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왕 캐릭터가 변했다. 기존 대하사극에서 근엄하고 진지하게만 그려졌던 왕이 개성넘치는 캐릭터가 돼 스토리 전개를 주도하고 있다. 상식선상에서 묘사돼 드라마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에 그쳤던 왕이 중심인물로 떠오르게 된 것. MBC 수목극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이 맡고 있는 임금 이훤이 대표적인 예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아파하면서 멜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주변인물에서 주인공으로 급부상해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속 왕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고민·방황·욕설까지 인간미 부여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는 인간미다. 개성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어야 몰입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대하사극의 왕 중 유일하게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가 연산군과 양녕대군 등 폭군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폭군이 되기까지의 과정 속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줘 인간미를 부각시킨게 인기요인이 됐다. 그런 면에서 '해품달' 김수현은 완벽한 성공조건을 갖췄다. 넘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가 하면 옛 연인을 못 잊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통해 모성애를 자극한다.
앞서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을 연기한 한석규도 마찬가지다. 한글창제 과정에서 만나는 무수한 난관 때문에 매번 힘들어하면서 인상을 썼다. '지랄' '우라질' 등 민초들이 쓰는 욕지거리까지 내뱉으면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 인간미 넘치는 왕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동이'의 지진희가 연기한 숙종도 개성넘치는 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과 경박하게 보이기까지하는 목소리 톤으로 귀여운 면모를 드러냈다. 드라마 속 왕 캐릭터로서는 처음으로 '깨방정 숙종'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 로맨틱남 이미지 부각
최근 왕 캐릭터는 국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재벌2세'의 변형된 형태이기도 하다. 극중 재벌2세는 재력과 특유의 자신만만한 태도 등으로 자기 여자를 지켜내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의 심리를 대리만족시켜줬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재력과 권력을 갖춘 '현대판 왕자'였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 역시 마찬가지다.
왕은 '사회지도층'을 강조하며 하지원에게 다가가던 재벌2세 현빈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한 여자에게 목숨을 건다는 설정은 여성들의 대리만족수치를 2배 이상 상승시켜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미모의 중전을 멀리하고 오매불망 한가인만 떠올리는 '해품달'의 김수현이 인기를 얻는 것도 지고지순한 '로맨틱남'의 이미지 때문이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상상력을 가미한 퓨전사극이 등장하면서 왕이라는 캐릭터에 큰 변화가 생겼다. 군주로서의 이미지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떠올라 재벌2세 캐릭터를 대신하고 있다"면서 "'백마탄 왕자'를 대신하는 인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백마탄 왕자' 그 자체인 로맨틱한 왕 캐릭터에 여성들이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외모도 필수, 잘생긴 왕이 보기도 좋아
젊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스타일도 필수다. '해품달'의 김수현은 궁궐에서 벗어나 잠행을 할 때마다 은은하면서도 세련돼보이는 색상의 옷을 걸친다. 극중에서도 '체면치례는 해야되지 않느냐'라면서 수입산 비단으로 지은 옷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크릿가든'의 현빈이 이탈리아 장인의 손으로 만든 트레이닝복을 걸친 것과 같다. MBC 미술센터 봉현숙 국장은 "고증에 집착하기보다 현대적인 색상과 디자인을 가미해 인물의 특징을 살려낸 세련된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면서 매력적인 왕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심사숙고하고 있음을 밝혔다.
스타일을 받쳐주기 위한 외모 역시 중요하다. 젊은 왕이 주인공인 새 수목극이 미남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이기도 하다. MBC '킹 투 허츠'는 이승기를, SBS '옥탑방 왕세자'는 박유천을 신개념 왕족으로 내세운다. 특히 '킹 투 허츠'는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는 설정으로 재벌2세를 뛰어넘는 현대판 왕족의 화려한 스타일을 묘사해 눈길을 끌 예정이다.