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일까 억지일까. 텍사스 중심타자 조시 해밀턴(29)이 '블루아이 타격부진론'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해밀턴은 24일(이하 한국시간) ESPN과 인터뷰에서 "나의 밤·낮 경기 타율 차이는 눈 색깔 때문이다. 많은 선수들에게 물어본 결과 파란 눈 선수들이 유독 낮 경기에 약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공을 보려고 해도 파란 눈에는 햇빛에 공의 하얀 색이 반사돼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밀턴은 아메리칸리그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했던 2008년부터 아메리칸리그 MVP를 차지했던 지난해까지 3년 동안 밤 경기에서 3할3푼을 쳤다. 낮 경기 타율은 2할6푼9리에 불과했다. 6푼1리 차이. 올해는 이 차이가 더 심하다. 밤에는 3할7푼6리의 맹타를 휘두르다가도 낮 경기에만 나서면 1할2푼2리 빈타에 허덕인다. 웬만한 타자의 타율인 2할5푼4리 차이다.
해밀튼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2003년 라섹수술 후 밤 경기에서 공이 번져 보이는 부작용을 겪었던 심정수의 경우다. 2003년 3할3푼5리 53홈런을 기록하며 '헤라클레스'로 불렸던 심정수는 시즌 종료 후 라섹수술을 받았다. 당시 심정수의 시력은 좌 0.7, 우 0.8로 나쁘지 않았지만 난시가 심해 야간 경기 때 조명탑 불빛에 공이 흔들려 보였던 것.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받은 라섹수술이 오히려 심정수의 발목을 잡았다. 2004년 심정수의 성적은 2할5푼6리 22홈런이었고, 라섹수술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안경을 바꿔 착용하며 나서면서 타격감은 3년 동안 바닥을 쳤다. 고질적인 무릎과 어깨 부상도 부진의 이유가 됐지만 라섹수술 후유증이 간과할 수 없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매의 눈'을 필요로 하는 타자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심정수는 2007년 주황색 특수 선글라스를 쓰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스스로 "이제 공의 회전이 보인다"고 말했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뒤 한 달 동안 10개의 홈런을 쳤다. 결과는 생애 첫 홈런왕(31개).
해밀턴이 선글라스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난해 선글라스를 쓰고 효과를 봤던 해밀턴은 올해도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규정상 타석에서는 쓸 수 없지만, 더그아웃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눈의 피로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분당 서울대병원 안과 각막전임 한상범 전문의는 "홍채색깔에 따라 눈이 빛을 덜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밀턴의 '블루아이 타격부진론'은 의학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심정수의 경우 "라섹수술 후 일시적으로 밤에 물체가 번져보이는 현상은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선의 기자 [sunny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