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라줘서 고마워요.” 17년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젖먹이 아들을 떠난 엄마의 절절한 심정을 꾹꾹 눌러 담은 한마디. 완득 엄마를 연기한 이자스민의 차분한 내레이션은 조용하게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다. “저도 완득이 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완득 엄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사실 이자스민의 본업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서울시청에서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을 담당하고 있어요.” 우연히 다문화가정의 생활을 조명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고정 패널이 됐고, 그 뒤 다문화가정 교육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문 강연자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G20 정상회의 기념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 릴레이 강연에서 ‘다문화가 한국의 힘이다’라는 주제로 연단에 선 경험도 있다. 바쁜 직장생활 중에 쏟아지는 강연 일정 소화하기에도 빠듯하지만, “불러주시면 언제라도!”라며 은근히 연기 욕심을 낸다. 그녀의 욕심엔 큰 뜻이 숨어 있다.
-영화에 출연하기 전부터도 유명인이셨잖아요. <의형제> 에 출연한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의형제>
정말 우연이었어요. <의형제> 에는 처음에 캐스팅 담당자로 참여했어요. <의형제> 에 ‘베트남 신부’로 출연할 배우를 찾아야 하는데, 대사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결국엔 제작진이 “이자스민 씨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제안하셔서 얼결에 출연했죠.(웃음) <완득이> 도 <의형제> 제작진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게 됐고요. 사실 <완득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내가 이 역할을 해도 될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완득이 엄마가 젖먹이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가는 설정이잖아요.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거든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차마 아이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인내하면서 사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에요. 자칫하면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에 대한 나쁜 인식, 편견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완득이> 의 결론이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내용이라서 출연을 결심했죠.
- <완득이> 를 본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은데요. 완득이>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딸이 속삭이더라고요. “엄마, 오빠 울더라.”(웃음) 나중에 아들에게 물으니까, “발 연기할까 봐 걱정했는데, 잘했어”라고 쿨하게 대답하던데요?(웃음)
-필리핀 미인대회 수상자였고, 대학에서는 의학을 전공했다면서요. 혹시 연기 경력도 있나요?
아, 그거요.(웃음) 제가 ‘미스 필리핀’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오보예요. 미스 필리핀 후보를 뽑는 지역 예선에서 3등한 게 전부고요.(웃음) 필리핀 국립대학 의학과를 다니다가 남편과 사랑에 빠져서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했어요. 첫 아이를 낳고 다시 복학하려고 했는데, 결국 졸업은 못했죠. 학업보다는 가정이 더 소중했으니까요. 연기 경력은 없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음악에 빠져서 잠시 밴드 보컬로 활동했던 경험은 있어요.
-시청 공무원으로서 배우 활동을 병행하는 게 어렵진 않나요?
시청에서도 연기 활동을 많이 응원해 주세요. 연기를 하면서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됐어요. <완득이> 에서 나온 대사처럼 다문화 가정의 엄마들도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요. 제가 영화에도 출연하고, 강연회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저보다 더 능력 있는 여성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어요.
-은근한 연기 욕심이 느껴지는데요?
하하하. 네. 언젠가는 당당하고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사실 ‘다문화’라는 단어 안에 은근히 차별적인 의미가 있어요. 피부색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때가 온다면, ‘다문화’라는 단어조차 필요 없겠죠. 영화에서 먼저 그런 멋진 사회를 보여준다면 좋겠네요.
무비위크 박혜은 기자 글·사진=무비위크 제공 완득이> 완득이> 완득이> 의형제> 완득이> 의형제>의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