려면 결국 제작진이 직접 발벗고 나서 찾아내고 섭외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측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래나 춤 뿐 아니라 다양한 장기를 가진 지원자들을 모아 감동과 재미를 주겠다는 게 애초의 계획. 하지만, 지원자 대부분이 '가장 흔한' 노래만 불러 문제가 됐다.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에 나갈만큼 젊거나 스타성을 갖추진 못해도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면 말이 되지만 대다수가 '장기자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심사위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 대단할 것 없는 장기를 들고 나와 '어려웠던 환경'에 대한 이야기만 부각시키려는 지원자들도 문제였다. 그나마 눈에 띄는 장기를 보여주는 지원자들은 SBS '스타킹'에서 한차례 화제가 됐던 인물들이 많아 제작진을 고민에 빠트렸다는 후문이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유사 성격의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다보니 우수한 지원자들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지원자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제작진이 우수한 인재를 찾아 섭외하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면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희소성과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면서 "해외까지 눈을 돌리고 거액의 상금을 내거는 등 과열경쟁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결국 2~3년 안에 대다수 프로그램은 제작이 중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
사진=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