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는 최강희 전북 감독에게 위기에 빠진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감독 선임 과정에서는 협회가 K-리그 구단에 짐을 떠넘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철근 전북 현대 단장은 지난 4일 K-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뒤 최강희 감독과 재계약을 2015년까지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정상급 클럽으로 성장하겠다는 구단의 비전을 보여준 긍정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전북의 이런 계획은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됨에 따라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감독의 공백이 팀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계 훈련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터지자 전북 선수들도 동요하고 있다. 전북 구단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상황만 주시하고 있다.
협회가 최강희 감독을 선임한 결정적인 이유는 시간이다. 협회가 밝힌대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경우 당장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쿠웨이트와의 3차 예선을 준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단은 애초에 축구협회가 조광래 감독의 후임을 고민하거나, 조금 더 시기를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협회가 구단에 희생을 강요했던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핌 베어백 감독이 물러났을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베어백 감독은 당시 국가대표와 올림픽 대표팀을 동시에 지휘하고 있었다.
협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 도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급히 박성화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박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부임하진 겨우 15일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박 감독은 "부산 구단과 팬들에게 백번 사죄한다"며 떠났으나 부산은 12위에 머물렀다.
프로축구 구단 관계자들은 “축구협회가 프로축구의 전체적인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프로에서 거둔 결실을 따먹기만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쿠웨이트전을 대비한 대표 선수 소집 기간 확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협회는 공식 요청 대신 구단 관계자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차출 기간 확장에 협조해 달라'고 하고 있다.
'월드컵'이라는 대의 아래 프로구단들이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상황이다. 한 해설위원은 "월드컵에 나가지 못할 경우 입을 수 있는 한국 축구계의 타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편법을 쓴다면 결국 2002년 월드컵 전으로 후퇴하는 것"이라며 쓴소리를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프로축구연맹에 가입한 구단들은 회원이다. 축구협회 정관 12조와 13조에 따르면 등록팀들은 축구협회에 대해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권리보다 의무가 너무도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