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의 선택이 그의 운명을 바꿔놨다. "그때 택시에 집 열쇠를 놓고 내리지 않았더라면…"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 이영호(32)의 이야기다. 그는 2003년 아파트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려다 추락해 허리를 크게 다쳤다. 하반신 마비 선고를 받고 삶을 포기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신나는 음악과 절도있는 춤 동작이 그의 삶을 다시 일으켜세웠다. 재활에 집중하던 2005년 우연한 기회에 휠체어 댄스스포츠를 보고 매력에 빠져 선수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2010년 세계 4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는 "댄스스포츠는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라면서도 "이제는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고 깜짝 발언을 했다. 이영호는 16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자신의 인생을 덤덤하게 털어놨다.
-장애인 선수들에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언제 다쳤는지 묻는 건가. 2003년이다. 택시에 집 열쇠를 놓고 내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방서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는데 도와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운동신경을 믿고 아파트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려다 추락했다. 6층이었다."
-크게 다쳤나.
"허리 뼈가 많이 부서졌다. 병원에서는 휠체어도 못 탄다고 했다. 거의 포기 상태였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해서일까. 기적적으로 회복해 휠체어를 탈 정도가 됐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지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왜 휠체어 댄스스포츠였나.
"2005년 재활 도중 우연한 기회에 휠체어 댄스스포츠라는 종목을 봤다.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흥이 났다.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바뀌었다. 너무 멋있어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나는 중학교 때까지 역도 선수였다. 당시 연령별 신기록도 세울 정도로 잘나갔다. 이후 권투로 전향해 운동을 이어갔다. 격한 운동만 하다 보니 댄스스포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스포츠로 분류하는 것조차 웃겼다. 그랬던 내가 이제 댄스스포츠 선수다."
-일반인과 함께하는 장애인 스포츠다. 특별한 점이 많다.
"파트너가 가장 중요한 운동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이라 더욱 그렇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완벽한 춤을 보여줄 수 없다."
휠체어 댄스스포츠는 하반신을 다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춤을 추는 경기다. 진정한 '어울림'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각 시·도마다 연맹 단체가 있을 정도로 활성화 돼 있다.
-파트너와는 이은지(23)와는 어떻게 만났나.
"5년 전에 처음 봤다. (이)은지가 고등학교 때였다. 너무 어른스러운 친구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없고 게으름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다. 2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듬직하다. 몸무게가 40kg대인 여성이 나를 번쩍 들어 계단 위로 올리는 걸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도 될 정도다."
-고마움이 크겠다.
"그렇다. 은지가 나를 잘 이해해줬다. 은지 아버지도 다리가 약간 불편하시다. 그래서인지 나를 더 배려한다. 5년 동안 참 힘들었는데 잘 버텨줘서 고맙다."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일반인과 함께.
"자주 다친다. 특히 일반인 선수의 발이 휠체어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참고 견디는 팀이 더 잘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높이가 달라 힘들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종목이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앞두고 있다.
"2007년부터 우승을 한 대회다. 특별한 느낌은 없지만 춤을 춘다는 건 언제나 설렌다. 하루에 5시간 넘게 훈련을 했다. 이번에도 꼭 우승을 하겠다."
-세계 4위까지 올랐다.
"2010년 독일 하노버 휠체어 댄스스포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세계정상권에 와 있더라. 2005년 댄스스포츠를 처음 시작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영호와 이은지는 '라틴 5종목'에서 세계 정상권 실력을 지녔다. 라틴 5종목은 차차·룸바·삼바·파소도블레·자이브로 이뤄졌다. 둘은 아시아에서는 이미 최정상이고, 유럽 선수와도 대등한 경기를 펼친다.
-최종 꿈이 있나.
"미안하지만 없다."
-무슨 뜻인가.
"내년 세계대회 이후로 은퇴를 생각 중이다.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 수입이 없으니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수입이 없나.
"0원이다. 의상과 대회용 휠체어 모두 내 돈으로 구입한다. 의상이 300만원 정도고, 휠체어는 500만원이 넘는다. 빚을 내서 대회에 참가한다. 이제 한계가 온것 같다."
-남은 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볼 계획이다. 방법이 없다면 댄스스포츠를 그만두고 직장을 구할 계획이다. 가장 사랑하는 댄스 스포츠를 떠나야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