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스터 노벰버(Mr. November·11월의 사나이)'의 탄생이었다. 그것도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에 등장했다.
삼성 왼손 투수 장원삼(28)은 11월 29일 대만에서 벌어진 아시아시리즈 결승에서 일본 챔피언 소프트뱅크를 6⅓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눌렀다. 삼성을 아시아 챔피언으로 이끈 그는 대회 MVP에 오르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지난 1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삼성 구단의 팬 페스티벌. 그가 나타나자 팬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인을 요청했다. "대한민국 에이스급 인기다"라고 농담하자 그는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러겠습니까"라며 유쾌하게 받아쳤다.
동료들의 관심도 쏠렸다. 그와 상대하고 경쟁하는 동료들이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있는 질문을 던졌다.
◇김시진 넥센 감독
-이번 아시아시리즈에서 장원삼이 '원래 실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슬라이더 각이 무뎌졌을 때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노련해졌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제 너도 '롱 런'을 생각해야할 때가 아닐까.
"올해 전반기엔 몸이 덜 만들어졌거든요. 직구와 슬라이더가 제 투구 패턴인데 그것만으로 안 통하더라고요. 7월 어느 날 숙소에서 공을 만지고 있는데 서클 체인지업 그립이 우연히 잡히는 거예요. 예전에는 실전에서 던지지 않았는데 '이거 한 번 써볼까' 싶었어요.
7월 26일 KIA전(7이닝 4안타 2실점)에서 많이 던졌는데 잘 먹혔어요. 툭툭 떨어지니까 타자들이 쉽게 방망이를 내더라고요. 특히 오른손 타자들 상대하기에 편했어요.
아시아시리즈 결승에서 우치카와(소프트뱅크)를 상대할 때도 체인지업을 잘 써먹었어요. 그리고 저도 '롱 런' 생각해야죠. 사실 지금은 젊으니까 체력관리 같은 건 생각 안했는데 앞으로는 몸 관리 잘할 겁니다. 러닝은 많이 하고 있어요. 뛰는 데는 슬럼프가 없다잖아요."
◇오릭스 이대호
-아시아시리즈에서 호투한 것 잘 봤다. 축하한다. 일본 타자와 한국 타자를 상대할 때 어떤 점이 달랐는지,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어떤 점을 신경 썼는가.
"결승전에서 권혁이 혼다를 상대로 던지는 거 보셨죠? 공 15개(파울 10개 때린 후 좌전안타) 던졌어요. 한가운데 던진 공도 커트하더라고요. 볼은 골라내고, 스트라이크는 커트하고, 실투는 받아쳐서 안타 만들고….
누가 혼다 타석 때 담배 피겠다고 나갔었는데 피고 와도 혼다는 파울을 치고 있었죠. 일본 타자들은 몸쪽 공도 밀어치기에 저는 더 몸쪽으로 던졌어요. 그랬더니 차라리 낫더라고요. 파워는 물론 우리 타자들이 낫습니다."
◇하일성(KBS N 해설위원)
-2006년 데뷔해 여섯 시즌을 마쳤다. 국내 타자들 중에 상대해보지 않은 타자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가장 껄끄러운 타자 셋을 꼽는다면 누구일까? 아시아시리즈 MVP가 꺼리는 타자로 뽑히면 타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
"먼저 이대호 형이요. 타석에 들어오면 꽉 차요. 던질 데가 없어요. 제 공도 아주 잘 치고요. 그리고 SK 정근우 형. 컨택트가 좋은데 펀치력도 있어요.
전 SK와 경기에서 1회 1번타자 근우 형을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따라 그날 경기가 좌우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두산 양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타자예요. 무슨 공을 노리는지 알 수 없어요. 분석 자료를 봐도 모르겠어요. 툭툭 치는 거 같은데 오는 공은 다 받아쳐요."
◇삼성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
-기술적으로 자신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신적으로도 스스로를 진단해 달라.
"항상 감사합니다. 제 장단점을 말하려니 쑥스러운데요. 주변에서 말하기를 공 던지는 센스가 좋다고 해요. 컨트롤이 좋고, 변화구도 금방 배우고 응용해서 그런 거 같아요. 기술적 약점은 큰 커브가 없는 거예요.
볼카운트 잡을 때는 느리고 각이 큰 슬라이더를 던지긴 하는데. 정현욱 형이나 윤성환 형처럼 파워커브가 있으면 더 좋을 거 같아요. 그런데 제 팔 스윙으로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그
리고 마운드에서 지나치게 흥분하는 게 제 단점이에요. 어차피 경기당 3~4점도 내주는 게 투수인데 저는 1~2점만 주면 자포자기할 때가 많거든요. 돌발 상황이 생기면 혼자 흥분하고요. 그래서 마운드에 올라갈 때마다 형들이 '흥분하지 말아라'라고 얘기해줘요. 저도 그 말씀을 자주 생각하고요. 그리고 성격적인 장점은…,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낙천적인 것?"
◇최희(KBS N 아나운서)
-쟁쟁한 투수들이 많은 삼성에 와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올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는지 궁금해요.
"전반기에 부진했을 때 오치아이 코치님과 김태한 코치님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특히 김 코치님이 큰 힘이 됐어요. 제가 너무 부진해서 6월에는 1군에 있기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코치님께 '2군에 내려가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코치님이 '지금 부진하지만 네가 그것밖에 안 되는 투수는 아니다. 잠깐의 슬럼프일 뿐이다. 한 번만 더 너를 믿어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화전(6월 23일 6이닝 3피안타 무실점)에서 잘 던졌고, 그 뒤로 제 공을 찾았어요. 그때 류중일 감독님이나 김태한 코치님이 아니었다면 올해 한국시리즈도, 아시아시리즈도 제겐 없었어요. 최악의 시작에서 최고의 마무리. 놀라운 반전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