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안방극장이 '남자 배우 기근현상'으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수준급 남자 배우들이 종합편성채널의 개국 특집 드라마로 몰린데다, 한창 연기에 물 오른 배우들이 군입대해 '쓸 만한 자원이 없다'는 이야기가 공통된 의견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기력과 흥행성이 검증된 배우를 캐스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연기 경험이 있는 아이돌 가수와 영화 출연 소식이 뜸한 영화배우의 캐스팅이 남은 카드. 최근 방송국과 드라마 제작사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는 '남자 배우 기근현상'을 살펴봤다.
▶종편 개국 특집 드라마를 잡아라. A급 남자 배우의 종편행도 '남자 배우 기근현상'의 한 원인이다. 12월 첫 방송을 예정한 개국 특집 드라마에 캐스팅된 남자 배우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TV조선의 특집극 '한반도'는 황정민을 '스피드'는 유아인의 출연을 일찌감치 점찍었다. jTBC는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에 정우성과 김범을 동반 캐스팅했다. '발효가족'은 박진희의 짝으로 송일국의 출연을 확정했다.
기존 지상파 3사도 종편 특집극에 맞불을 놓기 위해 종편 개국일보다, 1~2개월 앞서 미니시리즈를 론칭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이 과정도 순조롭지는 않았다. 탤런트 이상윤은 KBS 2TV '브레인' 주인공으로 내정되고 대본 리딩까지 마쳤지만 출연이 백지화됐다. 제작사는 이상윤의 나이와 배역이 맞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송승헌이 출연을 조율 중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종편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이상윤으로는 시청률을 끌어오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내년 1월 첫 방송을 앞둔 지상파 3사의 드라마 캐스팅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1월 방송하는 3사 6개 미니시리즈 모두 캐스팅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종편행을 확정한 한 남자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종편이라고 해서 조건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드라마 제작 환경도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단지 연기자에게는 새로운 도전일 수 있고, 소속사로서는 개국작을 해서 어느 정도 선점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최근 종편 드라마 출연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밝혔다.
▶한 명 제대하면 한 명 입대하고. 현빈이도 가고 동원이도 가고….
현빈·강동원·이준기·김남길·이동건·이완 등 한창 연기에 물오른 남자 배우들의 군 입대도 '남자 배우 기근현상'에 한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이 현상이 극에 이른 것을 두고 '한국 드라마의 불황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 수출이 지난 몇 년간 이어지면서 스타들도 군 입대를 미뤄왔다. 하지만 최근 한류가 배우에서 가수로 넘어가고 드라마 수출이 주춤하면서 남자 배우들도 입대시기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펼쳐온 1980~1982년생 배우들의 군 입대가 이어진 것도 이유가 된다.
82년생의 경우 학업 등을 이유로 입대를 미뤘지만 입대 연령 제한에 때문에 더 이상은 연기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스타가 오는 10월 11일 입대를 결정한 가수 겸 배우 정지훈. 영화 '비상: 태양가까이'를 마지막으로 의정부 306보충대에 현역 입대할 예정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연기가 가능한 배우는 현재 2~3명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군 입대를 했거나, 예정이다. 조인성이 좋은 예다. 군제대 후 러브콜이 쏟아지는 것도 그만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제대한 스타들이 빈자리를 메워줘야 하는데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컴백을 원하는 것도 기근현상에 한 몫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주 제작사 배우 캐스팅에 골병든다. 최근 만난 한 방송사 관계자는 외주 제작사 선정과 관련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는 "최근 캐스팅 작업이 점점 어려워져, 방송국 입장에서는 제작 능력에 문제가 있더라도 캐스팅 잘하는 제작사를 덮어놓고 1등으로 친다"고 밝혔다. 캐스팅이 분명 제작사의 능력이지만 그것만 고려하다보니, 질 낮은 드라마들이 연쇄적으로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제작사는 최근 제작한 미니시리즈 2편이 연속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굴욕을 맛봤다. 하지만 한류스타 등 A급 스타들을 척척 캐스팅해오며, 방송가에서는 여전이 큰 소리 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A급 배우만 캐스팅하면 인정받는 분위기다.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도 그 때 뿐이다. 다시 스타를 캐스팅 해오면 편성을 내주는 것이 현실이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지상파에서 외주로 이적했던 스타 PD들이 장벽이 높은 지상파 대신 종편과 손을 잡는 것도 이유다. 이들이 최근 종편과 계약하면서 배우들도 PD를 따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엄동진 기자 [kjseven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