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37)이 자신을 대중적으로 처음 알린 건 2005년 드라마 '쾌걸 춘향'이었다. 성춘향과 이몽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코믹하게 해석한 작품이었다. 한채영과 재희가 각각 성춘향과 이몽룡을 맡았다. 엄태웅은 변학도였다. 그러나 그가 연기한 변학도는 원작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직업이 연예기획사 사장으로, 냉혈한이지만 춘향에게만큼은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매섭고 냉정해도 사랑하는 연인에 대해 열정적인 모습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비로소 엄태웅이라는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톱가수 겸 배우 엄정화의 친동생이라는 것도 화제가 됐다. 무명생활 8년 만의 서광이었다. 이후 드라마 '부활'(05) '선덕여왕'(09),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07) '시라노; 연애조작단'(10) 등을 통해 안성기·설경구 등을 잇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작년부터는 KBS 2TV 예능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에서 어수룩하면서도 배꼽을 잡는 '예능감'으로 새로운 재능도 보여줬다. 이제는 연기파 배우를 넘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국민적 배우라 해도 손색이 없다. 24일 개봉한 새 영화 '특수본'(영화사 수박 제작, 황병국 감독)으로 또 한번의 도전을 감행한 엄태웅을 서울 청담동의 T 일식 전문점에서 만났다.
▶'특수본' 맨얼굴에 옷 세벌로 촬영, 오랜만에 거친 남자 -맡은 형사 역이 좀 느물느물하며 이죽거리는 모습이라 재미있었어요. "김성범 형사를 맡았는데요. 선배 형사(성동일)의 비리를 알아채고 우정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이죠. 제법 비장하기도 한데 그보다는 재미있고 유쾌한 점이 훨씬 많은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보였나봐요."
-캐릭터를 위해 준비한 것은. "거의 준비를 안한 게 준비였다고 할까요? 맨얼굴로 찍었고, 입은 옷은 경찰 제복까지 포함해서 딱 세 벌이었어요. 어느 날인가 맨얼굴로 촬영을 했는데 모니터를 보시던 감독님이 그게 좋다고 하셔서 그냥 주욱~. 그래도 배우인데 저래도 되나 싶었어요."(웃음)
-촬영장이 시나리오 회의장이었다고요. "사실 이 영화는 우여곡절이 좀 있었어요. 시간이 절대 부족했고 시나리오가 자꾸 바뀌어서 현장에서 수정을 많이 했어요. 급기야 감독님과 배우들이 머리를 맞대고 즉석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도 생겼죠. 엔딩 즈음에는 거의 매일 밤마다 감독님 방에 모여서 시나리오 회의를 했어요."
-에이, 시나리오 회의가 아니라 야간 회식이었겠죠. "흐~ 뭐 그런 점도 있었네요. 성동일 선배님이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술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어요. 영화 속에 제 부스스한 모습도 아마 그 탓일 거예요."(웃음)
이날 취중토크 장소는 엄태웅이 섭외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가끔씩 들른다고 했다. 낮동안 무려 9개 매체와 연쇄 인터뷰를 하고 온 참이라 거의 파김치가 돼 있었다. 게다가 평소 절친한 배우 이선균이 모친상을 당해 그날 새벽까지 빈소를 지킨 터라 체력은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다며 곧바로 '소맥' 폭탄주를 '제조'해 한 잔씩을 돌렸다.
▶"나는 SUV같은 연기자" -연기에 예능에, 이제 엄태웅이 대세가 될 것 같아요. "흐흐, 쑥스럽죠. 이제야 조금 작품에 빠지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빠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예전에는 잘 몰랐어요. 작품에 빠지는 게 뭔지. 그리고 작품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겁먹고 그랬어요. 연기 발동도 좀 늦게 걸리는 스타일이고요. 그런데 요즘은 한 작품이 끝나면 너무 아쉽고 슬픈 마음이 들어요. 그게 종이 한 장 차이같은 느낌인데 확실히 다른 뭔가가 있어요. 전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배우마다 다르던데, 대본을 어떻게 외우나요. "전 대체로 감정대로 하는 편이에요. '핸드폰' 때 보니까 박용우형은 대본에 시꺼멓게 줄을 그으면서 하시더라고요. 전 대본이 하얗거든요. 많이 배웠습니다."
-스스로 어떤 연기자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 같은 연기자 같아요. 오프로드 전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듯한 세단도 아니고… 오프로드건 도심 도로건 적당히 질주하는 사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